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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까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릴레이 편지 8

민가협(민주화운동실천가족협의회) 어머니들은 지난해에도 저희들을 찾아 누선을 자극했더랬습니다. 한 어머니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이 사람들 어쩔꼬. 분초를 쪼개 뛰어다녀야 할 사람들이 이렇게 오래 싸우고 있으니. 단식까지 한다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샘이 말랐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웬만한 일에는 끄떡없이, 아니 메마르게 버텼습니다. 그런 제가 요즘에는 걸핏하면 울곤 합니다. 한데서 단식하는 동료·후배를 생각하며 슬퍼하고 돌아앉아 어깨를 들먹이는 여자 후배를 보며 숨죽여 웁니다.

‘땡볕보다는 비오는 게 낫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장마를 예고하는 비가 세차게 퍼붓던 6월21일 북아현동은 참으로 처연하더군요. 그 날 당번인 저와 함께 온 김민정 EBS 다큐 ‘여자’ PD는 정희상 위원장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김은남 기자는 낯빛이 오히려 해맑아 보이는데 정희상 위원장은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요”. 정희상씨는 야위기도 했지만 얼굴이 꺼멓게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눈빛만은 그래도 형형해 산자로 보였습니다.

곡기를 끊은 두사람 주위를 어쩔줄 모르고 서성이는데, 단식하는 사람들보다 더 위태로워보이는 노인들이 언덕 비탈길을 올라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민가협(민주화운동실천가족협의회) 어머니 일곱분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은 지난해에도 저희들을 찾아 누선을 자극했더랬습니다. 한 어머니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이 사람들 어쩔꼬. 분초를 쪼개 뛰어다녀야 할 사람들이 이렇게 오래 싸우고 있으니. 단식까지 한다니...” 마침 지지 방문 중이셨던 정일용 한국기자협회장은 한 어머니로부터 “정회장님이 힘써서 이 사람들 빨리 기사 쓰게 해주세요”라는 압박을 받고 어쩔 줄 몰라 하셨습니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시는 민가협 어머니들을 배웅하고 돌아오자마자 이번에는 10여 명의 푸릇푸릇한 대학생들이 농성장을 찾았습니다. ‘생명·평화·나눔’을 기치로 내건 사회단체 나눔문화 소속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북아현동에 오기 전 국방부 앞에서 ‘레바논 파병 반대 시위를 했다고 합니다. 그 때 비에 흠뻑 젖어 몰골이 이 모양이라며 수줍어했지만, 그들은 예뻤습니다.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그다지 알지 못하는 그들이 왜 북아현동에까지 찾아왔을까요? 그런 기색을 눈치 챘는지 한 대학생은 “힘을 보태고 싶어 왔다. 기자 분들과 실천적 결합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당차게 말하더군요.

그들은 ‘바위처럼’을 합창하더군요. 바위처럼 아시죠? 언제나 불러도 숙연해지는 그 노래 말입니다. 이어 그들은 아빠·엄마를 기자님들로 바꾸어 ‘힘내세요’를 최대한 아이답게 앙증맞게 부르려 애를 씁디다. 저는 다 듣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죠.

거기까지는 ‘드라이하게’ 들었는데, 그 다음이 정말 축축했습니다. 준비해온 것이 신통치 않다며 그들은 ‘바위처럼’을 합창하더군요. 바위처럼 아시죠? 언제나 불러도 숙연해지는 그 노래 말입니다. 이어 그들은 아빠·엄마를 기자님들로 바꾸어 ‘힘내세요’를 최대한 아이답게 앙증맞게 부르려 애를 씁디다. 저는 다 듣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들이 우리에게 준 뜻밖의 선물은 더 있었습니다. 레바논에 체류하며 박노해 시인이 썼다는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고뇌의 레바논과 희망의 헤즈볼라> 책을 기자 수만큼인 23개를 들고 왔습니다. 레바논과 대한민국의 북아현동이라?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책 제목은 주인이 귀가하지 않아 정적이 감도는 그 집과 잘 어울렸습니다. 박노해 시인이 뭐라고 기자들에게 썼는지 궁금하시죠? 

“金權보다 강하리라 우리들의 펜! 2007.6.21 힘내세요 박노해‘   

이 책에는 나눔 문화(www.nanum.com)의 정체성을 이렇게 써놓았더군요.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산다는 대안 삶의 비전 제시와 평화 나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민가협 어머니들과 나눔문화 대학생들은 봉투도 내밀었습니다. 경제활동에서 한참 비껴나 있는 그들이 업을 파한 이들에게, 없는 자가 없는 자에게 건네는 천금 같은 그 것에 저희는 어찌해야할 지 몰라 한참을 허둥거렸습니다.

변함없는 원군 언론노조 김성근 실장과 안동운 실장, 김세희 노무사, 이기범씨도 12시 무렵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동행자가 있었습니다. 스포츠조선 지부장인 송철웅씨였는데, 그는 목조주택을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었고 지금의 생업이기도 했습니다.  징계해고된지 3년6개월된 노동자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뭘 했는지 아세요? 합판과 각목 몇 개를 들고 와 단식자들이 발디딜 수 있는 팔레트를 그야말로 순식간에 만들어주었습니다. 아! 그를 배웅하면서 뭐라고 말해야할 지 더듬거렸습니다.

역시 시사모 분들도 오셨지요. 저는 환희군만 보았습니다. 그는 '이크 비가 오는구나'는 글을 오기전에 시사모 게시판에 남겼더군요.

북아현동 농성장은 이처럼 우리의 누선을 자극하는 곳이었습니다.

21일은 단식 4일째였습니다.

끝이 보입니다.

그 끝에서 바위처럼 헤쳐 나갈 것입니다. 

2007년 6월21일 시사저널 장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