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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위대 낙하산 태워 방송국에 투하하다


친위대 낙하산 태워 방송국에 투하하다
이명박 정부는 공영방송 민영화와 신문·방송 겸업 허용에 앞서 방송을 틀어쥐려고 한다.
이를 위해 방통위원장·YTN 사장·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등에 말 많고 탈 많은 측근을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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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7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관회의 개막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앞줄 가운데)과 최시중 방통위원장(앞줄 오른쪽). ⓒ연합뉴스

한나라당은 1997년, 2002년 두 번의 대선을 방송 때문에 졌다고 주장해왔다. MBC와 KBS가 한나라당에 불리한 편파 방송을 한 것이 대선 패배의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2002년 대선 직후 한나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선판에서 방송으로 바람몰이를 하니 조중동만으로는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직후부터 방송을 장악하거나 적어도 발을 묶기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2003년 3월 한나라당은 언론대책특위를 꾸렸다. 위원장은 MBC 기자 출신 하순봉 최고위원, 간사는 중앙일보 출신 고흥길 의원이 맡았다. 언론대책특위는 그해 5월 “대선에서 편파 방송 때문에 패했고, 선거 승리를 위해 방송사의 정치 중립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이 담긴 백서를 내놓았다.

한나라당, 편파 방송 낙인 찍기 공들여

2003년 6월 언론대책특위는 KBS 2TV· MBC 민영화, KBS 시청료 폐지, 방송과 신문의 겸업 금지조항 철폐 따위 계획을 발표했다. 10월에는 전기세와 함께 부과되는 KBS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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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휘부 전 KBS창원총국장. ⓒ연합뉴스

10월31일 시민사회단체 140여 개가 ‘공영방송 지키기 국민연대’를 띄우며 들고 일어나자, 한나라당은 방송을 장악할 의도가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방송이 편파적이라고 낙인을 찍는 시도는 계속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KBS의 탄핵 방송이 방송사상 유례없는 불공정 방송이었다. 편파 방송만 하지 않았다면 대통령 탄핵은 마무리됐을 것이다”라고 틈만 나면 강조했다. 2006년 한나라당은 편파방송저지 특별위원회를 꾸렸다. KBS 기자 출신인 전여옥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두 번 패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지난 대선 기간에 한나라당은 끊임없이 방송에 견제구를 던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기회가 날 때마다 방송사를 항의 방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한 측근은 “집권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MBC를 민영화하겠다”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이방호 의원은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PD수첩>의 BBK 보도에 대해 “민심을 도둑질하는 범죄행위” “정동영 방송이자 허위 편파 방송”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방송의 발을 묶은 것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는 동인이 되었다는 게 한나라당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선 이틀 뒤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도 “선거 기간에 협조해주신 언론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다소 조금 섭섭함도 있었지만 어쩌겠습니까?”라며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불만이 있음을 내비쳤다. 이런 전조를 반영하듯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방송을 틀어쥐기 위한 절차는 가파르게 진행됐다.

첫 단추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출범이었다. 지난 2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를 통합한 방통위는 방송·통신 및 뉴미디어 정책 전반의 정책과 규제를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거듭났다. 방통위는 방송 인·허가 등 방송에 대한 감독과 규제 및 방송정책까지 총괄한다. 또한 KBS 이사 선임을 비롯해 공영방송사 경영진을 구성할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막강한 기관의 수장에 자신의 멘토이자, 형 이상득 의원의 50년 친구인 최시중씨를 앉혔다. 최씨가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6인회’ 좌장을 지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다.

청문회 과정에서 최씨의 도덕성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최씨는 아들에게 90억원대 대지를 증여하고도 증여 사실을 신고에서 누락했다. 청문회에 나온 최씨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라며 딴소리를 했다. 

논란은 이뿐이 아니었다. <기자협회보> 1988년 8월26일자 1면 ‘최시중 정치부장 권력유착 행적 파문, 동아 기자들 진위해명 요구’ 기사에 따르면 최씨는 그해 8월13일 김용갑 총무처 장관을 만나 “김 장관의 소신에 찬 발언을 전폭 지지한다. 적극 밀어줄 테니 의연히 행동하라”고 격려했다. 이 기사에는 최씨가 지지 표명 닷새 뒤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골프 회동으로 물의를 빚었다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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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노조는 구 사장 선임에 반발한다. ⓒ시사IN 한향란


능력·도덕성 의심스러운 인물 발탁

주한 미국 대사 측에 여론조사 결과 불법 전달, 부동산 투기 의혹과 증여세 탈루 의혹, 아들 병역면제 의혹 등 논란거리가 줄줄이 터져나왔다. 그 자체만으로도 중립성과 신뢰가 필수 덕목인 방통위 수장으로 적합한 인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비난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최씨의 임명을 강행했다.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최시중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언론 장악 음모의 최고 사령관이다”라고 말했다.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최 위원장은 오로지 방송 장악을 위해 이명박의 충신 노릇을 한다”라고 비판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6월11일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방통위의 정치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방통위 측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공영방송의 민영화, 또 보수 신문이 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문·방송 겸업 허용에 앞서 이명박 정부는 인사권 행사를 통해 방송을 장악한다는 계산이 서 있는 듯하다. 당장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특보로 활약하던 인사들이 대거 언론계에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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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YTN 사장 내정자. ⓒ연합뉴스

스카이라이프 이몽룡 사장, YTN 구본홍 사장 내정자, 한국방송광고공사 양휘부 사장 내정자, 정국록 아리랑TV 신임 사장은 모두 이명박 후보의 언론특보 출신이다. 구본홍·양휘부·이몽룡씨는 고려대 출신이고, 양휘부·구본홍·정국록씨는 경남고 동문이기도 하다. 낙하산 인사 논란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특정 정파에 몸담았던 인물이 언론사 사장으로 오는 것은 중립성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 특히 방송계에서는 근래에 없던 일이다. 노무현 정권은 언론특보를 지낸 서동구씨를 KBS 사장으로 내정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8일 만에 뜻을 접었다. 

기자협회장 출신 한 인사는 “대선이라는 겜블에 참여해 전리품 챙기듯 자리를 받는 것은 기자라면 결코 가지 말아야 할 길이다. 이런 사람을 언론사 사장에 앉히는 것은 뉴스의 본질과 가치 차원에서 언론사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한 방송사 고위 관계자는 “아닌 사람도 일부 있지만, 이명박 선대위 언론특보단은 언론계에서 손가락질받는 ‘구악’ 기자들의 집합소로 불렸다. 후배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능력도 영 별로인 인사가 대거 언론계 수장으로 투입된다는 게 이 정부의 수준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보여준다”라고 극단적으로 말했다.

YTN 사장으로 내정된 구본홍씨는 MBC 기자 출신으로 보도본부장을 역임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6월 이명박 캠프의 방송총괄본부장을 맡았다. 당시 구씨는 기독교TV 부사장이었다. 방송사 임원이 정치 활동을 한다는 논란이 일자 구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경선 선대위 방송특보단에 합류했다.

구씨는 자기과시욕이 강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구)본홍이 ○○은 꽉 잡고 있다’는 말을 자주 해서 별명이 ‘이본홍’이라고 한다. 구씨는 방송계에서 영남의 거두로 꼽힌다. 고려대와 경남 인맥을 잘 챙겨서 MBC에 ‘구본홍 라인’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고려대 출신 한 MBC 기자는 “회사에 들어갔더니 ‘너 안암동 호랑이지. 왜 인사하러 안 오느냐’며 고대 출신과 동향 출신을 각별히 챙겼다”라고 말했다.

구씨는 보수 성향이 강하기로 유명했다. 2003년 3월 그가 보도본부장에 오르자, 미디어 전문지 <미디어오늘>에 ‘MBC 보도국 보수색 짙어지나’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MBC 보도국의 한 부장급 기자는 “구씨는 전두환·노태우를 옹호하는 보수적인 태도로 구설에 자주 올랐다. 4·13 호헌 조처를 옹호하는 기사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에 출입하던 구본홍 기자의 기사는 정권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1988년 3월7일 구 기자는 6공의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씨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박철언 정책담당보좌관은 차가운 듯한 외모와는 달리 자상하고 뛰어난 업무능력으로 빠른 승진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1988년 6월3일 ‘노태우 대통령 취임 100일, 권위주의 청산 등 변화’라는 구본홍 기자의 보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다음 날인 지난 2월26일 첫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힘을 모으는 길은 곧 참된 민주주의 실현과 국민 화합이라고 천명하고 지난 100일 동안 약속 이행의 의지를 보였는데 실로 획기적인 변화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KBS 사장 자리도 MB 측근 몫?

 
구씨는 내심 MBC 사장을 꿈꾸었지만 노조와 후배들의 반대로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했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MBC 한 기자는 “MBC가 대형 교회 목사 비리를 다뤘는데 구씨가 목사들을 모아놓고 MBC가 오보를 냈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구씨를 좋게 평하는 기자는 거의 없었고 사장이 된다는 소리가 나자 모두 들고일어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YTN 현덕수 노조위원장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정치권 출신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더구나 구본홍씨는 MBC 사장 후보에도 끼지 못한 무능력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 임명된 양휘부 전 KBS 창원총국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회창·이명박 후보의 언론특보 출신인 양씨는 2003년 한나라당 추천으로 방송위원에 올랐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양씨는 “이 자리(청와대)의 주인이 바뀐 것 같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양씨와 함께 활동한 한 방송위원은 “양씨처럼 안하무인이고 예절이 없는 사람은 근래 보기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KBS의 한 고위 간부는 “양씨는 방송계에서 유명한 출세지향형 인사다”라고 평했다.

<시사IN>주진우


본 기사는 <시사IN> 제41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