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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입 모았는데 여론이 안 따라오네


조중동 입 모았는데 여론이 안 따라오네 
조중동이 휘청거린다. 성난 촛불 민심 앞에서 지면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이다.
이리저리 논조를 바꿔가며 던져봐도,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광고 내리기 운동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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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오늘 서울 광화문 일대가 촛불의 광장이 된 뒤로, 성난 시민은 조선일보(왼쪽)와 동아일보(오른쪽)를 그냥 보아 넘기는 법이 없다.


난감한 표정을 숨기기도 쉽지 않다. 촛불에 놀란 조중동의 위기의식은 지면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촛불이 처음 거리로 나선 5월24일 이후, 세 신문은 약속이나 한 듯 우왕좌왕했다. 빼들었던 카드가 하나같이 실패로 돌아가며 며칠 단위로 논조가 바뀌는 갈지자걸음이다. 괴담론·배후론·불법시위론·폭력집회론·보혁갈등론·자중론·촛불변질론에 이르기까지, 촛불집회가 절정으로 치달았던 지난 한 달은 조중동의 ‘논조 돌려막기’가 극에 달하기도 했다. 

그렇게 숱하게 논조를 바꾸어봐도 ‘먹히는 카드’가 없다는 게 조중동의 고민이다. 이들이 입을 모아 한목소리를 내도 여론이 반전되기는커녕 반격만 돌아온다. 그간 조중동이 누려왔던 여론 형성의 권력이 이번 촛불집회를 계기로 녹아내리는 모양새다.

처음에는 자신만만했다. 가두시위 소식을 지면에 실은 첫날인 5월26일, 세 신문은 모두 ‘불법시위론’ 카드를 뽑아들었다. 조선일보는 ‘법 사라진 서울의 주말’, 동아일보는 ‘촛불, 끝내 차도 불법점거’, 중앙일보는 ‘촛불집회 17번 만에 불법시위로 변질’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중앙일보는 촛불의 거리 진출에 대한 대처가 “정부의 법집행 의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라며 경찰의 강경 대응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주말 동안의 강경 진압으로 들끓던 당시 여론과 한참 동떨어진 기사였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이명박이 불법이다”라는 구호로 화답했다.

연이은 헛발질로 놀림만 받아

‘배후론’도 단골이었다. 세 신문 모두 시위 방식이 신출귀몰하고 구호가 과격해졌다며 ‘배후’를 의심했다. 동아일보는 아예 5월26일자 사설에서 “(가두시위 선동을) 특정 세력이 계획적으로 그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라고 배후론을 정면 거론했다.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는 “없는 배후를 자꾸 찾아내라니 미칠 노릇이다”라는 푸념도 나왔다. ‘배후’라는 단어 역시 현장에서는 놀림거리가 됐다. 시위대에 김밥을 제공한 디시인사이드 기타음식갤러리는 “우리가 여러분의 배후입니다”라고 적힌 스티커를 김밥에 붙였다. 시위대가 든 피켓에서는 ‘배후는 양초공장’ 따위 문구도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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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백승기 6월11일자 조선·중앙·동아 일보. 불법·배후 따위 표현을 이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론이 예전처럼 따라와주지 않는다는 걸 먼저 감지한 곳은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첫주 금요일인 5월30일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순정으로 (촛불집회에) 나왔고…’라는 제목의 기사를 크게 실었다. 불법·폭력 등의 단어는 쏙 들어갔다. ‘참을 수 없는 순정’이라는 표현은 조선일보의 급격한 변신을 상징하는 말로 한때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가두시위 2주차부터는 세 신문 모두 납작 엎드렸다. 6월1일 경찰이 여대생의 머리를 군홧발로 짓밟는 동영상이 나돌면서 여론이 악화 일로였던 탓이다. “이때부터 단순 스트레이트 기사가 부쩍 늘었다”라고 한 기자는 전했다. 불법이니 배후니 하는 단어를 꺼낼 엄두를 못 냈다는 얘기다. 촛불집회 특유의 축제 분위기를 소개하는가 하면, 단골 메뉴였던 교통체증 언급도 사라졌다. 시위대 일부에서 쇠파이프가 등장한 다음 날인 6월9일에는 폭력 시위로 변질된다며 잠시 공세로 돌아섰지만, 집회 참가자들이 스스로 쇠파이프를 퇴출시켜버려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조중동이 현장 취재를 안 했던 모양이다”

촛불집회에 최대 인파가 모인 다음 날인 6월11일, 세 신문은 약속이나 한 듯 다음 카드를 꺼내들었다. 세 신문은 사설에서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정부의 답을 기다려보자”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할 만큼 할 때까지’ 시민을 기다린 후에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중앙일보는 6월3일에 이미 ‘촛불시위 그만하면 충분하다’라는 사설을 실었다. 6월10일의 최대 규모 집회는 물론 그 전주 주말의 72시간 연속집회도 치르기 전이다. 10일을 하루 앞둔 9일의 사설 제목도 ‘이제 정부에 시간을 주자’였다. 여론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부터 홀로 “그만하면 됐다”라고 꾸준히 외쳐온 셈이다.

촛불집회가 조정기에 들어간 지난주, 조중동의 보도 태도는 또 한 번 바뀌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정권퇴진 불사” 선언을 근거로, 촛불집회가 정치집회로 변질됐다며 공세를 펼치고 나섰다. 참가 시민의 숫자가 준 것도 집회가 대운하와 공기업 민영화 등 정치적 주제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집회 현장에서 만난 최 아무개씨(46)는 “이 집회는 처음부터 이명박 탄핵과 대운하·민영화 반대를 외쳤다. 조중동이 이제 와 그러는 걸 보니 확실히 그때 현장 취재를 안 했던 모양이다”라고 비꼬았다.

 
현장 취재는 했다. 문제는 기억력이다. 중앙일보는 5월28일자 기사에서 이미 “가두시위에 나서면서 정치 구호가 나오고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 등 촛불이 변질됐다”라고 썼다. 동아일보 역시 5월26일자에서 “참가자는 과격해졌고 구호는 정권 타도로 변질됐다”라고 보도했다. 지난주 조중동이 호들갑을 떨며 내놓은 ‘촛불이 변질됐다’라는 주장은, 이미 한 달 전에 꺼내들었다 실패한 카드를 슬그머니 다시 뽑은 것이라는 결론이다. 지난주에는 배후론도 불법집회론도 모두 되살아났다. 6월17일자 중앙일보는 ‘불법시위대 대놓고 “정권퇴진”… 정부는 뭐 하고 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고, 18일자 동아일보는 “KBS 앞 촛불집회에 배후세력이 개입했다”라는 KBS 노조의 주장을 1면과 5면에서 자세하게 다뤘다. 논조와 표현 모두 한 달 전으로 돌아간 듯한 ‘돌려막기’다.

자신이 가본 촛불집회와 조중동의 보도 사이에서 괴리를 몸으로 느낀 시민은 이제 ‘조중동 광고 내리기 운동’을 전개한다. 2000년대 초반 지식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안티조선 운동’보다 훨씬 뿌리가 깊어 파장도 클 전망이다. 위기감을 느낀 세 신문은 6월18일자(조선)와 19일자(중앙·동아)에서 한 면을 통째로 할애해 광고 내리기 운동을 다뤘다. “욕설과 협박이 난무한다”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시사IN> 설문조사 결과 조중동 독자 사이에서도 ‘촛불집회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절반이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16~19쪽 기사 참조). 이 기간에 조중동은 여론을 주도하기는커녕 자기 독자의 눈높이조차 따라잡지 못했다는 얘기다. 조중동의 위기는 괜한 말이 아니다.

<시사IN> 천관율




본 기사는 <시사IN> 제41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