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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까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릴레이 편지 4

단식 농성 1일차 새벽 4시께.
-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릴레이 편지 4 -



제가 좀 늦게 올려, 시간상으로는 릴레이 편지 2-1이 되겠네요.

단식 농성장 앞을 지키다 차 안에 들어가 새우잠을 잤습니다. 마음이 심란해서인지, 몸이 불편해서인지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꿈에서도 노조 회의를 하고 있고, 꿈에서도 시사저널 사람들이 등장하네요. 파업 후유증인가요?

눈을 떠보니, 정희상 위원장이 잠들어 있는 곳에 '웬 사람'이 서 있습니다. 아, 저 사람, 누구인가? 이정현 기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차에서 내려 정희상 위원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차에서 낯선 사람이 내리니 정희상 위원장 옆에서 알짱거리던 그 사람도 놀란 듯 합니다.

바로 신호철 기자였습니다. 신호철 기자도, 누군가 차에서 내려 다가와 놀랐다고 합니다. '철야조도 아닌데?' 신호철 기자는 새벽에 집에 잠시 갔다, 다시 단식 농성하는 길거리로 왔습니다. 아마 전날 회사 측 사람들이 현수막을 찢고 달려들어 벌어진 일이 계속 떠올랐나 봅니다. 저는 다른 작업을 하느라 그 자리에 없었는데,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저 또한 신호철 기자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도대체 그 인간들은 왜 술 처먹고 와서 패악질을 부리는지)

정희상 위원장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합니다. 배도 고프겠고, 무엇보다 길바닥에 드러누으면 모기가 웽웽 거린답니다. 정희상 위원장과 20여미터 떨어진 곳에 누워있던 이정현 기자도 비척비척 일어납니다.

모기향을 다시 피우고, 물 한 잔 마시고.

거리에서 단식 농성을 하니, 여러 애로사항이 생깁니다. 화장실 가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낮에는 인근 동사무소나, 버스 종점에 있는 버스회사 화장실을 이용하면 되는데, 밤이 되니 모두 문을 잠가버려 갈 곳이 없네요.

화장실을 찾으려 아현동 길을 내려오다 피시방에 들어왔습니다.

겸사겸사(?)

어떤 기사가 떴나, 인터넷을 여는데. 정혜신 선생이 쓴 칼럼이 눈에 뜹니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역시 한겨레입니다. 종이신문 가운데 우리 사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얼마 안 되는 신문입니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기자협회보, 미디어오늘에도 기사가 보입니다.

이들과 통신사가 '시사저널 사태 1년'을 보도했더군요. 방송사 뉴스는 검색이 잘 안 되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짐작컨대 여전히 이른바 메이저 언론은 무관심했겠지요. 그들은 노무현 정부와 기자실 문제로 생긴 언론 자유 문제에 대응하느라, 자본 권력과 언론 자유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나 봅니다. 뭐, 이제 와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요. 싸움을 하는 1년 동안에도 그들은 침묵했으니까요.

시사모 사이트에도 들렀습니다. 사실 요즘 시사모 사이트는 소강 상태였습니다. 기자들도 지쳤고, 그래서 글을 별로 안 썼고, 우리를 지지해준 독자 분들도 조금 피곤했을 것입니다. 어제 시사저널 기자들이 쓴 편지 글에 달린 댓글을 보았습니다. 독자 오지수 님의 댓글을 이렇습니다. '참담함, 분노,..눈물이 납니다. 누군가에게 간곡히 기도하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 분은 시사저널 파업 100일에 즈음해 떡을 해서 보내주신 시사모 회원입니다. 시사모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차분한 성품이 인상적인 분이십니다. 댓글을 보고서, 그의 진심을 공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제밤에도 시사모 분들이 단식장을 찾아주셨습니다. 마석에서 오신 황보 반 선생님. 여섯시부터 오신 홍아무개 님(제가 성함을 잘 몰라서). 그리고 우리의 시사모 총무 무적전설. 시사저널 사태가 기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지만, 이 사태로 인해 이런 시사모 회원들과 독자들을 만나게 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사실 그 전에는 내가 쓴 기사를 사람들이 얼마나 열의를 갖고 읽는지를 알지 못했지요.

말이 길어졌습니다. 화장실 찾으러 왔다가 피시방에서 짧게 편지 글을 올립니다.

조금 있으면 해가 뜨겠지요. 철야조로서 해가 뜨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또다시 한 낮의 땡볕을 떠올리니 그리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정희상 위원장과 김은남 사무국장이 힘들겠지요. 우리의 건투를 빌어주십시오.

추신 :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길바닥에 누워있던 정희상 위원장이 벌떡벌떡 일어납니다. 환경미화원 아저씨, 플라스틱 재생용품 걷으러 다니는 청년. 자동차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는 왜 이렇게 큰지. 우리의 싸움이 고단한 만큼, 한밤에 생업을 이어가는 그들의 삶도 고단할 것입니다. 철야를 한 저도 좀 고단하네요^^.

2007년 6월19일 시사저널 기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