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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편집국

"다들 어디로 떠나갔는지 나도 잘 몰라"


"다들 어디로 떠나갔는지 나도 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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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100가구가 있었다고 하면 30가구 정도만 정착했어. 나머지는 다 외지인들이야."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서 만난 60대 할머니가 실감한 동네의 변화다. 떠나간 주민들은 어디로 이주했는지 묻는 질문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어디로 갔는지는 나도 잘 몰라. 번동이나 수유리 쪽으로 많이 갔다더라"라고 짧게 답했다.

지난 2002년 10월 은평, 왕십리와 함께 뉴타운 시범지구로 지정된 길음뉴타운의 상황이다. 길음 1,2,3동 일대 14100가구 39500명을 대상으로 첫 삽을 뜬 길음뉴타운은 2005년 4월에 길음 2,4구역의 입주가 이루어지는 등 서울 시내 뉴타운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사업이 진행됐다. 때문에 길음뉴타운은 현재 진행 중인 서울시의 뉴타운 정책에 종요한 선례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철거민들의 재정착률을 조사한 통계 결과는 뉴타운의 사업에서 서민들의 주거권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지난 4월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뉴타운사업기획관에서 발간한 '뉴타운사업 추진현황'에 따르면 이 지역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길음2구역 31.2%, 4구역 22.4%였다. 열 가구 중 두세 가구만이 터전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10가구 중 3가구만 정착한 '상전벽해' 길음동

길음동에서 집을 소유하며 살고 있는 김모 씨(72세)는 "평당 400~500만원이었던 땅값이 (뉴타운으로 지정된 후) 800~900만원까지 올랐다. 옆집에 살던 사람도 평당 900만원에 땅을 팔고 이사를 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남철관 성북주거복지센터 사무국장은 "아파트 분양가는 주택과 토지 보상가보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며 "길음 지역은 뉴타운 개발 초기에 보상과 분양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분양가가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보상가와 분양가의 격차가 그리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세입자들의 재정착률은 더욱 저조하다. 2구역에 거주하던 세입자 총 838가구  중 23.6%(198가구)만이 임대아파트를 신청했고 나머지 76.4%(640가구)는 주거대책비를 신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철관 사무국장은 "길음 지역 임대아파트 분양 초기에 비해 지금은 임대료가 6~70%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현재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구역에서는 영세한 철거민들의 임대아파트 입주가 이전보다도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몇 년 사이에 서울 성북·강북구를 중심으로 한 동북 지역은 투자 열기로 한껏 달아올랐다. 길음 뉴타운 외에 2003년 11월에 강북구 미아, 성북구 장위, 노원구 상계 지역이 추가로 뉴타운으로 지정된 것을 비롯해 강북구 번동 드림랜드의 생태공원화, 서울 경전철 노선 확정 등 잇따른 개발이 원인이다. 강북구 수유동 D부동산 관계자는 "인근 지역에도 뉴타운이 지정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수유동 역시 길음, 미아 지역과 비슷한 지가 상승률을 보였다"고 말했다. 때문에 철거민들이 기존에 다니던 직장과 학교 등의 이유로 인근 지역에 정착하고자 해도 지가를 견디기가 여의치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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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썩이는 강북 집값에 서민들은 밖으로 …


강북발 지가 상승은 경기 북부 지역의 지가에도 파급효과를 보였다. 닥터아파트(www.DrApt.com)가 올 상반기 경기 북부 지역의 매매가 변동률을 조사한 결과 동두천이 28.51%, 의정부시가 22.9%, 양주시가 12.7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철거민들이 지가가 낮은 곳을 찾아 떠돌게 되는 '도미노 이주'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다양한 계층과 세대가 함께 살 수 있는 인간 중심적인 커뮤니티를 조성"하겠다는 애초 뉴타운의 목표는 그 첫걸음인 길음뉴타운을 통해 허상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 전역으로 번져가는 뉴타운 열풍에 맞서 서민들의 주거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져가는 이유다.

<시사IN> 김소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