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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상과 김은남은 북아현동에 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릴레이 편지 2

시사저널 노조원들이 지난 7년간 온갖 언론사의
노사 분쟁 현장에 있었던 탁종렬 국장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한 여름 밤은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단식하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기자들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새벽 두 시건 세 시건 간에 문자를 날리면 곧 답장이 왔습니다.
정녀리나 마녕이와 드잡이질을 하다가 서대문경찰서까지 다녀왔던
다섯 명의 기자들은 더더욱 꿈자리가 사나웠습니다.

그래도 6월19일 아침은 왔습니다.
겨우 9시가 넘었을 뿐인데
북아현동 골목길 아스팔트 바닥은 벌써부터 지글지글입니다.

그 집에 사는 이들의 거친 성정을 말해주는 듯
심술궂은 철조망을 이고 있는 심상기 회장 집 차고 앞에
정희상과 김은남은 앉아 있었습니다.
“아침은 먹었냐”고 객쩍게 묻자 두 사람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립니다.
정희상은 어지간히 모기에 시달렸나 봅니다.
얼마든지 자겠는데 모기가 문제라며 긁적입니다.

이정현이 정선배가 차가 올라올 때마다 소스라쳐 깨나더라고 귀띔합니다.
이정현은 차형석과 함께 밤샘을 하며 두 사람을 보살폈습니다.
새벽에는 골목에서도 차가 질주하기 일쑤입니다.
차가 올라올 때면 소리가 어찌나 사납던지 금세라도 덮쳐들 것만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되더라고 합니다.

서대문경찰서에서 검문용 표지판 두 개를 세워줬고
촛불도 켜놓았지만 안전장치로는 영 미덥지 않습니다.
‘인도에는 길거리에서 자다가 차에 치여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수두룩하다던데.’
안은주가 쓴 책에서 읽은 얘기를 하다가 입방정을 떠는 것 같아
얼른 입을 닫아버립니다.
그리고는 기자들이 점점 많은 걸 걸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김은남은 화장실이 없어 어지간히 골탕을 먹었는가 봅니다.
저녁 6시에 골목 아래 동사무소가 문을 닫아 버리면
김은남은 그저 참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서대문경찰서 형사가 민가의 문을 두드려
용변을 볼 수 있게 도와줬다고 하는군요.

심상기 회장 집에는 사람이 들지도 나지도 않습니다.
밤에 안 쪽 깊숙한 곳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는 걸 보면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무슨 폭력배도 아니고 자기가 운영하는 회사의 기자들이 찾아왔는데
가족까지 피신시키는 걸 보면서
가진자들의 마음 씀씀이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기왕 집을 비워놓다시피할 요량이면 화장실이라도 개방하든지.

문정현 신부는 길거리 천막에서 밤샘 농성을 해봐야만
세상을 알 수 있다고 했었는데
우리 기자들은 지난 밤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침에 만난 그들의 눈빛은 분명 예전보다 깊었습니다.

오전 10시가 넘어 한창 집회를 하는 중에
처남인 광고국장이 모는 차를 타고 갑자기 경와니 전무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정희상을 보고 대뜸 “아직도 쌩쌩하네”라고 빈정대
백승기의 뚜껑이 열리게 만들었습니다.

백승기와 댓거리를 하는 그의 몰골은 처참해보였습니다.
몸과 정신이 모두 피폐해졌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왜 저렇게 됐어. 완전히 병들은 낙지 대가리 같네.”
그를 오래 전부터 알던 고참 기자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입니다.
실제로 그 자리에 계셨다면 이것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지 아셨을 겁니다.

생각과 행동이 아름답지 못하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는 법입니다.
경와니뿐만 아니라 정녀리나 마녕이의 얼굴도 악당처럼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과연 자기 얼굴이 그렇게 변했다는 걸 알까요.

경와니를 비롯해 아침부터 서울문화사 관계자들로
심회장 집 앞은 북적댔는데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노조가 얼마나 오래 심회장을 괴롭히려고 할 것인가 였습니다.
그들은 심회장이 집에도 못 들어오게 된 것이 송구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시사저널 사태가 회사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염두에도 없고 오로지 심회장의 심기만을 경호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심회장 주변에는 돌쇠들만 넘쳐나게 됐습니다.
경와니나 민모시기 등 면면을 보면 부지중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연 매출액 8백억이 넘는다고 자랑하는 회사의 중추에
‘똘마니와 그 똘마니들’만 득시글댑니다.
‘우물 안의 거물’인 그들이 경인방송을 인수하겠다고
돌아다녔을 때는 코미디가 따로 없었습니다.
만에 하나 노사간에 타협을 해 회사로 돌아간다 해도
그들과 다시 얼굴 맞대고 일할 생각을 하면
기자들은 끔찍합니다.

회사의 그 머리 나쁜 친구들이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났습니다.
시사노조의 1주년 투쟁을 지원 나온 언론노조의 탁종렬 국장.
‘인간의 도리가 뭔지 생각하며 살라’는 그의 일갈은
용역 깡패들처럼 계단에 죽치고 앉았던
그들의 귀에 정확하고 예리하게 파고 들었습니다.
그는 쪽 빨아놓은 대추씨처럼 생긴 서울문화사의 풍년이 과장보다도
훨씬 ‘깊이 있게’ 육두문자를 썼습니다.

지난 7년간 온갖 언론사의 노사 분쟁 현장에 있었던 탁국장에 따르면
대한민국 언론사 사주나 경영진은 불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웬만한 악덕 업주 저리 가라입니다.

탁국장은 몇 년 전 중앙일보 앞에서 벌어진
목숨을 건 1인 시위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에서 분사돼 나와 노조를 만들었다가 해고를 당한
공무국 출신 노동자가 중앙일보 전광판에 올라가
오로지 피뢰침에만 의지해 매달려 있던 사건입니다.

자칫하면 떨어져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며
119 요원들이 한사코 거절하는데도 당시 중앙일보 고위 관계자는
전광판에 올라가 그 노동자를 끌어내리라고
요원들을 계속 윽박질렀다고 합니다.
탁국장은 사람의 목숨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그 간부의 태도를 보고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회고합니다.
그 때의 중앙일보 사장이 바로 금창태씨입니다.

천하의 조선일보라도 노무 관리가 우악스럽기로는
중앙일보 발끝도 못 쫓아간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조광인쇄 노조 해고자들이
흑석동 방상훈 사장 집 앞에서 농성을 한 일이 있는데
방상훈씨 부인은 해고자들을 피하지 않고
커피와 먹을 것을 내왔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 붓고도
어째서 중앙일보가 조선일보를 못 쫓아가는지
어쩌다 시사저널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
여러 모로 생각하게 하는 일화입니다.
탁국장은 시사저널 기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현장으로 돌아가면
언론사 사주와 경영진의 야만성을
만천하에 밝혀달라고 당부하더군요.

그리고 오늘 누가 나타났는지 아십니까.
바로 박수무당입니다.
그는 오후 두시가 채 안됐을 때 홀연히 골목 어귀에 솟아올랐습니다.
충주에서 두 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왔다고 합니다.
손에는 직접 밤새 얼려놓았다는 생수병이 가득 든
스티로폴 상자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는 얼굴이 까맣고 깡말랐으며 머리 숱이 적고 눈빛이 예리하더군요.
끊임 없이 핸드폰이 울어대는 걸로 보아
바쁜 데도 억지로 시간을 짜낸 게 분명했습니다.
정희상과 김은남이 굶고 있는데 자기는 편히 먹고 있어 미안하다고 말할 때
그의 얼굴에는 정말 근심이 가득하더이다.
그는 점심 때 공기밥까지 추가로 시켜 먹었던 몇몇 기자들을
무색케한 뒤 한 시간 정도 머물다 총총히 충주로 내려갔습니다.

2기 집행부인 정희상과 김은남이 단식을 선택했을 때
기자들도 말렸고, 선배들도 펄펄 뛰었습니다.
김훈 선배는 그 옆에서 최상등급 소갈비를 구워
억지로라도 아가리를 벌려 먹이겠다고도 했습니다.
저들에게 더 이상 뭘 요구한다는 게 치욕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희상과 김은남의 선택은 그르지 않았습니다.
비록 상투적으로 보일지라도 단식이 갖는 의미는 언제나 엄숙합니다.
곡기를 끊는 것만큼 인간의 의지를
단련하는 일은 없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이제 비로소 시사저널과 이별할 준비가 돼간다는 걸 느낍니다.
마음이 더 단단해져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정희상과 김은남은 북아현동에 있습니다.

2007년 6월19일 시사저널 기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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