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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귀처럼 먹습니다
-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릴레이 편지 3 -


저는 굶는 두 기자 옆에서 아귀처럼 먹고 마십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더 허기가 지고 목이 마릅니다.

찾아온 손님들에게는 식사했느냐는 인사말이 자연스러운데, 답을 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말을 더듬습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릴대로 시달리다가 단식에 돌입한 정희상 기자는 단식 이틀째 벌써 얼굴이 시커매졌습니다. 김은남 기자는 어찌된 영문인지 얼굴이 맑아지면서 미색이 돕니다. 하지만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비탈길을 올라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인 건 어쩌지 못합니다.

그들을 말리지 못한 탓에 다른 기자들은 할 일이 많습니다. 단식 첫날 퇴약볕에 굶고 앉아있는 그들에게 그늘막하나 마련하는 일도 기자들에게는 큰 일이었습니다.

단식 첫날 구청직원들이 출동해 그늘막을 걷어가 버렸거든요. 거세게 항의를 한 다음에야 구청 담당자는 누군가 민원을 넣어서 처리하는 것이라고 인정을 합니다. 골목길에 죽치고 서있던 회사 관계자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선선히 인정을 하더군요. 안그래도 굶는 사람들을 퇴약볕에 말려죽일 작정이었느냐고 악다구니를 했지만, 사실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직장폐쇄 2시간 전에 고속도로위를 달리던 기자들에게 사무실 폐쇄를 통보하고 갈 곳 없는 기자들이 회사 앞에 천막을 치자, 건물주에게 저들을 쫓아내 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퇴약볕의 기세가 누그러질 무렵까지 기다렸다가 그늘막을 걷은 구청 직원들은 그나마 기자들에게 선처를 베푼 것입니다.

남보다 못한, 한솥밥을 먹던 이들의 행태를 보면서 먹고 사는 일의 지엄함(!)을 느낍니다. 아, 저렇게까지 해야 먹고 사는 것이로구나 느낍니다. 인간을 마소로 부릴 수 있는 돈의 권능을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 뿐이겠습니까. 지켜보는 눈들이 울타리가 되지 못했을 많은 갈등의 현장에서는 이보다 더한 일들이 횡행했겠지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배가 맹렬하게 고픕니다.

단식 이틀째 오후. 기자들이 가장 보고파했던 창간 독자, 박수무당이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채수찬 국회의원이, 기자들보다 더 어두운 낯빛으로 해지는 골목길을 지키다 돌아갔습니다. 이름을 기억 못하는 독자들이 여럿 인사를 하고 갔고, 환희가 오후 내내 골목길에서 책을 읽다 돌아갑니다. 고소당한 시사모 운영위원, 그냥 시사모 회원이라는 분, 또 단식 기자들의 지인들이 한바탕 수다를 떨고 갑니다. 산책 나온 주민이 생수통에 얼음 얼린 것을 건네주고 갑니다. 한 시사모 회원이 모기장과 미숫가루를 들고 와서는, 커피라고 커피는 마셔도 된다고 빡빡 우깁니다. 어제 밤 거리를 지켰던 황보 반이 또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올라왔습니다.

졸지에 몇 년 전 쓴 서평이 난도질 당한 채, 광고가 아닌 척 광고로 둔갑해 실리는 일을 당한 동화작가 선안나씨도 퇴근길에 들렀습니다. 열일을 제쳐두고 시사저널 사태를 빗댄 동화를 쓰고 있다했습니다. 금사장은 ‘내꼬야 사장’으로 불리고 있더군요. 항상 “다 내꼬야~ 뭐든지 다 내 맘대로 할꼬야”를 외치고 있어서라나. 안일이 일전에 올려준 글 ‘심하게 짖는 개’ 에 이어 또 하나의 탁월한 우화가 탄생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한 기자는, 두 사람의 단식에 항의하며 밥을 쫄쫄 굶었습니다. 아침에 북아현동 골목길에 당도한 그의 일성은 개짖는 소리였습니다. 다짜고짜 “왈왈!” 짖은 그는, 전날 자신을 개**로 부른 인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부모, 개 아니다.’

늦은 밤 그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내가 단식에 항의하는 단식한다고, 두 사람 단식 그만두지 않을거죠. 심회장도 그래요. 이게 뭡니까.” 그가 하루 종일 끓였을 심화를 생각하니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점점 끝이 확연해집니다.

2007년 6월19일 시사저널 기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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