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저격수’, 정태인 시사저널 장영희 기자 ‘정태인’을 아는가? 그는 요즘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미 FTA’와 진보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두 사안 모두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했거나 깊이 관련되어 있는데 그는 공교롭게도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다. 이미 2005년 5월 노무현 정부와는 결별했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노무현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친노 인사로 분류되는 그가 왜 지난해 2월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자마자 한미 FTA 저지 투쟁에 나섰을까? 2006년 초라면 식자층 조차도 한미 FTA의 본질과 실체를 제대로 안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지금도 여전하다고 정태인은 주장한다) 논란이 일리 만무했다. 미국과의 FTA는 일반적인 자유무역협정과 달리 두 나라가 사실상 경제통합을 이루는 어마어마한 역사인데, 두 나라 정부에서 본격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선행해야 하는 민간 차원의 그 흔한 산학(産學) 연구조차 없었으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왜 지금 한미 FTA를 해야 하지’ 하는 낮은 수준의 의문이 들었을 때 터져 나온 그의 고강도 문제 제기는 대통령과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경제학자인 그가 최근 사회학자들이 주도하는 진보 논쟁에 발을 담근 것도 따지고 보면 한미 FTA를 막아야 한다는 신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 진영의 스펙트럼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반(反) 신자유주의 기치 아래 모여 있다. 이것이 구체화된 대표적 예가 한미 FTA 저지 투쟁인 것이다. 정태인의 분석에 의하면, 진보 진영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결정적 이유는 대통령이 한미 FTA를 한사코 밀어붙인 데 있다. 정태인은 선도투를 통해 한국 사회에 한미 FTA 논쟁을 지폈다. 한미 FTA를 지지하는 보수언론조차 그의 주장을 외면하지 못한 것은 ‘친노 진영에 반란이 일어났음’ 을 알릴 수 있는 호재라고 판단해서이기도 했겠지만 한미 FTA를 논할 때는 사실 그를 빼놓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만큼 그는 지난 1년여 한결같이 늘 저지 투쟁의 선봉에 서 있었다. 언론은 그에게 일찌감치 '저격수'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지금이야 그가 한미 FTA 저격수라는데 이견을 다는 이를 찾기 어렵지만, 사실 그리 어울리는 수식어는 아니다. 정태인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한마디로 섬세한 사람이다. 이른바 ‘여성성’이 도드라진 남성이다. 그런 성정 때문이리라. 그는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단식 농성하는 투쟁과는 거리가 멀다. 말과 글이 그의 투쟁 도구다. 경제학자이자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출신답게 언론 기고와 강연을 통해 한미 FTA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알려왔다. 그는 지난 1년여 전국을 돌며 FTA 강연을 2백차례나 했다. 물론 강연료를 두둑이 주는 그럴듯한 곳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힘께나 쓴다는, FTA를 지지하는 집단이 정태인 같은 FTA 저지 투사를 부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미국식 FTA는 여느 FTA와는 다르다. 우선 미국식 FTA에는 그 형식 자체가 한 나라의 사회경제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은 그렇게 할 힘을 가진 나라이다. 또 우리 내부에 그러한 미국식 제도를 스스로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재정경제부와 재벌그룹 같은 강력한 기득권 세력이 존재한다. 영미형 경제 시스템은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재앙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한국이 고도성장을 한 이유에 대해서 논란이 많지만 모든 경제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교육열이다. 못 살아도 내 자식 만큼은 교육을 시켜서 나보다 잘 살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1980년대까지 우리 사회를 움직인 커다란 동력이었다. 그러나 이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한칸 장만하지 못하고, 교육에 아무리 투자해도 그럴듯한 대학에 보낼 수 없다면 중하위 계층은 희망을 잃어버리고 냉소하게 된다. 이른바 '두 나라' 문제가 발생한다. 한미 FTA는 로버트 졸릭(미국 무역대표부인 USTR 대표· 국무부 부장관을 역임했으며 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부회장)이 명시적으로 밝혔듯이 한국의 민영화와 규제완화, 공공성 약화를 노린다. 국제협약의 이름으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정책(이제 한물 간 그 정책)이 체계적으로 반영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시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6년 7월 서울역에서 FTA저지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이 2차 범국민대회를 위해 시청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전국 방방곡곡 누비고 다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으로 안다. 지금까지 2백 차례 이상 강연했다. 주로 군 단위까지 조직된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 초청이었다. 그 외에 전교조, 민주노동당, 전국 농민회, 그리고 몇몇 대학 학생회에서도 불렀다. 서울·경기 지역 경우에는 지역 시민 사회단체도 많았다. 전국을 다섯번쯤 돈 것 같다. 제일 많이 간 곳은 역시 전남 지역이었고 경북 지역에도 꽤 자주 갔다.
한미 FTA가 단순히 국경간 관세 문제를 다루는 무역협정이 아니라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송두리째 바꾸는 협정이기 때문에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가 가져올 폐해를 많이 지적했다. 철도, 전기, 수도, 가스, 우편 서비스 같은 네트워크 산업의 민영화는 미국이 직접 요구하지 않아도 지금 한국 정부 관료들이 (왜 그런지 몰라도) 신앙처럼 추구하는 정책인데 한미 FTA는 결정적으로 이런 움직임에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다. 또 한번 맺으면 폐기하거나 재협상하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끼칠 어마어마한 정책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한미 FTA는 장차 중국과 미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를 곧바로 제약하는 위험한 정책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참으로 한미 FTA에 관해서 모른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실은 나도 그 위험성을 감각적으로 느낀 것이지 2005년 10월까지는 정확히 몰랐다. 닥치는대로 관련 자료를 읽으면서 이건 정말 위험한 것이구나 깨달은 것이 많다. 문제는 지식인이다. 한미 FTA 반대 서명을 했으면서도 실제로 공부는 하지 않는다. 그러니 소수의 사람만 강변하는 것처럼 비친다. 최근 대통령의 글 같은 것이 나올만한 환경이다. 내 강연을 들은 청중의 반응은 하나 같이 정말 그렇게 무시무시한 것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마치 로또 복권에 틀림없이 당첨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처럼 그런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자신에게는 닥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내 주위의 사람들, 상위 10%에 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아무리 진보적이었다 할지라도) 한미 FTA에 막연하게 찬성하는 건 당연하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서민은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저지 운동 진영에서 보기에 최근 불길한 징조는 셀 수 없이 많다. 저지 세력의 집요한 태클을 뚫고 7차 협상을 마친 정부는 오는 3월8~12일 서울에서 8차 협상을 시작한다. 이미 두 나라 협상팀 사이에서는 2월말부터 물밑 접촉이 맹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ㆍ미 양국 협상팀 총사령관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왑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월26일(현지시간) 워싱턴 USTR 청사에서 회동한 뒤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들이 기자들에게 설명한 내용은 이랬다 “다음달 서울에서 열릴 8차 협상에서 쟁점 해소를 위해 양측 모두 최대한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쟁점 별로 깊이 있고 세부적인 내용까지 협의했으며 민감한 이슈에 대해 상호 한계선을 파악했다”. 이쯤되면 협상 타결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실제로 통상장관 회담뿐만 아니라 일괄 타결을 위한 여러 수위의 접촉이 이루어질 참이다. 김종훈·웬디 커틀러 수석 대표와 농업 분야 고위급 협상(3월5~6일) 등이 하루 이틀 간격으로 잇달아 열리며,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도 방한(3월6~7일)해 이견 좁히기에 들어간다. 이혜민 한미 FTA 기획단장은 “8차 협상은 전체 대표단이 참석하는 마지막 협상이다. 8차 협상에서 최대한 타결을 시도하겠지만 만일 극소수 일부 쟁점에서 합의가 되지 않으면 8차 협상 이후 고위급 회담을 통해 3월말까지는 타결을 추진하겠다"라고 말해, 사실상 FTA 협상이 8차에서 일괄 타결될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가팔라진 정부 기류를 잘 알고 있을 정태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그에게 전망을 물었다.
7차 협상까지 정부는 미국이 원하는 건 다 들어 주고 우리가 원하는 건 하나도 얻지 못했다. 완패다. 그런데도 협상단 사기가 높다고 한다. 대통령이 체결 자체가 목표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몇 달 전부터 예측한 대로 두 세가지 쟁점을 남겨두고 대통령 간 전화통화로 타결될 듯하다. 나는 오히려 대통령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부시가 선물할 단 하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 하나도 없을 가능성이 높으니 딱하기조차 하다. 3월말쯤 타결되겠지만 국회가 6월말까지 비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2008년 총선을 앞두고, 특히 농촌 출신 국회의원이 찬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당 잔류파와 도시지역 한나라당 출신들이 전격 비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느 쪽이든 대선 쟁점이 된다면 후보들 간에 불공정한 부분을 시정하겠다는 경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미국 의회가 비준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는 국민이 얼마나 한미 FTA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한미 FTA 이후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고통을 당하겠지만 당장 저지운동 과정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는 또 이렇게 미국 경제처럼 되면 양극화 심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며 한미 FTA 체결 전에는 호미로 막을 일을 후에는 가래로도 감당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한미 FTA의 목적을 “미국기업의 최대 이익을 위해서 상대 나라의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는 것”(미 의회조사국 보고서)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한국의 목적도 산업구조조정이니 미국과 다를 게 없다. 정태인에 따르면, 이처럼 한미 FTA는 철저하게 미국과 한국의 대기업, 그리고 고급 경제통상 관료의 이익 및 신념에 복무한다. 물론 그 희생자는 농민, 노동자 등 근로 서민 계층이다. 이런 상황에서 FTA 국익론(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흑자면 좋은 것 아니냐)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양국 정부가 국익으로 포장한 것은 기실 미국과 한국 지배계급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기업 지원 서비스 같은 고급한 서비스 분야를 미국과 동조화시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여기서 일자리도 창출하고 동북아의 경제 주도권도 쥐자”는 대통령의 말에 대해서도 정태인은 순서가 잘못 되었다고 반박한다. 한미 FTA라는 외부 충격에 앞서 바람직한 산업의 발전 방향이 먼저 설정되어야 하고 FTA가 그 방향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역행하는지, 부작용은 어느 정도이고 그 대책이 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하는데, 현재 정부의 대외정책은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미 FTA가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한미 FTA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통령이 "일본과 중국이 미국과 FTA 하면 한국엔 위기감 온다"며 "한미FTA는 한국 경제의 자신감과 역량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국이 (일본과 중국에 비해) 먼저 카드를 쥔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중국이나 일본이 수년 내에 미국과 FTA를 체결할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을뿐더러 중국 위협론 자체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미 FTA에 대한 정태인의 주장이자 희망은 ‘ 일단 중지’로 요약된다. 3월말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타결하겠다는 최근 기류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질주를 우선 멈추어야 하고, 그런 다음 미국의 요구를 받아 들였을 때 과연 우리 경제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꼼꼼하게 점검한 후 국민의 의견을 물어 재개를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다는 것이다. 정태인은 이렇게 반문한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분명 ‘포괄적이고 과도하게 높은 수준’의 변화가 밀어 닥칠텐데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대통령 말만 믿고 ‘국민을 믿는다’는 대통령 말을 다시 믿고 아무 생각없이 있어야 하는가”. 마치 맞불을 놓듯이 시작한 EU와의 FTA, 중국과의 산관학 공동 연구도 최대한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동시 다발적 FTA는 동시다발적 산업구조조정을 의미하고 어느 나라와 경쟁해도 이길 수 있는 부문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 많은 FTA를 한꺼번에 맺어서 결국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멕시코도 이렇게 무모하지는 않았다고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1월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 둥지를 틀었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였다. 당시 시사저널 경제팀장이었던 나는 새로 출범할 노무현 정부가 도대체 어떤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탐문하러 경제1분과 문을 두드렸다. 그 때 나를 맞은 이가 정태인이었다. 당시 경제1분과장은 후에 대통령 정책실장과 정책기획위원장을 맡게 되는 이정우 경북대 교수였는데 이교수야 익히 그 명성을 들었던 터였지만 정태인 인수위원은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나에게 생소하기만 했다. 인수위 이후 청와대에 입성한 그를 가끔 만날 때마다 그는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구상을 하고 있다며 열을 냈다. 간혹 관료들의 교묘한 방해 공작 같은 흥미로운 얘기도 털어놓았다(이런 얘기를 나는 단 한번도 기사화하지 않았는데, 그 탓에 그로부터 몇 안되는 신뢰하는 기자라는 평을 듣지만, 기자로서는 바보 같은 짓을 한 셈이다). 정태인은 스스로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산다고 말한다. 그는 47년 인생에서 가장 그럴 듯하고 오래 했던 대통령 비서관(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기조실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 공직 생활을 불운하게 끝냈다. 행담도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그는 이 사건으로 기소까지 되었다. 허위공문서 작성 및 직권 남용 등의 혐의였다. 지난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재판에 휘말려 그는 경제적으로 궁핍해졌고 우울증까지 앓았다. 그가 지금 이나마 건재한 것은 그의 표현을 빌리면 부모 잘 만났고 후덕한 부인을 둔 덕이다. 굳이 그의 이력서에 올릴만한 경력을 하나 더 찾는다면, 이해찬 전 총리와의 인연과 대학동창(서울대 경제학과 78학번)인 유시민 장관과의 우정이 화제가 되었던 1999년 한국학술진흥재단 전문위원 정도다. 그것도 1년 남짓이다. 현재 대학 강단(성공회대 겸임 교수)에 선다고는 하나 그는 한번도 번듯한 정규직에 있어본 적이 없다. 그를 아는 이들이 그를 ‘모지리’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데는 가는 곳마다 얼마 안있어 잘리는 일을 모질게도 되풀이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청와대를 등진 이후 그로서는 매우 익숙한 야인 생활로 돌아왔다. 정부에 몸담은 전력에다 재판까지 받고 있어 방송 일도 계속할 수 없었지만, 그는 참고 또 참으며 조용히 지냈다. 하지만 그는 한미 FTA 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한미 FTA의 위험성을 알게 된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 유약해 보이기까지 한 그가 저격수가 된 까닭을 알려면 그의 사상적 뿌리를 헤집어 보아야 할 듯하다.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이는 <민족경제론>을 쓴 박현채 선생이다. 정태인은 자신을 박현채 ‘따라이스트’라고 부른다(사상이 아니라 정책을 만들 때 주로 참조하는 이론은 미국 컬럼비아 대학 조지프 스티글리츠교수의 정보경제학이지만). 그는 ‘모름지기 경제학은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박선생의 지론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사람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진보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한미 FTA 저지 투쟁에 그가 온몸을 던지고 있는 것도 한미 FTA가 많은 이들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재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태인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당장의 목표는 한미 FTA를 막는 것이다. 막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 몇 년간은 박현채 평전과 글로벌 시대의 민족 경제론을 정립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겠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한국형 정책 체계, 그리고 동아시아의 바람직한 사회경제상을 그려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도 밝히고 싶다. 그후 내게 시간이 허락한다면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한 일을 작게라도 시작하고 싶다”.
시사저널 거리편집국(http://blog.daum.net/streetsisajournal)은 <시사저널> 파업기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본지에는 못쓰고 있는 기사들을 올리기 위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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