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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까지

‘핵을 가진 북한을 친미화하라’

‘핵을 가진 북한을 친미화하라’

 남문희 (<시사저널> 한반도 전문기자)


역사는 돌고 돈다. 당장은 변화무쌍한 듯 느껴지더라도, 조금만 지나면 결국 제 자리인 경우가 허다하다.

‘2.13 6자회담 합의’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떠올렸다. 이미 지적됐듯이 2.13 합의의 첫 번째 단계, 즉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의 동결(폐쇄와 봉인)과 IAEA 사찰단 복귀, 그에 대한 대가로 중유를 지원하는 방식은 분명 제네바 합의 체제로의 복귀를 뜻한다.

필자가 2.13합의를 보며 제네바 합의를 떠 올린 것은 이런 표면적인 합의 내용들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의 흐름에는 드러난 부분과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늘 있게 마련이다. 필자는 제네바합의가 체결되던 지난 1990년대 중반에도 역시 한반도 문제를 취재하고 있었다. 그때 만났던 청와대의 한 고위당국자가 필자와 대화하던 중 분통을 터뜨렸던 일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바로 제네바 합의 때문이었다. 한국 정부는 배제된 채 북한과 미국 양자가 진행한 이 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의 ‘과거 핵’을 덮고 가려 하자, 한국 관리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현재와 미래 핵’에만 초점을 맞춘 합의문이 작성됐다는 것이다.

북핵 6자회담이 13일 6개국의 합의로 타결된 가운데,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폐막 회의에 앞서 우다웨이 중국 수석대표를 가운데 놓고 북한 김계관 수석대표와 미국 크리스토퍼 힐 수석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핵이란 북한이 1990년대 초반 영변의 5메가와트 원자로를 정지시킨 상태에서 추출해낸 플루토늄 등의 핵물질과 과거에 만들어둔 핵무기 등을 뜻한다. 현재와 미래 핵이란 영변의 5메가와트 원자로 및 건설이 중단된 50메가와트와 200메가와트 원자로 등으로 현재 또는 미래에 핵물질을 생산해낼 수 있는 일련의 핵 시설을 뜻하는 것이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의 과거 핵에 대해 별다른 제재 조처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은 당시에도 논란이 되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회담 자체를 무효화해야 한다거나, 이로 인해 한미 간에 크게 외교 마찰이 일어나는 수준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협상을 하다보면 최선이 아니라 차선의 결과에 만족해야 될 때도 있는 법이다. 더구나 상대가 ‘외교 강국’인 북한쯤 되면 한 번의 협상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이런 식의  현실론 탓에 슬쩍 유야무야됐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얘기일 것이다.

당시 필자는 핵공학이나 핵 무기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동북아 국제정치적 관점, 즉 ‘핵을 가진 북한’과 미국이 관계를 개선한다는 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한참을 궁리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서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기사를 썼던 기억이 난다. ‘핵을 가진 북한이 미국에 유리하다?’ 대략 이런 제목이었다. 즉 미국이 기왕 북한과 관계개선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핵이 없는 북한 보다는 핵이 있는 북한이 동북아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볼 때, 미국으로서는 더욱 매력적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미국이 제네바에서 북의 ‘과거 핵’을 용인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이런 기사를 쓸 수는 없다. 나름대로 이같은 추론을 뒷받침할 만한 여러 가지 정황이 있었다.

당시를 돌아보자. 1990년대 중반은 미국의 대 사회주의권 정책의 중점이 서서히 이동하던 시기였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열풍처럼 번졌던 소련 동유럽 붕괴 및 민주화가 마무리 되면서 사회주의 붕괴 공작 타깃이 중국 북한 베트남 등 소위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련 동유럽 붕괴 과정에서 경험을 쌓은 국무성이나 국방성 의회 정보기관 등의 베테랑 요원들이 아시아 쪽 업무로 방향을 틀었고, 동시에 서울에도 이들 베테랑 요원들이 속속 들어와 활동을 개시하고 있었다.

필자는 당시 현장에서 이들의 활동과 관련한 얘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북한을 대상으로 한 이들의 활동 방향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인상 깊은 얘기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얘기였다. ‘북한은 미국 동북아 정책의 정거장(bus stop)이다.’ 즉 미국 동북아 정책의 ‘종착역(bus terminal)’은 중국이고, 북한은 미국이 중국을 요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역이라는 것이다. 거꾸로 얘기하면 미국의 대북한 정책은 반드시 대중국 정책에 대한 고려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네바 합의 당시에도 미국의 대북 협상 방안은 동북아 정책의 최종 종착점인 중국을 염두에 두고 짜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중국의 동북 방면을 지키는 전략적 방벽’이라고 지난 1992년 등소평이 소위 ‘신냉전 문서’라는 곳에서 설파했을 만큼, 북한이 중국 안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이런 북한과 핵 협상을 하면서 어찌된 일인지 ‘과거 핵’이 쏙 빠져 버렸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현실론’도 일리는 있으나,  ‘의도적으로 누락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중국 동북의 요충지로서 여차하면 최대 위협세력이 될 수도 있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핵이 없을 때 보다는 핵이 있을 때 훨씬 커지고, 따라서 미국이 북한을 끌어안을 작정이라면(포용정책, engagement policy) 핵을 가진 북한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냉전 시대 미국의 최대 적이었던 소련이 무너지고 이제 남은 것은 ‘최대의 적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중국뿐인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레이건, 부시 시대를 거치며 길러진 ‘자유의 전사’들에게 중국은 이들이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맏형이었던 것이다.

냉전이 붕괴한 이후 동북아에서 동맹체제의 변화내지는 역전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논의가 몇몇 전문가들 사이에서 등장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즉 한국이 소련이나 중국에 접근하고 북한이 반대로 미국이나 일본에 접근하는 교차승인 얘기가 자연스럽게 거론되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중반의 이같은 폭발적이고 전복적인 시대상이 바로 당시에 썼던 ‘핵을 가진 북한이 미국에 유리하다?’는 기사에 응축돼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한반도를 둘러싸고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다. 시간은 정말 광속처럼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워싱턴과 통화하던 중,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1990년 대 중반의 바로 그 ‘가설’을 이번에는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미국의 깊은 속내에는 핵을 가진 북한이 나쁠 것 없다는 생각도 있다.’ 오랜만에 연결된 워싱턴의 모 인사가 결론 삼아  던진 이 한마디는 지난 12년간 잠재의식 속에 있던 그 가설을 단박에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렸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을 풀어줄 서광이 비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2006년 11월7일의 미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를 하고 미국내 세력 관계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던 바로 그 시점의 일이었다. 럼스펠드의 전격 사임이 상징하는 것처럼, 공화당 강경파와 네오콘이 급격하게 퇴조하고, 라이스-힐로 이어지던 현실주의 세력이 드디어 대북 정책에서 명실상부한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직후였다.

클린턴 정권 시절 민주당에 모였던 현실주의 세력은 부시 정권 등장 이후 공화당 간판 밑으로 다시 집결했다. 그러나 부시 1기에는 공화당 강경파와 네오콘에 밀려 외곽을 떠돌 수밖에 없었다. 부시 2기 정권에서는 라이스를 앞세워 외교 영역을 접수하는 데는 성공한 듯했으나, 국방과 정보를 장악한 공화당 강경파와 네오콘의 견제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중 11월의 중간선거 참패로 인해 이라크 전쟁 책임론이 부상하면서 그 반대편에 서 있던 현실주의자들이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이다.

클린턴 정권 말기로부터 따지면 실로 6년만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어쨌건 이들의 복귀와 더불어, 대북 정책에서도 클린턴 시대의 ‘복권’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의 전면 등장 이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부시행정부 초기의 ‘abc 원칙(anything but Clinton; 즉 클린턴 시절에 했던 것만 빼고 어떤 것도 해도 좋다)’이 아니라 ‘클린턴 정권말기로의 복귀’가 일어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북한이 부시 행정부 초기 주장했던 ‘클린턴 정권 말기 끊어졌던 지점에서 북미관계를 다시 시작하자’는 것을 부시 행정부가 비로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바로 이런 가운데 워싱턴 정계 소식에 정통한 그가 중간 선거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 방향에 대한 워싱턴 인사이드의 얘기를 전화를 통해 전해왔는데, 바로 그 속에 문제의 대목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의 얘기는 상당히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문제가 됐던 그 대목은 그 얘기의 결론 부분이었다. 그러나 앞의 얘기들과 유기적으로 연관이 돼 있으므로 그가 전한 ‘중간 선거 이후 미국 대북 정책의 방향’에 대해 전체적인 윤곽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북 정책은 라이스-힐로 이어지는 현실주의 세력이 주도하게 됐다. 따라서 기존 정책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중국에 의존해왔던 정책이 크게 바뀔 것이다. 말로는 6자회담 및 중국의 역할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북한과의 양자접촉을 강화해 북한 핵에 대한 직접 관리 정책으로 전환해 나갈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을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중국이 북한을 버리고 미국 편을 들어 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중국 의존 정책에서 벗어나려는 배경에는 바로 중국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고 있다....북한 핵에 대한 직접 관리 정책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는 북의 핵 포기를 유도하는 단계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도 전과 달리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안할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 내에는 과연 북이 핵을 포기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회의적인 견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북이 마지막까지 핵 포기를 거부할 경우에 대비한 대책이 바로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이 두 번째 단계의 핵심 내용은 바로 핵을 가진 북한이 미국에 적대적인 존재로 남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북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 최소한 북을 중립화하거나 친미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황하기는 하지만, 미국 내 현실주의 세력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핵심이 잘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11월 중순께 이 얘기를 들은 필자는 망설였다. 여태까지 그의 전언이 과히 틀린 적이 없었고, 여러 정황상으로도 수긍이 가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기사를 쓸 경우, 북한 당국의 핵 보유를 용인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듯한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12년 전 그토록 과감했던 필자도 이제는 나이를 먹은 탓이리라.

그래서 할 말을 다하지 못한 채, 애매한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중간 선거 이후 워싱턴은 기존의 중국 의존적 대북 정책을 대북 직접 관리 정책으로 수정했다.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단계의 접근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 단계는 북한의 핵포기 유도 단계로서 미국은 이를 위해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핵포기 유도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것이 바로 두 번째 단계이다’는 식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시 베이징에서 들려온 바에 의하면 북 당국자들 역시 미국의 태도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자신들이 핵보유국으로 계속 남겠다고 고집할 경우 미국은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끝까지 추적해 없애겠다는 입장인가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묵인할 수도 있다는 것인가. 북한으로서는 바로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일 수도 있었다.

이런 북한의 복잡한 심경, 그리고 그것을 간파한 미국의 대응이 어우러져, 지난 2006년 11월29,30일 힐-김계관의 베이징 양자회담과 12월 제5차 2단계 6자회담 등에서의 밀고 당기기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올해 1월16일-18일 베를린 북미 양자대화를 거쳐 드디어 ‘2.13 합의’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뚜껑이 열고 보니, 역시 제네바 합의의 재판이었던 것이다. 물론 제네바 합의를 끔찍이 싫어하는 부시 대통령의 입장을 감안해 이러저러한 윤색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현재와 미래 핵. 즉 핵시설에 대해서만 폐쇄와 봉인, 그리고 폐지 및 불능화 등 언급이 있을 뿐 이미 가지고 있는 핵물질이나 핵무기 등 ‘과거 핵’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이 없다. 물론 그때와 똑같이 말할 수 있다. ‘협상에서 반드시 최선의 결과만을 얻을 수는 없다. 특히 북한과 같은 외교 강국을 상대로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지난 1994년에도 현실론의 이면에 숨었던 것은 바로 ‘북한은 미국 동북아 전략의 정거장이다’는 전략적 함의였다. 당시 이런 슬로건을 만들어냈던 그룹이 12년 만에 또 다시 총대를 메고 ‘제네바 합의 2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때와 다른 것은 북한이 이미 핵실험까지 거친 명실상부한 핵 보유국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를 빌미로 이들의 전략적 기조나 의도 역시 내부적으로는 더욱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포기를 유도하되, 안되면 끌어안는다’는 이 2단계 전략의 중점은 앞 문장에 있을까 아니면 뒷 문장에 있을까. ‘핵을 가진 북한’을 끌어안고 미국은 그 다음에 어디로 가려는 걸까.  

 

*이 글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민족화해>지 3,4월호(제25호)에 동시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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