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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아현 뉴타운 3차 구역 현장르포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떠 있는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조악한 집들이 끝없이 늘어선 골목마다 적막함이 진하다. '관리처분 계획인가'를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만이 텅 빈 거리를 지킨다. 집집마다 붉게 칠해진 대문의 X표는 거리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한다. 수북이 쌓인 쓰레기 더미와 쾌쾌한 냄새만이 사람 흔적을 남긴다.(박스기사 참조) 한 손에 수박을 든 구부정한 노인이 식당안을 기웃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 짝(쪽)은 집구했어? 난 아직이여."
 
 수박을 들고 따라간 노인의 집은 복도식 다세대 주택이다. 이사준비가 한창인 듯 방에는 종이박스가 몇 층으로 올려 있다. 이불과 옷가지를 제외한 짐들이 포장된 상태지만 정작 남경애(79)씨는 '어디로' 이사하게 될지를 대답하지 못한다. 남씨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15만원으로 8년을 이곳에서 살아왔다. 이번 뉴타운 사업으로 지급받게 되는 이주보상금은 700만원. 영세민 1종으로 다달이 정부보조금에 기대어 살아온 그에게 천만 원은, 다른 곳에 새 집을 얻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영세민아파트를 신청했지만 신청자가 너무 많아...임대아파트도 신청은 했는데...이달 18일에 결과가 나오니까. 에휴, 요즘 같아선 빨리 가야지 싶어..."

아현동뉴타운은 2003년 11월, 2차 뉴타운으로 지정된  12곳 중 한 곳이다. 그 중 아현3구역은 전체 면적 207,508㎡(62770.88평)로 아현동뉴타운의 20%를 차지한다. 총 3063가구(임대 524가구 포함)의 대단지가 만들어질 계획이지만 현재 살고 있는 6000세대에 비하면 절반수준이다. 더구나 40~70평의 넓은 평수가 대부분이기에 추가 분담금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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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아현3구역에 지난 5월16일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떨어졌다. 세입자의 경우 그 전부터 이주하기 시작해 현재 40%정도만 남아 있다. 이들은 늦어도 8월 중순까진 모두 이주해야 한다. 오래 살던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아 주변으로 이주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형편은 여의치 않다. 뉴타운 지정 전만해도 4인 가족 기준 전세 3000천만 원, 월세 1000만원에 20만원 정도였던 집값이 이제 갑절이상으로 올랐고 그마저도 매물이 없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30년 이상 이 동네에서 공인중개업을 해온 제국부동산 대표는 "주민 90%가 타지로 떠나고 있다. 분양권의 80% 이상은 외지인이 갖고 있다"며 혀를 내두른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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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정착이 어려운 것은 세입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건물을 소유하고 있어도 입주분담금이 높아 건물을 팔고 외지로 나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30년 동안 이 동네에서 '개미사세탁소'를 운영한 임귀진(68)씨도 현재 소유건물을 팔고 이주를 준비중이다. 세탁물이 있어야 할 선반에는 뉴타운에 관한 각종 신문기사와 잡지가 수북했다.
임씨는 뉴타운 승인문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 주민주거를 위해 일괄적으로 모든 집을 허문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 구청에서 차례로 인가가 떨어지고 조합이 구성되자 임씨는 스스로 이 건물을 팔았다. "어차피 입주는 못한다. 이걸 팔아서 더 작은 집을 사고 생활비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내쫓기는 기분이다." 임씨는 8월 초 강서구 화곡동으로 이사한다. 연고가 있냐고 묻자 집값이 싸서 '형편에 맞춰 가는 것 뿐'이라 말한다. 화곡동은 그나마 가까운 편에 속한다. 이미 떠난 이들 가운데는 경기도 용인이나 전남 광양 등 지방으로 이주한 예도 여럿 있다. 자녀의 학교문제로 근방의 독립문이나 마포일대로 떠난 경우에는 소유를 전세로, 전세를 월세로 낮춰 떠났다.
 
 아현동에서는 두 사람만 모여도 집 걱정에 한숨 소리가 깊었다. 크게 분노하는 사람도 있고 답답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관리처분 계획인가까지 난 상황에서 대다수는 자포자기 상태였다. 한 주민은 "무조건 나가라고 하면 우리는 나갈 수밖에 없다. 그냥 있으면 강제집행을 할 텐데.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발업자와 유착공무원을 위한 합법적인 불법이 지금의 뉴타운이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옆자리에 있던 다른 한 주민은 "말해도 달라질 게 없다"라며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뉴타운,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는...

 꽤 어두워진 골목에 환한 집이 많지 않다. 건물만 남은 풍경은 스산하기까지 하다. 아현동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희미한 등불만 깜빡인다. 아현3차 구역에서도 꼭대기에는 더욱 사정이 절박한 사람들이 하루를 일 년 같이 견뎌내고 있다. 이곳에서 25년을 산 최아무개(71)씨는 현재 13명의 이웃과 함께 '독립주택배급'을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최씨를 비롯해 13가구가 모여 사는 이 집합건물에 배당된 분양권은 '20평 아파트' 두 채뿐이다. 이 분양권은 나눌 수도 없지만 나눈다고 해도 11가구는 거리로 내몰려야 한다. 이들은 세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임대아파트도 신청할 수 없다. "언제 결판이 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8월에 나가야 한다면 난 여기서 깔려죽을 수밖에 없다." 아현3구역에는 돈이 없어 '떠나는' 사람도 많지만 또 돈이 없어 '머물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이곳을 떠난 사람들. 떠나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 모두 입 모아 말한다. 뉴타운은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어둠을 벗어날 때쯤, 슈퍼를 운영하는 아주머니가 말한다. "겨울쯤 다시와. 그 때 되면 비관해서 죽고, 얼어 죽는 사람들 많이 있을 거야." 겨울이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뉴타운이었는지를.

<시사IN>송은하 인턴기자

'남아있는 자'에 대한 예의
쓰레기가 넘치고ㅡ 락커칠이 난무하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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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난 자리엔 쓰레기만 남았다. 많은 양이 모인 곳에는 악취도 심했다. 종량제봉투에 담긴 쓰레기는 물론 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가구까지 한데 모인 쓰레기는 '산성'을 연상시켰다.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50m가 멀다하고 쓰레기 산성이 등장했다. 지난달에 폐기물스티커를 붙인 장식장조차 버젓이 길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홍삼판매업을 하는 한 주민은 "구청에서 조합으로 청소업무 총괄책임을 넘겼다. 그전에는 깨끗했는데 요새는 청소가 되지 않고 있다. 여름인데 이렇게 쓰레기가 쌓여 전염병이라도 돌면 어쩌나 걱정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쓰레기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쓰레기는 늘어나는데 오히려 수거횟수는 줄어들고 있다. 구청에 문의했지만 조합에 연락을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뉴타운이 들어설 곳은 '조합'이 청소책임을 맡고 있으니 그 쪽에서 해야할 일이라는 것이 구청 상담원의 설명이다. 동네의 부동산에서 만난 한 주민은 "더러워서 살기 힘들면 빨리 나가라, 조합이 원하는 게 이거 아니냐. 쓰레기더미 근처를 갈 때 코를 안 막고 갈 수 없다"라며 불쾌해했다.
 
 쓰레기 못지않게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되는 것은 '락커칠에 관한 것'이다. 조합 측에서는 집이 비는 대로 대문에 붉은색 락커로 '공가(空家)'라 적고 X표를 치고 있다. 락커를 많이 뿌려 번지수가 적힌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곳도 많았다. 아직 거주하는 주민조차 락커칠을 당했던(?) 적이 있다며 하소연했다.
"아직 살고 있는 집에 이런 식으로 칠을 해놔서 조합에 따졌다. 한 달 만에 시정 해줬다. 사람 사는 동네에 이게 뭔가. 보기도 안 좋지만 기분도 별로다."

실제로 취재를 하는 6일 동안 아현3차구역에는 하루가 다르게 붉은 글씨가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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