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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회장 집 앞에 도착한 열 명의 충복은 쭈뼛쭈뼛거리며 현수막을 펴고, 피켓을 치켜 올렸습니다. ‘생쑈’를 보는 기분은 묘했습니다. 우리가 집회를 할 때마다 나타나 불편한 얼굴로 쳐다보던 충복들이 비슷한 행위를 하고 있으니, 온몸이 어지러울 수밖에요. 게다가 현수막에 쓰인 생뚱맞은 문구라니. ‘우리 출판 살리기 결의대회’. 우리 출판이라고?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명사의 조합. 그럼 남의 출판도 있는 거니? 

S형, 잘 있지요? 요즘 제 기분은 장마 전선처럼 저기압과 고기압을 오락가락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다 웃다 하는 거지요. 그렇지만 어제(6월20일) 오후에는 운 좋게 비 갠 날처럼 내내 환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소위 사측 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생쑈’를 한 덕입니다. 그들의 생뚱맞은 ‘무대 소품’을 보며, 그들의 어색한 모습을 사진 찍으며 몇 번이나 싱긋빙긋 웃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부터 어떤 쇼가 있었는지 제 기억을 재생해 보겠습니다.

오후 3시20분. 단식 중인 동료들 옆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윤무영 기자가 뜻밖의 말을 전했습니다. “사측 사람들이 집회를 해서 자리를 조금 비켜줘야 한대요. 한 5분….” 한 달 간 집회 신고를 해놓고 아무것도 안 하다가, 경찰이 오락가락하니까 집회 시늉을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럼 한 번 지켜볼까. 게다가 심회장 집 앞은 우리가 영원히 찜한 곳이 아니었으므로 짐을 치워주지 뭐^^.

매트리스와 물통을 막 골목 건너편으로 옮기는데, 누군가 비탈길 위쪽 계단을 가리켰습니다. 그 순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과 <비열한 거리> 등에서 본 익숙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일고여덟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봉고차에서 우르르 내린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그들의 손에는 야구방망이나 쇠파이프가 아니라, 피켓이 들려 있었습니다. 피켓을 들고 쭐레쭐레 계단을 내려오는 그들의 모습은 퍽 우스꽝스러웠습니다. 개중에는 아는 얼굴도 더러 보였습니다. 기자들이 집회를 할 때마다 불편한 얼굴로 쳐다보던 충복들.

심회장 집 앞에 도착한 열 명의 충복은 쭈뼛쭈뼛거리며 현수막을 펴고, 피켓을 치켜 올렸습니다. ‘생쑈’를 보는 기분은 묘했습니다. 우리가 집회를 할 때마다 나타나 불편한 얼굴로 쳐다보던 충복들이 비슷한 행위를 하고 있으니, 온몸이 어지러울 수밖에요. 게다가 현수막에 쓰인 생뚱맞은 문구라니. ‘우리 출판 살리기 결의대회’. 우리 출판이라고?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명사의 조합. 그럼 남의 출판도 있는 거니?

피켓에 쓰인 문구도 가관이었습니다. <출판은 지식과 정보의 샘, 우리 함께 키웁시다> <함께 만들어가는 출판, 같이 누리는 밝은 미래> <출판은 문화의 상징, 우리 출판 우리가 살리자> <세계를 움직이는 힘, 독서에서 나온다>. 모두 중간이나 어미에 물음표를 붙여야 할 것 같은 구호들. 순간 엉뚱한 상상력이 발동했습니다. ‘출판’을 ‘시사저널’로 바꾸어본 거지요. 우리 시사저널 살리기 결의대회? 시사저널은 지식과 정보의 샘, 우리 함께 키웁시다? 시사저널은 문화의 상징, 우리 시사저널 우리가 살리자? 후후, 저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

“아무리 봐도 몹시 어색합니다!” 겸연쩍었던지 그들이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내친 김에 한마디 더 얹었습니다. “구호도 외치고 해야죠!” 돌아온 대답이 걸작입니다. “침묵 시위하는 거예요. 침묵시위.” 

사진을 몇 장 찍으며 화투장만한 파인더로 보아도 그들은 여전히 어색했습니다. 그래서 놀리듯 농담 한마디를 툭 던졌습니다. “아무리 봐도 몹시 어색합니다!” 겸연쩍었던지 그들이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내친 김에 한마디 더 얹었습니다. “구호도 외치고 해야죠!” 돌아온 대답이 걸작입니다. “침묵 시위하는 거예요. 침묵시위.” 하하. 침묵시위와 엉뚱한 상상력이 결합하자 저절로 웃음이 삐져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비웃음을 감추는 센스!

10분. 그들이 심회장 집 앞에서 어색하고 알쏭달쏭한 쇼를 한 시간입니다. 도대체 열 명의 충복은 그 짧은 시간에, 그 이상한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랑스러웠을까요, 아니면 쪽팔렸을까요. 아니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내 마지못해 한다’라고 생각했을까요. 저는 불쌍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시사저널 사태를 일으킨 ‘거물’들은 뒤 쪽에 물러앉아서 뒷짐을 지고 있거나 거드름을 피며 희희낙락하고 있는데, 충복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저런 이상야릇한 행위를 하나 싶었던 거지요. 하루빨리 그들도 이성이나 야성(?)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차, 쇼 중계를 하느라 단식하는 두 분과 오늘 오후에 있었던 다른 일들을 잊을 뻔했네요. 두 분은 기운이 쪽 빠진 모습이었습니다. 발이 무거워 짧은 거리를 걷는데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다행히 간간이 내비치는 웃음이 더 맑아져서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단식은 하루라도 빨리 끝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새출발 준비는 언제 할 거냐고요?

오늘은 해가 비치지 않아 약간 션했고, 가끔 선들바람도 불어 겨드랑이의 땀도 시원히 말려주었습니다. 시사모의 열혈 청년 안일 환희 백마담 등이 왕림하셔서 ‘자리’를 지키다 가셨고, ‘돌아오라’는 소리를 기다리느라 귀가 늘어난 이아무개 편집위원과 파업 기자 여러분도 얼굴을 비췄습니다. 저녁에는 노아무개 기자가 눈빛 초롱초롱한 아들과 나타나 깨나른한 나를 일깨웠고, 행사 때마다 홍길동처럼 나타나는 금속노조원 최아무개 선생은 야심한 시각에 나타나 술 취한 동네 노인과 대차게 대거리를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다음에는 우리들의 멋진 '생쇼'를 중계해 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이만 총총~

2007년 6월20일 시사저널 오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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