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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미리보기

‘시민과 싸우는’ 조중동 기자의 고뇌


‘시민과 싸우는’ 조중동 기자의 고뇌 
시민의 ‘안티 운동’으로 요즘 조중동 기자는 마음이 편치 않다.
“보도를 바르게 하지 못했다”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지만,
 “너무 심하다”라며 억울해하는 기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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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0일 밤, 70만(주최 측 추산) 촛불집회 시위대가 휩쓸고 간 서울 청계광장 들머리에 동아일보 깃발 한 장이 깔렸다. 누군가 동아일보 본사 건물에서 떼어낸 것이다. 낙서로 더럽혀진 깃발 위로 또 한번, 시민들의 발이 지나갔다. 사람들은 웃고, 욕하고, 통쾌해하며 깃발에 발자국을 남겼다.

‘조중동’ 수난기이다. 촛불집회가 벌어진 지난 40여 일 동안,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건물과 소속 기자들은 마치 섬처럼 고립됐다. 조선·동아 본사 코앞에서는 연일 ‘조중동 절독 서명운동’이 진행됐다. 시위대는 조중동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불·꺼·라!”라는 집단 구호를 빼먹지 않았다. 건물 외벽·정문·신문 전시대 등에는 ‘조중동 끊기’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었다. 조중동 기자는 시민 앞에서 명함 한 장 못 내밀고, 인터뷰 멘트 하나 따기 힘들었다.

시위대에 참여하며 마음 달래기도

기자들은 괴롭다. 지난 5월30일,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자기의 블로그에 ‘중앙일보가 기록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가 며칠 뒤 내렸다. 그는 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대해, 내가 몸담고 있는 중앙일보가 최근 기록한 것과 민심은 다시는 맞닿을 일이 없을 것처럼 멀어지고 말았다는 데 생각이 미쳐서, 속이 쓰리다”라고 밝혔다. 어느 기자는 눈물을 찔끔거렸고, 누군가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또 다른 기자는 쉬는 날 시위대 일원으로 참가하며 마음을 달랬다.

<미디어오늘> 등 언론 비평 매체는 조중동 내부에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진다고 보도했다. 6월5일자 조선일보 노보에 실린 기자 설문조사 결과와, 6월3일 발행된 동아일보 노보 <동고동락> 315호 내용이 인용됐다. 조선일보 기자 40%는 “광우병 쇠고기 관련 보도를 바르게 하지 못했다”라고 답했다. 동아일보 노보는 “대선과 광우병 논란을 거치며 우리 내부는 침묵과 냉소, 피로만 가득하다”라는 입사 11년차 기자 목소리와, “요즘 여론을 듣다 보면 동아일보에 대한 신뢰가 이렇게 떨어졌나 싶어 충격적이다”라고 시작하는 허문명 논설위원의 글을 실었다. 네티즌은 게시판 등에 이런 내용을 퍼 나르고, “통쾌하다”라거나 “이미 늦었다” 따위의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조선·동아·중앙은 공식으로 ‘자성’과 ‘위기의식’을 내비친 적이 없다. 중앙일보 유권하 CR팀장은 “내부에 위기감이 실재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동아일보 민동윤 노조 사무국장도 “<동고동락> 노보는 편집국장 취임 3주년 평가를 위해 기자들에게 할 말을 적어달라고 해 정리한 것일 뿐, 어떤 방침을 가지고 만든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노보에 글을 보낸 허문명 논설위원도 “그 글 이상 언급할 것은 없다. 내용도 개인 의견이지, 논설위원실의 전체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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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시위대가 동아일보 깃발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


기자가 느끼는 괴로움과 고민도 개인차가 있다. 어떤 기자는 “일보 기자라 하면 대한민국에 안 만나줄 사람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은근히 자부해왔다. 그런데 촛불집회 현장에 나가면 누가 나한테 어디 기자냐고 물을까 봐 걱정부터 앞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 기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매체를 모욕하는 광경을 많이 봤지만 많이 괴롭지는 않다. 내가 쓰는 기사로 욕먹는 것도 아니고, 광고가 줄어든다고 해서 당장 내 월급이 깎이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 소속 부서에 따라서도 다르다. 인터넷뉴스팀의 한 기자는 “인터넷 여론 동향을 주시하는 우리 부서에서는 기자들 간 내부 논쟁과 의견 수렴이 그나마 활발한 편이지만, 정신없이 바쁜 사회부 등에서는 ‘위기의식’ 자체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조차 없다”라고 말했다.

“억울하다”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신입기자는 “어떤 이들은 조중동을 아예 보지도 않고 욕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중동 모두 논조가 똑같은 것도 아니고, 애초보다 많이 바뀌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가 공정해지리라고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것 같다. 그냥 ‘조중동’이라는 분명한 적을 하나 만들어놓고 강하게 세력을 결집하려는 건 아닌가 싶다.” 중앙일보 유 팀장은 “요즘 벌어지는 안티 조중동 운동이 법치국가에서 정당성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더구나 그런 운동을 일부 언론이 띄워주기까지 하니 잘못을 더욱 못 깨닫는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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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허문명 논설위원은 노보 기고문에서 “동아일보가 다시 언론의 정도로 돌아와야 한다”라고 고언했다. “어떻게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6월17일, 조선일보 내부 게시판에 경영기획실장 이름으로 공지글이 하나 떴다. ‘82쿡닷컴’ 등에 보냈다가 논란이 된 ‘악성 게시물 삭제 요청’ 공문의 취지와 향후 대응 방침을 사원에게 설명하는 글이었다. 강효상 경영기획실장은 “보도 방향에 대한 불만 중 타당한 부분에 대해 본지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으며, 향후 사태가 정리된 뒤 종합적으로 되돌아볼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실정법까지 무시하며 언론사의 숨통을 죄어 쓰러뜨리겠다는 일부 세력의 기도에는 단호히 대처하고 저항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회사 논조에 찬성하는 이든, 반대하는 이든 조중동 기자들은 모두 “이런 사태가 빨리 좀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 기자는 “요새 편집국에서는, 장마와 학교의 기말고사가 겹치면서 촛불이 줄어든 것처럼 조중동 반대 여론도 곧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싸움이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조선일보의 대응에 요리전문 사이트 ‘82쿡닷컴’에는 회원이 더 몰렸다.  일부 ‘아줌마’ 회원은 6월22일 조선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시민과 싸우는’ 조중동 기자의 고민은 장마와 함께 다시 시작됐다.

<시사IN>변진경


본 기사는 <시사IN> 제41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