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비평] 위협받는 편집권…침묵하는 언론
지난 달 26일.
<녹취> 이숙이(시사저널 前 기자): “시사저널과 이별하지만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믿음만은 버리지 않을 것이다. 펜을 곧추세워 취재현장으로 돌아오겠다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다짐도 여전하다.”
시사저널 기자 22명의 펜이 끝내 꺾이고 말았다.
지난해 6월 사장이 편집국장에게도 알리지 않고 삼성 관련 기사를 삭제한데 항의해 시작된 시사저널 사태는, 결국 기자들의 집단 사표로 1년여 만에 막을 내렸다.
30년 전 동아일보 기자 대량 해직 사건과 흡사한 이번 시사저널 사태는,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우리 언론의 현주소가 아닐까?
<앵커 멘트>
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 1년간 핵심적으로 요구해 온 것은 바로 편집권 독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은 관철되지 못했고, 기자들은 정들었던 편집국을 떠나게 됐습니다.
30년 전 동아일보 기자 백여 명이 자유언론과 편집권 수호를 외치다 거리로 쫓겨난 사건과 그 전개과정이 흡사한데요, 박찬형 기자와 함께 시사저널 사태가 우리 언론계에 던진 과제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질문 1> 박 기자, 시사저널과 결별한 기자들이 새로운 매체를 만든다.. 이렇게 선언했다죠?
<답변 1>
네, 이제 시사저널 전 기자들이라고 불러야 하겠죠, 이들은 지난 주 시사저널에 사표를 낸 데 이어, 지난 2일에는 ‘참언론 실천 시사기자단’을 출범하고 새 주간지 창간을 선포했습니다.
시사저널과 결별한 시사저널 前 기자들은 시사저널에서 꺾인 펜을 오는 9월 창간예정인, 새로운 독립주간지에서 다시 세우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인터뷰> 문정우(참언론 실천 시사기자단장): “파업 전과 파업 후에 기자들은 굉장히 달라졌습니다. 시사저널이라는 그 틀에서 세상을 보던 시야도 많이 터졌고, 우리가 못 보던 세상도 많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새 매체 만들면 잘 만들 수 있습니다.”
지난 89년 창간 후 18년 동안, 시사주간지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대표적 독립 언론으로 자리매김해 온 시사저널.
그 아성을 지켜온 기자들이 시사저널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번 사태의 시작은 지난해 6월 삼성 관련 기사 삭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편집국장까지 검토를 마친 삼성 관련 기사를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이 마감일에 협의도 없이 삭제하고, 빈 면을 광고로 대체한 것입니다.
사장이 일방적으로 기사를 삭제한 행위는 큰 반발을 불렀고, 특히 문제의 기사가 거대기업인 동시에 주요 광고주인 삼성과 관련됐다는 점에서 언론계에도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인터뷰>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07년 현재 직간접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본권력의 광고를 매개로 하는 권력행사, 그 의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주, 매체, 그러므로 간접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기자, 피디는 사실상 없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고요.”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는 기자들의 입장과 사장으로서 정당한 편집권 행사라는 사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결국 올 1월 기자들의 전면파업, 회사측의 직장폐쇄, 그리고 기자들의 단식농성, 끝장투쟁이 이어졌지만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라는 기자들의 요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질문 2> 그런데 시사저널에서 나온 기자들을 보면서 30년 전 동아일보 대량 해직 사건 때 거리로 쫓겨난 기자들이 떠오르는 것은 그 때와 전개 과정이 비슷해서 일까요?
<답변 2>
그렇습니다. 그 때도 동아일보의 양심적 기자, 피디들은 자유언론과 편집권 수호를 외치다 해직 당했는데요, 다만 그 당시 해직사태의 배후에는 폭압적인 정치권력이 도사리고 있었다면 시사저널 사태가 촉발된 데는 자본권력이 있었다는 점이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폭압이 극에 달하던 70년대 초, 신문과 방송은 있었지만 진정한 언론은 없었고, 모두 권력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습니다.
1971년 3월, 급기야 서울대 학생회장단 30 여 명은 동아일보 앞에 몰려와 화형식을 열며, 신랄한 격문으로 정권에 무릎 꿇은 언론들을 비난했습니다.
언론에 대한 잇단 비판에 충격 받는 동아일보 기자들은 71년 4월 제 1차 언론자유수호 선언에 이어 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 선언을 하게 됩니다.
<인터뷰> 정동익(동아투위 위원장): “중앙정보부,경찰,보안사 요원들 이런 사람들 7.8명이 매일 회사를 드나들면서 간섭을 해댔기 때문에 우리가 참다못해 언론자유 실천선언을 하고 회사 정문앞에 기관원 출입금지를 하고 일체 출입을 못하게 했죠.”
이후 시국사건을 알리고, 정권을 비판하는 기사가 지면에 과감하게 등장합니다.
74년 11월, 전국 14개 천주교회에서 있었던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를 중요하게 다뤄줘야 한다는 기자들의 총의가 사측에 의해 거부되자 신문이 하루 휴간되는 진통 끝에 사회면 중간톱으로 실렸습니다.
또, 당시 야당기사를 톱으로 올리지 못하던 금기를 깨고 야당 총재 기사를 머릿기사로 올리는가 하면, 사설을 통해서도, 당시 금기시 돼 있던 개헌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자료화면> 74년 11월 14일 사설: “개헌특위를 빨리 구성하라, 절대로 개정할 수 없는 헌법이란 어떤 인간사회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당 측의 국회의원들도 모를 까닭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달여 뒤 동아일보에서 광고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광고주들이 갑자기 광고를 끊은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정권차원의 공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아일보 사측은 투쟁에 앞장선 기자들을 잇달아 해임했고... 1975년 3월 17일 새벽, 급기야 농성 중이던 동아일보 기자 등 160여 명을 폭력배 수백 명을 동원해 끌어냈습니다.
언론자유, 편집권 독립을 향한 외침이 무참히 짓밟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편집권 독립을 외쳤던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 자본권력으로부터의 편집권 독립을 외쳤던 시사저널의 前 기자들, 3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이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진정한 자유언론 수호였습니다.
<질문 3> 그런데 다른 언론사들은 이 두 사건을 어떻게 다뤘나요?
<답변 3> 네, 시사저널 사태를 바라보는 언론계의 모습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지난 2월 한 여론조사에서 기자 10명 중 8명 이상은 삼성 관련 기사 삭제 사건을 “자본의 논리에 휘둘려 경영진이 편집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CBS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시사저널 사태를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기자들 자신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만, 이를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리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07.01.25): “대표적인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거센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시사저널 사태가 촉발된 이후 1년 동안 방송 3사가 이 소식을 메인뉴스에서 보도한 것은 단신을 합쳐서 KBS 3건, SBS가 2건, MBC 1건에 불과합니다.
MBC PD수첩 등 시사 프로그램이 지속적 관심을 보인 것과 대조적입니다.
주요 일간지는 신문별로 차이가 심합니다.
카인즈와 조선, 중앙일보 홈페이지를 통해 시사저널 사태 관련 기사 보도 여부를 확인해 본 결과 중앙일보는 단 1건의 기사도 없었고, 조선, 문화, 국민, 세계는 1년 동안 단 1건씩, 동아는 2건의 기사만 썼습니다.
그나마 직장폐쇄 등 사건성 기사입니다.
한겨레와 경향, 한국, 서울신문 정도가 관심을 보였을 뿐입니다.
30년 전 동아일보 기자들이 6일 동안 농성을 벌일 때 대다수 언론은 짧은 사건 성 단신을 몇 건씩 쓰는 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시사저널 사태 1년 동안 불과 1~2건의 기사를 쓴 요즘 언론보다는 당시가 더 나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특히 중앙일보는 동아투위 당시 15건의 기사로 많은 관심을 나타냈지만 이번 시사저널 사태 때는 1건도 관련 기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당시가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요즘 언론의 침묵은 자기검열의 결과로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 김태진(민주언론시민연합 前 의장): “소위 스폰서 검열에 의해서 지금 언론이 장악돼 있다. 권력에 의해서 장악돼 있기보다도 검열에 의해서 장악된 것이 더 헤쳐나가기 어렵지 않느냐…”
<질문 4> 시사저널 기자들의 편집권 독립 투쟁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독재정권 때의 그것보다 적었다는 것은 참 씁쓸한 얘긴데요, 어쨌든 박 기자, 시사저널에서 나온 기자들이 새로운 매체 창간을 선언한 만큼, 앞으로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답변 4>
네,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겠다던 시사저널 前 기자들이 새로운 매체에서 꺾인 펜을 어떻게 다시 세우느냐는 본인들 뿐 아니라 시사저널을 아끼고 사랑해왔던 독자들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시사저널의 기사를 써왔던 소프트웨어가 그대로 옮겨져 오는 만큼 기사의 품질은 걱정할 게 없다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지난 10년간 대우그룹의 해외비밀계좌를 파헤치고, 여권의 언론대책문건을 단독 입수해 보도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제이유 그룹의 정관계 로비 리스트 특종보도 등으로 10여개의 특종상을 받았습니다.
새 주간지 창간을 위해 30억 원에 달하는 자본금을 어떻게 모으고 또 열혈 독자층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긴 하지만, 성역 없는 탐사보도라는 창간 목표를 지켜간다면 응원군은 많습니다.
<인터뷰> 정동익(동아투위 위원장): “올곧게 살아가려는 후배 기자들이 자본권력에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동료 언론인들도 도와야 되고 양식있는 시민들도 많이 도움을 주셔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조형근(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부회장): “지난 1년간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웠던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다면 한국사회에서 사실과 진실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매체가 되리라고 저희는 믿고 있습니다.”
30년 전 동아일보가 광고탄압으로 백지광고를 낼 때 많은 독자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빈 지면을 메워줬습니다.
지금 시사저널을 떠난 기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들의 격려와 동료 언론인들의 관심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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