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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편집국

[6월9일 현장 1신] 광화문광장 현장반장 "낙서 지우기가 가장 어려워"


광화문광장 현장반장 "낙서 지우기가 가장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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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10 항쟁 21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9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 사거리는 햇살이 따갑습니다. 전경차 10여 대가 도로가에 세워져 있고 서울파이낸스 센터 앞 계단에는 ‘기독혁명교회’에서 나온 교인 8명이 ‘촛불시위 반대’ 팻말을 들고 앉아 있습니다. 거리는 조용하지만, 어제의 흔적과 내일의 전운이 감돕니다.

대림산업 최명기(60) 현장 안전반장은 ‘어제의 흔적’을 지우고 있습니다. 오전 7시부터, 벌써 9시간쨉니다. 5월27일부터 시작된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을 위해 광화문 인도 곳곳에 공사장 가림막을 세워놓았습니다. 사업 추진은 서울시가, 시공은 대림산업이 맡았습니다. 공사는 내년 6월이 돼야 마무리됩니다.

완공도 하기 전에 광화문은 이미 ‘시민의 광장’이 돼 버렸습니다.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 좋기도 하겠지만, 공사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공사장 가림막에 사인펜으로 써놓은 낙서는 모두 현장 노동자가 지워야 합니다. 아세톤을 묻혀 문질렀더니 번지고, 칼로 긁었더니 자국만 남고, 사포로 문질러도 허옇게 더 흉해지기만 합니다. 그래도 몇 시간째 사포를 들고 씨름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가림막은 너무 낙서가 많아 교체를 할 지경이라고 합니다.

공사장 사람들은 요새 새벽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며칠 전 일부 시민이 가림막을 밀고 공사장 안의 쇠파이프, 돌멩이 등을 집어갔습니다. 작업장이 엉망이 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시민의 안전이 더 걱정된답니다. 내일(10일) 많은 사람이 광장에 모인다고 하니, 대비도 하고 있습니다. 공사장 안에 쇠파이프 등을 치우고 “절대 밀지 마시오”라고 쓴 종이를 붙이기도 합니다. 공사장 출구를 다 막아버린 전경차도 짜증이 납니다. 한창 공사를 해야 할 때인데, 출구를 다 막으니 장비가 출입할 수가 없답니다.

“어청수 물러가라” “맹박아, 진중권 교수가 잠 좀 자라고 하던데” “제발 개념 좀 찾자 2MB” 등 낙서는 지워도 지워도 끝이 없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가 가장 큰 죄인이긴 합니다. 최 반장은 “시위하는 건 좋지만 기물을 훼손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문화적인’ 시위를 부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사IN> 변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