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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편집국

[6월5일 현장 6신] 시사IN 필자, 전경에게 맞아 코뼈 내려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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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일 새벽 전경이 휘두른 방패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시민의 이름이 윤OO씨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시사IN 필자인 윤OO씨와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윤OO씨(35)는 경희국제안보통상법연구센터 책임연구원으로 두 달 전 시사IN에 (물론 광우병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기고를 한 적 있었다. '안보' '통상' 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듯 윤씨는 거리 시위하고는 가장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설마, 그 윤씨가 이 사람일까.


내가 윤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3월 중순이었다. 당시 한국 최초 우주인 후보였던 고산씨가 갑자기 이소연씨로 교체되는 일이 있었다. 여러 언론에서 고산 교체 이유를 해석하는 기사를 내 놓았다. 나는 인터넷 검색 도중 우연히 국제안보통상법연구센터(EXCON)에  윤OO씨가 쓴 글을 보게되었다. 거시적인 국제 안보 통상 정책 흐름을 통해 고산 우주인 교체 사건을 분석한 글이었다. 나는 그에게 연락해 시사IN에 글을 기고 받았다.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성향은 전혀 없는 전문적인 글이었다.

그는 현재 환경관련 연구센터에서 팀장으로 일하며 한국안보통상학회 사무국장이기도 했다. 국가 경제와 기술 보안을 걱정하는 그의 글을 보고, 아마도 이 사람은 보통 경제 연구원들처럼 보수적인 성향이 있지 않을까 짐작만 했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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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4일 저녁 강북삼성병원 본관 OO5호 병실에 누워있던 사람은 분명히 내가아는 그 윤씨였다.
그는 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코뼈가 내려앉아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등에는 커다란 멍자국이 남아있었다. 간호하던 윤씨 친구들은 멍자국이 전경 군화 문양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간호사가 와서 "내일 아침 수술할 때 전신마취해야 해요. 괜찮으시죠?"라며 점검했다.

그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다.

윤씨는 1일 저녁에 마포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afreeca, 동영상 생중계 사이트)를 통해 미국소 수입 반대 시위 현장 모습을 지켜 봤다고 한다. 광화문 상황이 너무 심각해보였다. 윤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밤 10시쯤 광화문으로 출발했다. 그날 시위 현장에 꽤 늦게 결합한 셈이다.

당시 광화문은 이순신 동상 주변에서 전경과 시민이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2일 새벽 1시쯤에 호송버스 뒤에 있던 전경들이 나와 본격 진압을 하기 시작했다. 윤씨는 마침 전경들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윤씨는 전경을 향해 대들기 보다는 오히려 시위대를 다독이며 충돌을 막으려 애썼다. 당시 기자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윤씨가 흥분한 시위 청년을 진정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이내 전경들은 시위대를 향해 돌진했고 윤씨 얼굴를 향해 방패를 찍었다.

윤씨는 순간 얼굴에 '알싸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자리에 쓰러졌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코에서 뜨거운 뭔가가 흘러나왔다. 안경이 벗겨져서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 안경은 끝내 찾지 못했다.)
쓰러진 상태에서도 전경은 그를 짓밟고 때렸다. 3일이 지났는데도 윤씨 어깨 죽지에는 선명한 멍자국이 크게 나 있었다.
광화문 한복판에 쓰러지는 그를 뒤로 하고 전경들은 시위 진압을 계속했다. 한동안 그는 바닥에 버려진채 방치되었다.

방패를 맞을 때 장면 동영상은 여기에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CNTN_CD=ME000055939
(출처 : 오마이뉴스)

누군가가 119에 연락했는지 한 참 후 앰블런스가 왔다. 그는 가까운 강북삼성병원에 옮겨졌다.

그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습은 몇 몇 언론사 카메라에 잡혔다. 선혈이 낭자한 바닥에 피투성이로 뒹구는 이 사진은 전경 군화발에 머리를 짓밟힌 서울대 여대생 동영상과 함께 많은 이들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왜 위험하게 시위대 맨 앞에 있었는지를 물었다.

"여자들이나 어린 사람들은 뒤로 빠져야 하니까요."

"저는 선생님이 주신 글을 봤을 때는 전혀 시위나 운동같은 거 할 사람으로는 안 보였습니다"

"예. 사실 저는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시위한 적 없어요"
"한번도?"
"예."

"혹시 무슨 운동권 비슷한 동아리나 사회과학 동아리나 그런데 가입한 적 없어요?"

"전혀. 그냥 법 공부만 했는데."

윤씨가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처음 간 것은 5월말 경찰이 시민이 연행할 때 부터였다고 한다. 광우병 문제에 대해 관심은 많았는데 차마 거리 시위에 나갈 생각은 못하다가 평화적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경찰이 잡아가는 모습을 보고 이건 아니라고 느꼈다.

"그래도 일 때문에 평일은 못 가고 주말에 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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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지극히 평범한 시민이었다. 언제나 시위에 갈 때는 혼자였다. 시위에 함께하는 조직이나 친구가 없었다.

"환경 관련 연구센터에서 일하시는 데요. 하시는 일이 광우병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줬나요?"
"정부가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 하는데요. 주한 미 대사가 과학적 사실을 더 배워라는 말도 하고. 그런데, 환경이나 생명과 관련한 분야에서는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GMO(유전자조작식품)을 봅시다, GMO가 인체에 해가 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GMO 식품 규제하는 나라 많아요. 확률이  아무리 작더라도 우리가 잘 모르는 미지의 위험에 대해서는 예방의학 차원에서 방지하는 것이 원칙인거죠. 광우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경찰은 전경 군화발에 밟힌 여대생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해당 전경을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찰은 윤OO씨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아직 경찰 쪽에서는 아무도 방문한 사람도 없고 연락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그는 "나를 때린 전경 한 명이 나쁜게 아니라, 그런 폭력을 행사하도록 방치하고 유도한 간부들이 더 문제다"라며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군화발 여대생에 비해 윤씨의 피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윤OO씨의 어머니는 아직 아들의 입원 소식을 모르고 있다. 윤씨는 기사를 쓸 때 자신의 이름을 쓰지 말라고 부탁했다. 윤씨는 입원한 동안 당시 상황과 자신의 생각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의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cyworld.com/tomasyoon 다.




<시사IN> 신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