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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편집국

[6월6일 현장 7신] 아이들의 눈에 비친 대통령은?

아이들의 눈에 비친 대통령은?

촛불 집회 현장에 가면 어린 아이를 데려온 부모들이 꽤 많습니다. 제 친구 부부는 주말마다 초등학생 두 자녀를 데리고 촛불집회에 나간다고 합니다. 그 가정의 주말 이벤트라네요.

6월5일 촛불 집회 현장에는 '이오덕학교' 선생님들이 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대여섯살짜리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예닐곱명은 넘더라구요. 대여섯살 밖에 안돼 보이는 아이가 할아버지 선생님 옆에서 똘망똘망한 눈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촛불집회 하는 모습을 보느라니 착잡한 기분이 덥쳐왔습니다.

저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대통령을, 정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서요. 우리 사회가 너무 일찍부터 아이들로 하여금 '반골'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반정부 의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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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6일 오후3시부터 촛불집회에 나왔던 이 아이들은 오후 7시부터 덕수궁 앞에서 골아 떨어졌다.


초등학교 5학년인 제 딸도 이 정부 들어 반골 기질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촛불집회 뉴스나 대통령 관련 뉴스만 나오면 흥분합니다. 며칠 전,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를 뉴스로 보다가 딸과 나눈 대화 한 토막입니다.

딸: 아직도 대통령이 잘했다고 보는 사람이 20%나 돼?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이 100%여야지. 저 20%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야?

엄마: 지난 대선 때 대통령을 뽑은 사람들이겠지. 그 사람들은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잘 살게 해줄 거라고 믿으니까.

딸: 그럼 이명박 할아버지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잘 살게 됐어? 경제는 더 어렵게 됐다며?

엄마: 그렇지.

딸: 그런데도 아직도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거야?

엄마: 응. 시간이 지나면 대통령이 잘 할수 있다고 믿는 거겠지.

딸: 대통령은 한번 되면 5년 동안 대통령이지?

엄마: 응.
 
딸: 엄마, 아빠는 안됐다. 앞으로 5년 동안 저런 대통령 할아버지를 계속 봐야 하잖아? 나야 8월에 인도로 갈 거니까 상관없지만...

엄마: (딸아이 말하는 모양새가 하도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습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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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부모의 프레임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싫어, 남편과 저는 가급적 딸 아이 앞에서 세상사를 화제로 올리지 않습니다. 특히 정부를 욕하거나 교육 현실을 비난하는 따위 부정적인 이야기들은 아이 앞에서 삼가곤 하지요. 그건 우리의 프레임이고, 딸아이는 제 나름의 프레임을 갖춰가길 바라거든요. 그런데도 딸아이는 tv 뉴스나 신문을 보고, 선생님께 배우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둡니다. 간혹 제 뒤통수를 칠 만큼 '반골' 발언을 내뱉기도 하지요.

딸 아이를 보면서 은근 걱정이 됩니다. 저렇게 어릴 때부터 정부를 우습게 알고 대통령을 불신하면 나중에 저 아이는 국가가 하는 말, 정부의 정책에 대해 신뢰할 수 있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이 정부가 이끌어갈 앞으로의 5년이 심히 걱정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아이가 일찍부터 반골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걱정스럽기는 하나 저는 오늘 딸아이를 데리고 촛불현장에 나갑니다. 이 역사적인 현장을 아이 눈으로 직접 봐야 하니까요.  


<시사IN> 안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