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서세원씨는 왜 민감한 시기에 유씨가 머무르는 병원에 갔을까? 그날 병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시사IN>은 누구보다도 그 까닭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각 언론이 보도한 ‘서세원씨가 병실을 방문할 때 동행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이 바로 <시사IN> 기자였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날 밤 서세원씨와 유씨의 만남은 <시사IN>과의 독점 인터뷰 자리였다. 말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기자와 유씨였다.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주진우 기자’였다. 그러나 이튿날 언론에 주 기자는 ‘신원 미상의 남자’로 둔갑했다. 며칠째 고 장자연씨 사건이 온갖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사건의 내막을 알 만한 고 장자연씨의 전 매니저 유 아무개씨 병실 앞에는 취재진 수십명이 밤을 새워가며 진을 치고 있다. 사건의 실체에 가장 가까이 있는 유씨를 인터뷰하고 싶은 것은 기자라면 당연한 일이다. <시사IN>도 어떻게든 유씨를 만나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했다. 그 결과 3월18일 새벽 어렵사리 유씨를 독점 인터뷰할 기회를 잡았다. 유씨와 인터뷰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과정에서 기자는 3월17일 밤 서세원씨를 만났다. 서씨는 “사실 요즘 유씨의 심경이 걱정된다. 신앙인으로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살만은 안 된다고 말해줄 참이다. 만나게 되면 유씨를 위해 기도해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기자는 서씨와 함께 유씨를 단독 인터뷰할 기회를 잡았다. 서씨가 연예계 선배이기 때문에 유씨가 서세원씨의 조언을 귀담아 들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이 과정이 독점 취재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자의 욕심도 작용했다. 기자가 서세원씨와 함께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유씨의 병원을 찾은 시각은 3월18일 0시20분께였다. 병실에 들어서자 유씨는 A4 용지에 기자회견문을 쓰고 있었다. 때마침 두 장째에 2번 문답을 정리하고 있었다. 유씨가 정리할 내용은 10개도 넘었다. 일단 내용을 훑어보니 기자회견에서 밝힌다는 내용이 너무 장황했다. 더구나 기자회견문에는 그의 복잡한 주관적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문장의 앞뒤가 맞지 않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었다. 먼저 기자가 밀착 인터뷰를 요청하고 유씨를 다음과 같은 말로 설득했다. “이럴 때일수록 진실만이 힘을 가진다. 만에 하나라도 감정적 추측이 섞여 있거나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면 유 사장의 말이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사실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털어놓아달라.” 서세원씨 역시 유씨가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문밖에서 내막도 모른 채 이 과정에서 드문드문 새어나오는 우리의 인터뷰 추진 대화를 듣던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는 이 일이 ‘서세원씨가 유씨의 기자회견을 막았다’로 둔갑했다. 인터뷰 당시 서세원씨는 “내 경험상 기자회견을 한다면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왕에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면 변호사나 주위 사람들과 상의해서 신중하게 말해야 한다. 나도 있고 연예계에서도 유 사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다른 생각(자살)은 절대 하지 마라. 누가 괴롭히면 우리 연예계에서 보호해주겠다”라고 다독였다. 장 자연 문건과 관련해 유씨는 “문건은 유족과 함께 태워버렸다”라고 했다. 서씨는 “유서를 태우고 안 태우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KBS에서 리스트를 공개해 시중에 떠돌아다니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씨가 “내가 KBS 기자에게 준 사실이 없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이런 대화 내용은 단편적으로 문밖의 기자들에게 새어나가 마치 서세원씨가 유씨에게 장자연 리스트를 공개하지 말라고 막은 것처럼 와전됐다. 20여 분간 유씨가 <시사IN>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준 뒤 서세원씨는 유씨를 위해 소리내 기도하고 자리를 떴다. 서씨는 “당신이 불교 신자지만 내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니 기도를 하겠다. 그것이 내가 온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서씨를 따라 불교 신자인 유씨도, 유씨의 동료 매니저도 함께 기도했다. 다른 기자들은 이 과정에서 닫혀 있는 문에 귀를 대고 취재를 했다. 문 쪽에서 계속 기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문에 병실 안에서는 기자와 유씨가 주로 필담을 나누었다. 그런데도 일부 기자들은 목소리가 크게 흘러나온 부정확한 조각들을 모아서 추측성 짜맞추기식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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