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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까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릴레이 편지 6

맨 처음 나타난 응원군은 동네 주민입니다. 농성장에 세워놓은 선전물을 찬찬히 읽어보시더니
한마디 하시더군요. “여기 써있는 게 사실이라면 사장이 나쁜 사람이야.
사장이 삼성에 기사를 팔아먹은 거네. 그건 나쁜 짓이지.”

청개구리가 이런 심정이겠지요. 평생 말 안 듣다 마지막 효도한답시고 물가에 엄마를 모신 청개구리말입니다. 

다른 동료들 모두 뜯어말릴 때, ‘미련없는 이별을 위해서라도 해야 돼’하면서 두 사람의 단식을 부추겼습니다. ‘밥 굶으며 힘들어 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기가 너무 괴로울 것 같다’면서 극구 말리던 후배한테 ‘보기 괴로우면 같이 굶지 뭐’하며 객기까지 부렸습니다.

그러나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후회했습니다.

건너 뛴 밥 공기 수만큼 야위어가는 두 사람의 얼굴도, 아무리 열 받아도 욕지거리 한 번 못 했던 후배가 찢겨진 플래카드를 지키기 위해 악다구니하다 경찰서까지 갔다 오는 모습도 보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요. 날씨는 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둘째 날까지는 너무 뜨거운 태양을 원망하고, 셋째 날엔 선선해진 것을 감사하기보다 곧 들이닥칠 장마를 걱정하며 하늘에 투덜거려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위안꺼리, 감사꺼리도 많습니다. 응원군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단식농성 사흘째. 맨 처음 나타난 응원군은 동네 주민입니다. 농성장에 세워놓은 선전물을 찬찬히 읽어보시더니 한마디 하시더군요. “여기 써있는 게 사실이라면 사장이 나쁜 사람이야. 사장이 삼성에 기사를 팔아먹은 거네. 그건 나쁜 짓이지.” 내친 김에 투쟁 전술도 전수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조용히 밥 굶고 있는 것보다 한 이틀 시끄럽게 꽹과리 치는 게 빨리 해결하는 방법이야. 이 동네엔 전·현직 국회의원만 열댓명이 살아. 시끄럽게 하면 그 사람들이 나서서라도 해결해 줄거야. 조용히 앉아 밥 굶는다고 회장이 나오겠어? 얼굴 보니 거짓말로 굶을 사람도 아닌 것 같구. 괜히 고생하지 말고 시끄럽게 하라고. 당신들이 하는 일이 옳으면 동네 주민들도 이해할거야.”

우리들의 영원한 응원군, 시사모 회원의 발길은 오늘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이 지칠만하면 찾아와 기를 불어넣어주던 이명옥님 외에 낮부터 저녁까지 많은 분들이 다녀갔습니다. 단식중인 사무국장과 함께 급식당번 하러 갔다 오느라 만나지 못한 분들이 많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사무국장, 하필 오늘이 급식 당번 서는 날이었습니다. 사흘씩이나 굶은 이에게 급식당번이라니요. 지나가는 제과점 트럭만 봐도 ‘안돼, 저거 보면 **케익 생각나’라고 절규하는 그녀에게 음식 냄새 폴폴 맡으며 밥 퍼주는 일은 너무 가혹합니다. 아쉬운 대로 제가 대체인력 노릇을 했습니다. 경험이 전무해 서투르기 짝이 없었지만, 그런대로 선방한 듯합니다. 급식 당번 하면서 든 생각. ‘초등학교 1학년 엄마의 인권은 없다’.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의 밥을 다 챙겨주고 나면 엄마는 복도에 선 채로 남은 반찬과 밥으로 허기를 메워야 하더군요. 몇 숟가락 들기도 전에 아이들이 식판을 반납하러 오기 때문에 곧바로 숟가락 내려놓아야 합니다. 급식 뒤치다꺼리가 끝난 뒤에는 교실 청소도 해야 합니다. 엄마들의 무임금 노동력을 착취할 것이 아니라 청소하는 분을 따로 고용해 실업률 해소에 기여하는 학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단식 농성 사흘째. 굶은 사람이나 굶는 사람을 지켜봐야 하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가장 큰 힘은 서로의 한결같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사실 까놓고 얘기해서 요즘 우리 처지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한번 그렇게 깨면 잠이 안 온답니다. 비정한 시장주의에 포위당한 사회, 다들 포기한 자리에서 제 역할 하는 언론 하나 뿌리내리게 해보자고 바둥거리고는 있지만 우리들의 이 저항이 언제 ‘무용지물 박물관’에 처박힐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누구도 ‘고통의 포즈’를 즐기지 않습니다. 같은 문제를 놓고 1년이나 싸우고, 6개월씩이나 월급 한 푼 못 받았으니 지치고 고단하다는 내색을 할만도 한데, 농성장에서는 앓는 소리보다 농담이 더 풍성하게 오갑니다. 노숙하는 동료를 안쓰러워하며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눈으로 나타났다가도 동료들의 농담 속에 얼굴을 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객기어린 큰소리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심회장은 모든 기자를 범죄자로 만들 요량인가 본데, 업무방해나 명예훼손, 폭력 혐의 등에서 자유로운 기자도 아직 많이 남았으니 더 버틸 만하다’고.

여전히 씩씩하지만 곧 이렇게 말할 날이 올 것 같습니다. ‘됐다, 이제 그만하자’고. 그래도 다들 아름답게 싸웠으므로 후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지붕이 없는 농성장으로 폭우라도 들이퍼부어지면 어쩌나 걱정입니다.

2007년 6월20일 시사저널 안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