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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편집국

서울 왕십리, 뉴타운이 서럽다


서울 왕십리, 뉴타운이 서럽다
아줌마와 노인들 밀어내고, 세입자 울리는 뉴타운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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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모차는 촛불집회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7월15일 오전 9시 서울시 성동구청 1층 로비가 사람들로 붐볐다. 왕십리 뉴타운 지역 세입자 80여명이었다. 대부분 중년의 아줌마들이었다. 어른들 틈에서 아기들이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유모차를 밀고 나온 젊은 엄마들이 아기들을 달래기 위해 로비를 연신 왔다 갔다 했다. 지팡이를 짚고 나온 할머니들은 이따금 주저앉았다.

   이들은 “자기 집이 없는 서민들도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법 적용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7층 구청장실로 가는 길은 모두 차단됐다. 세입자들은 곧 11층 도시개발과 사무실로 올라갔다. 구청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권한 밖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답답한 마음에 정부국토해양부 담당 사무관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던 한 40대 세입자가 언성을 높였다. “아니…자격이라니요? 세입자는 보상에 대해서 말할 자격도 없다는 겁니까?”

서울에 남으려면 빚이라도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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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14일은 강정희(82) 할머니가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 온 지 꼭 석 달이 되는 날이다. 친정집은 일산이지만 18살이 되던 해 결혼을 하면서 왕십리로 이사했다. 1950년 6·25전쟁을 겪으면서 떠돌다 1976년 다시 왕십리로 돌아왔을 때, 할머니 곁에는 남편도 아들도 죽고 없었다. 그 이후로 식당일을 하며 왕십리에서만 홀로 32년을 살았다.

   전세 1400만원에 방 하나와 작은 부엌이 하나. 집주인은 2년 전에 바뀌었는데, 일산에 사는 복덕방 주인이라 했다. 그는 올해 초부터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전화해서 "재개발되는 것 보려고 산 집이니 이제 그만 나가라”고 독촉을 했다. 결국 강 할머니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왕십리를 떠났다.

   비슷한 가격의 전세는 구할 수 없어 보증금 500만원에 월 20만원을 내고 경기도 성남에다 3평짜리 반지하 방을 얻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지팡이를 짚고 언덕을 20분 동안 올라가야 한다.

   왕십리를 떠날 때 강할머니는 재개발 지역에 임대 아파트를 신청했다. “평생 남의 셋방살이만 하는 것이 서러워서, 나도 아파트라는 데에 살아보다 죽고 싶어서…” 강할머니는 “여긴 정이 안간다. 가난해도 정답게 모여살던 왕십리로 돌아가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2002년 왕십리는 뉴타운 시범지역으로 선정됐다. 현재 1·2·3구역으로 나뉘어 사업이 진행 중이다. 뉴타운 시범지역인 왕십리 조합에 따르면, 개발 진행속도가 가장 빠른 2구역은 주민 이주율이 40% 이상이다. 왕십리 개발 구역 전체 4,572세대 중 1500여 세대가 이미 이곳을 떠났다.

   뉴타운 바람에 밀려나온 세입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싼 집을 찾아 뉴타운에서 점점 멀어졌다. 왕십리 인근 지역에 집을 얻으려고 빚도 졌다. 2003년 왕십리 주민이 됐다는 이주영씨(41.주부)는 집주인의 요구로 지난 6월 중곡동으로 이사했다. 이씨는 “그나마 방 3개에 1억 2천만 원짜리 집을 운 좋게 구했다”고 말했다. 왕십리에서 이씨가 살던 전셋집이 같은 조건에 6500만원이었으니, 얼추 2배다. 임은희씨(33.주부)도 상왕십리에서 지하철로 일곱 정거장 떨어진 석관동으로 이사했다. 이사하면서 받은 전세금 4000만원에 2000만원의 빚을 지고 겨우 6000만 원짜리 전셋집을 마련했다.

   왕십리 재개발 구역 밖에 위치한 B부동산의 공인중개사 신씨는 “(왕십리 주변 지역 집값이) 평당 400~500만원이었는데, 올해 들어 3000~4000만원으로 올랐다”며 “서민들 월세, 전셋값이 오른 것은 다 정부 책임이다. 사람들이 부동산만 좋은 일 시켰다고 말하지만, 매물이 싸게 싸게 나와서 빨리 돌아가야 부동산도 돈을 버는데 이건 올라도 너무 올라서 힘들다”라고 말했다.


“뉴타운은 결국 폐업명령”

   남아있는 사람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왕십리 로터리에서 을지로(乙支路)로 이어지는 가로변에는 여전히 기름때 오래된 파란 간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곳은 일종의 ‘금속 백화점’이다. 볼트, 용접기, 기어, 전기, 비철금속 일체를 취급한다. 사업자 등록이 된 업체들은 모두 362개. 무면허 업자들까지 합치면 기계·금속 관련 업체들은 대략 700여개가 된다. 이렇게 집결된 상권 덕분에 거래 업체들은 왕십리에 오면 최소의 비용으로 편리하게 일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쇠를 가지고 하는 모든 일은 왕십리에서 다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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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에 왕십리가 뉴타운 시범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이 곳 금속업체들은 절망에 빠졌다. 왕십리 상공인협의회 안성훈 위원장(56)은 “뉴타운은 결국 폐업 명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적어도 10개의 주변 업체와 협력해야하는 금속업의 특성상, 뉴타운 개발로 이곳의 금속 업체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폐업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거래 업체들 또한 각 부품에 대한 물류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여간 곤란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왕십리 상공인협의회에서는 2002년부터 구청을 향해 줄기차게 공동이주 할 수 있는 ‘공단’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안 위원장은 “경기도에 공단 부지를 조성해주면 합당한 금액으로 매입하겠다는 뜻을 정부에게 전달했으나, 5년째 대답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설사 정부가 공동 이주 대책을 내놓는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왕십리에서 20년 넘게 쇠를 만져왔다는 조병선씨(47)는 “왕십리의 공동으로 이주를 한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왕십리 상권을 형성하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현재 왕십리에서 40년 넘게 일하며 잔뼈가 굵은 60대 대장장이들은 일손을 놓아야 할 판이다.

   왕십리 우일수강 박문수사장(42)은 “왕십리에서 몇 십년간 구축한 인프라와 노하우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필수적인 기초산업 생산기지들을 밀어내고 아파트를 세우는 게 지금의 뉴타운”이라고 비난했다.

   금속업체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왕십리의 곱창가게들은 20여개에 불과하지만 중앙로 곱창타운을 형성한 ‘왕십리의 명물’이다. 최근 곱창 가게 주인들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죽겠다”는 표정이다. 뉴타운 개발로 가게를 찾아주던 주민들이 떠나면서 매출이 차츰 줄었다. 최근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영향으로 ‘국내산 쇠고기 곱창’이라고 써 붙인 종이가 무색하게 손님이 1/3로 줄었다. 뉴타운 엎친데 미국산 쇠고기 덮친 격이다.  

 
   뉴타운 개발과 맞물려 마장동 근처에 곱창 거리가 생길 것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영세한 곱창 가게 주인들은 “어차피 임대료가 비싸서 입주도 못할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들은 “보상금 몇 푼으로 서울에서 가게 전셋값은 감당도 못한다. 오도 가도 못할 처지다”라며 하소연했다.

   13년 동안 왕십리에서 영업해온 S곱창가게 주인 김아무개씨(52)는 현재 가게를 세 개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조금만 더 버티면 뉴타운 개발로 크게 보상 받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파리를 날리면서도 가게세 월 80만원씩, 총 240만원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김씨는 “뉴타운도 금방 끝날 것이고, 쇠고기에 대한 경계도 금방 풀릴 것이고… 조금만 더 참으면 좋아지지 않겠느냐”라며 자조 했다.

   시끌벅적한 곱창 가게들 사이에 딱 하나있는 오래된 구멍가게에 들렀을 때, 왕십리에서 22년 동안 살았다는 주인 박남엽(60)씨는 맥이 풀린 얼굴로 말했다. “남편 없이 혼자 살면서 195번지 반장을 15년 동안 했거든. 이제 나이 60넘어서 외지 사람들한테 내쫓기는 거지…”

   왕십리 서민들의 설움을 뒤로한 채, 뉴타운 사업은 진행되고 있다.


<시사IN> 강은나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