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침묵했고 시민은 분노했다 1년 넘게 지속되어 왔던 <시사저널> 기사 삭제 파문이 끝내 기자들이 <시사저널>을 떠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지난 6월26일 결별 기자회견을 가진 시사저널 기자들은 7월2일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을 발족시키고 신매체 창간을 선포했다. 지난 2월 초 시사저널 사건의 야만성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던 [PD수첩](7월3일 밤 11시10분 방영)은 이번 사태를 ‘한국 언론의 또 하나의 좌절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KBS <미디어포커스>팀의 해석은 좀 더 적극적이었다. 30여 년 전 동아투위 조선투위로 발현되었던 편집권 싸움과 이번 사태를 대비시키면서 언론계의 자성을 촉구했다. 군사 정권 아래에서도 당시 언론은 사태를 보도하려고 애를 썼으나 이번에는 이른바 주요 신문들이 한결같이 입을 닫았다는 것이다. <미디어포커스>는 ‘여론 조사에 따르면 언론계 기자의 80%는 기사 삭제가 부당하다고 판단했으나, 일반 국민의 60%는 시사저널 사태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즉 한국 언론이 자신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자신들은 알고도, 이를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뜻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주요신문, 침묵의 카르텔로 사태 ‘묵살’ 그 지적대로 시사저널 사태의 종언을 알리는 부고 기사조차도 양극화 양상이 또렷했다. 특히 주요 일간지는 아예 시사저널과의 결별을 알리는 단신으로도 취급하지 않았으나, 밀착 보도해왔던 매체들은 앞다투어 이 사태를 알렸다. <오마이뉴스>는 아예 ‘특별 기획 진품 시사저널을 만들자’라는 깃발 아래 릴레이 기고와 관련 기사를 집중 배치하고, 후원 방법을 안내하는 배너 광고를 설치했다. <프레시안><기자협회보><미디어오늘><대자보> 등은 시종 날선 문제 의식을 드러내는 기사들을 집중 배치했다. 이번 사태에 가장 분노한 것은 일반 시민들이었다. 그 기세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시사기자단이 발족을 선언하고 신매체 창간을 선언한 것이 지난 7월2일. 시사기자단은 7월5일 오후 4시 현재, 발족 사흘 만에 통장에 입금된 후원금이 2억2천만 원을 돌파했다고 후원 현황을 공개했다. 정기구독 약정액과 투자 의향서를 통해 확인된 투자 약속 금액은 이미 십 수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었다. 시사기자단 측은 “누군가 후원금을 보내면서 ‘뉴스를 볼 수도 안볼 수도 없는 세상’이라고 개탄했다. 이 땅에 더 이상 정직한 보고자 노릇을 하는 매체가 없다는, 기성 언론에 대한 가없는 염증을 확인했다. 과연 우리는 그 염증에 책임이 없는가, 우리가 만들려는 매체가 기성 언론과 다를 수 있는가 두려운 마음이 든다”라고 말했다. 한편 기자들은 회사와 결별 협상을 가진 뒤 7월6일 오전 그동안 노조 집행부가 일괄 보관해왔던 사표를 사측에 전달했다. 파업 기자 22명 가운데 20명이 집단 사표를 제출했고, 2명은 제출하지 않았다. 그들은 “회사에 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와 싸우기 위해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무기 정직과 대기발령 상태인 해당 기자 두 명은, 현재 부당징계 철회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파업 기자 22명이 <시사저널>을 모두 떠나기로 한 가운데, 그동안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조업을 계속해왔던 지원 부서 직원들도 최근 신매체 창간에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른바 ‘조업조’로 불리던 직원 7명 전원은 회사에 사의를 표했다. 이들은 지난 6개월 동안 기자들이 파업을 하더라도 조업에 참여하라는 노동조합의 지시에 따라 발간 작업에 참여했었다. 조업조의 직무는 편집 오퍼레이팅과 교열, 편집위원, 사진 자료 정리, 경리 및 서무 업무이다. 시사기자단 측은 “고용이 보장되어 있는 그들조차 밥그릇을 내던지고 벌판으로 나와 기자들과 뜻을 함께 하겠다고 하니 어깨가 더욱 무겁다. 창간 과정의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미 시사저널을 떠난 선후배 언론인들도 기자들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시사저널 출신 언론인 40여 명은 지난 7월9일 전 시사저널 기자들의 행보에 대한 격려와 위로의 뜻을 담은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2쪽 성명서 참조). 독자들의 지원도 더욱 조직화될 조짐이다.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지난 7월7일 모임을 갖고 가칭 참언론실천 시사독자단(이하 시사독자단 www.sisalove.com)으로 명패를 바꿔 달았다. 기존 시사모 운영위원 조형근 씨는 “시사모는 ‘나를 고소하라’ 운동과 ‘진품 시사저널 예약 운동’을 벌이면서 사태 정상화를 염원했으나 이제 기자들이 모두 시사저널을 떠난 이상, 독립 언론의 정신을 지키려는 전 시사저널 기자들의 신매체를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본 뜻에 맞는 일이라고 판단했다”라면서 구독 약정 운동 및 홍보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사저널> 출신 언론인들의 지지 성명서 배운 것보다 더 많이 실천한 그대들에게 ‘삼성 기사 삭제 파문’이 벌어진 이후 지난 1년여 동안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사태의 순조로운 해결을 낙관했습니다. 우리가 한때 몸담았던 직장, 참으로 자랑스러웠던 매체 <시사저널>이라면 마땅히 그래야만 하고,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파업기자들은 가끔 농반 진반으로 말하곤 했습니다.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행했는데 이 지경이 되고 말았다고요. 가르쳤으니 책임지라고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배에게 배운 바를 우리의 후배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 외에 촌지는 받아서 아니 되며, 부당한 외압에 굴하지 말 것이며, 광고와 기사를 거래하지 말 것’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완벽했던 것도, 내부 갈등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한국 언론이 스스로 쳐놓은 성역에서 온전하게 자유롭지 않았고, 선후배들 간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고, 기사 게재를 둘러싸고 경영진과 마찰이 빚어진 적도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이견과 갈등은 매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상식과 이성의 힘으로 조율되고 타결되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불행한 사태의 발단이 된 ‘삼성 기사 무단 삭제’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언론사에서 유례없는 폭거였거니와, 시사저널의 전통과 기풍에 익숙한 구성원들에게는 더욱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동료와 후배들은 상식적인 판단에 따라 문제 제기에 나섰고, 지켜보는 우리 전직 기자들은 ‘상식의 힘’이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참하게 부인당했고, 희망은 참담하게 무너졌습니다. 우리의 후배이자 동료인 22명의 파업기자들은 눈물을 뿌리면서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했던 매체와의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눈물로 치르는 결별식을 지면으로, 화면으로 접하면서 우리도 함께 울었습니다. 매체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너무도 잘 알기에 결별을 택한 그들이 겪었을 번민과 고통 또한 능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전직 기자들이 아끼고 자랑스러워한 것은 한낱 제호와 법인이 아니었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사실과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 혼이 담긴 매체, 기자들의 땀과 눈물이 배인 18년 세월이었습니다. 독립정신이 훼손되고 유린당한 매체, 기자다운 기자들이 떠나버린 <시사저널>은 더 이상 <시사저널>이 아닙니다. 알맹이는 가고 껍데기만 남은, 죽은 매체일 뿐입니다. 우리 전직들은 시사저널을 사랑했기에 시사저널로 돌아가지 않은 파업 기자들의 결단을 지지하면서 이제 정든 그 이름, 아름다운 과거와 작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굿바이 시사저널! 2007년7월9일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의 행보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이번 성명에는 이윤삼 전<시사저널>편집국장을 비롯해,박순철 전 <시사저널> 편집국장, 박상기 전 편집장, 김상익 전 편집장, 서명숙 전 편집장과 시사저널에서 기자로 일했던 선배 언론인 40명이 동참했습니다. <가나다 순> 강용석, 강철주, 고명희, 김 당, 김방희, 김봉규, 김상익, 김상현, 김선엽, 김성원, 김의환, 김재일, 김종민, 김진화, 김태희, 김현숙, 박상기, 박순철, 박재권, 박준웅, 박중환, 서명숙, 성우제, 소성민, 송 준, 신중식, 오민수, 우정제, 이문재, 이병철, 이상철, 이성남, 이윤삼, 이흥환, 조성휘, 조천용, 최영재, 최 진, 한종호, 허광준
금창태 사장의 법정 투쟁 ‘3전 3패’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당했던 조형근 씨 등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사모) 운영위원 6명이 지난 6월 28일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시사모 운영진이 ‘진품 시사저널 예약운동’을 벌이자 금창태 사장은 지난 3월 이들을 고소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검찰청(노상길 검사)은 이들의 행위가 모욕죄나 업무방해,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위반 등에 해당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불기소로 사건을 종결했다. 금사장의 법정 투쟁이 지난하리라는 기미는 이미 한 달여 전부터 감지됐다. 고경태 전 <한겨레21> 편집장이 지난 5월30일 1심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는 금사장의 기사 삭제 행위가 “몰상식의 표본”이라고 칼럼에 썼다가 민·형사 겹고소를 당했다. 고경태씨는 지난 6월 27일, 동일 사안으로 묶여있던 민사 소송에서도 1심 무죄 판결을 손에 쥐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25부(한창호 부장판사)는 금사장이 고경태씨와 정일용 한국기자협회장, 최민희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총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논평이나 칼럼에서 다소 과장된 표현을 사용했더라도 전체적으로 진실에 부합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법원과 검찰에서 들려오는 연이은 소식들은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시사해주고 있다. 금사장은 ‘뒷구멍 기사 삭제’ 직후 기자들이 항의하자 줄징계로 입을 막으려고 했다. 밖의 비판에 대해서는 고소로 응대했다. 앞서 언급한 이들 외에 MBC [PD수첩]의 강지웅 PD와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등 외부 언론인이 명예훼손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그의 소송 집착증은 안의 식구들과, 심지어 독자들에게까지 확산되었다. 시사저널 노조 전임 집행부 6명과 서명숙 전 편집장, 고재열 기자가 경찰서에 출두했고, 시사모 운영위원 6명과 회원 3명이 검찰청에 불려갔다. 지금까지 모두 22명이 줄고소를 당했다. 법에 대한 금사장의 맹신은 결국 시사저널 사태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법과 원칙을 부르짖었던 금창태 사장의 주장에 대해 야속하게도 법원은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두 판결의 의미는 매우 크다. 우선 삼성 기사 삭제 사건의 전말에 관하여 실체적인 진실을 밝혀주고 있다. 이윤삼 전 편집국장을 비롯한 편집국 관계자는 물론, 금창태 사장을 비롯한 사측 관계자들의 증언을 법정에서 직접 청취한 뒤 사건의 실체를 밝혀놓았다. 삭제 과정의 전말에 대해 어느 일방의 주장이 아닌 법원의 객관적인 판단을 적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하나는 한국 언론의 통상적인 편집권 행사 방식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이후 언론계나 학계에서 편집권의 귀속처와 정당한 행사 방식에 관해 본격적인 논의가 벌어질 때 기초 자료가 될 만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사건의 실체가 궁금한 이들과 이후 편집권 논제를 연구해야할 전문가들을 위해 판결문을 요약해 게재한다.
22명 전직 기자를 취재 현장으로 보냅시다
“언론인은 무엇보다 시대의 상처여야 한다는 각성은 아팠다. 이제 투기의 광풍이 수그러들 줄 모르는 물질주의의 시대에 <시사저널> 기자들이 선 자리는 어느덧 고도(孤島)로 변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대변하는 가치는 변방으로 밀려나고 고립되었다. 그들이 1년 넘게 고통스런 투쟁을 벌이는 동안 거대언론들이 이를 외면했던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더욱 중요한 사실은 물질주의가 키워낸, 사회적 정의에 대한 불감증의 만연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바로 이 사실 위에 거리로 나간 기자들을 주목할 이유는 더 커진다. 비판 언론의 이름으로 숨겨진 이익들이 거침없이 여론을 왜곡시키는 냉소적인 언론 풍토에서 대의를 위해 소승적 이익을 던져버리는 우직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소중해졌다.” 박순철 (동아투위 위원·<시사저널> 전 편집국장)
∼•∼•∼•∼•∼•∼•∼•∼•∼•∼•∼•∼•∼•∼•∼•∼•∼•∼ 내가 만나본 <시사저널>의 구성원들 가운데 시끄러운 사람은 없었다. 대체로 말투는 나직했지만 이따금 킬킬거리며 잘 웃었다. 그러다가도 의문이 있는 사안에는 쇠심줄 같은 고집으로 파고들었고 옳다고 믿는 사안에는 대문을 활짝 열고 있는 포도청 앞에 서서도 양보하지 않았다. 자본과 방패막이 없어 받아들여야 했던 인고의 세월이 구성원들을 혈족처럼 화합하고 단결하게 했던 것 같다. <시사저널> 기자들의 싸움이 내게는 <시사저널>이 갖고 있던 품위를 되찾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새로 태어날 잡지는, 분명히 예전의 품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서둘지 않고 선정적이지 않으면서, 스스로가 중심이며 엄정한 눈에 눈물까지 가진 잡지가 멀지 않은 어느날, 오래도록 알고 지낸 친구의 선물처럼 우편함에 들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성석제 (소설가)
∼•∼•∼•∼•∼•∼•∼•∼•∼•∼•∼•∼•∼•∼•∼•∼•∼•∼ <시사저널> 기자들의 의로운 투쟁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것은 <시사저널>의 자유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사기자단은 그들이 창간할 매체가 과연 왜 존재해야 하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시사저널>에서 사장, 사주와 대립했던 것보다 더 무서운 자본과 직접 맞닥뜨려야 함에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시사기자단은 전체 언론의 민주화를 위해 기여해야 할 빚을 지고 있다. 나는 군 생활 때문에 1987년 6월 항쟁 시기에 현장에 있지 못했고 6월 항쟁의 산물이기도 한 한겨레신문의 창간 당시 어영부영하다가 창간 주주의 기회를 놓쳤다. 그 역사적 기회를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다. 김서중 (민언련 공동대표·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저는 전 <시사저널> 기자들의 새 매체 창간을 지지하며, 제가 보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그림을 내놓겠습니다. 그림 5점을 내놓겠습니다. 제가 조국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현재 멕시코가 바라보이는 아리조나 국경지역에서 장사를 합니다. 솔직히 저 역시 인간이기에 기증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소장품에 애틋한 정이 없는 애호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보다 새 매체 창간이 더 급한 것 같고, 창간기금을 마련하려고 고생하는 22명의 전 <시사저널> 기자들의 모습이 제가 소장한 그림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림을 기증하려고 합니다. 22명의 ‘전직 기자’들이 취재 현장으로 돌아가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이충렬 (미국 아리조나·예비 독자) 신매체 정기구독을 신청하고 후원하는 “저는 지금 공익이랍니다. 한달 월급의 4분의 3을 ㅠ.ㅠ 입금합니다.” “칼보다 강한 펜, 펜보다 강한 돈, 돈보다 강한 당신들.” “나는 73세 노인입니다. 창간호부터 쭉 읽었습니다. 은퇴하고 이거 읽는 재미로 살았는데 이 나이에 이게 꺾여버리면 너무 가슴이 아플 것 같아. 단 한 페이지라도 좋으니 초심 잃지 말고 꿋꿋이 내주세요.” “시사저널의 취재 방향에 항상 찬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독립언론의 취재권이 침해받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어 정기구독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파이팅.” 나는 시사저널 의 마지막을 보았다
‘투표결과 6 대 1.’ 나머지 한 표도 사건의 엄중함을 과연 잘 다룰 수 있을까라는 중압감 탓이라고 하니 사실은 7 대 0 의 만장일치. 시사저널 사태를 두 번째로 다룬 [PD수첩]‘기자로 산다는 것’은 제작진의 투표로 시작되었다. 거대자본이라는 성역 앞에 언론계 종사자 중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PD수첩]마저 시사저널 사태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성역 없는 탐사보도’라는 기치를 우뚝 세웠던 한 독립 언론의 역사가 너무도 허망하게 잊힐 것 같다는 노파심마저 드는 지난 6월이었다. 단식현장에서 시사저널 기자들을 만났다. 다섯 달을 훌쩍 넘긴 파업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회사와의 협상, 기자로서 취재하지 못하고 글을 쓸 수 없는 답답한 상황,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 겪는 외벌이 기자의 심적 고통. 기자들의 얼굴에는 피로함이 역력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했기에 그들의 얼굴에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결연한 의지가 남 아있었다. 고별기자회견의 현장에서, 시사저널에 오기 위해서 썼던 사표가 마지막 사표인 줄 알았다는 고백에, 생활고로 인해 과외를 하고, 집에 있는 에어컨을 떼다 팔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인터뷰가 눈물바다가 되었을 때 나 역시 마음이 먹먹해져서 입술을 꼭 깨물어야 했었다. 요즘 언론에 칭찬기사가 너무 많다고 자기는 비판 기사만 쓰겠다는, 대기업의 밥과 술을 안 얻어먹는 기자도 있어야 되지 않냐 는 한 기자의 외침은 곰곰이 초심을 생각해야 할 지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것은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이다. 만원, 이만 원 씩 모인 소액후원금이 벌써 2억을 넘어섰다고 한다. 시사저널 같은 잡지가 대한민국에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어느 게시판의 글은 너무도 아프게 들린다. 문화방송 [PD수첩]이춘근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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