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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편집국

[6월7일 현장 13신] 보수언론 수첩 수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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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대책회의가 촛불문화제 진행에 앞서 종종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대책회의는 조중동과의 인터뷰를 거부합니다. 현장에 조중동 기자 계시면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조중동 중의 한 언론사 기자는 "대책회의가 저렇게 말한 날은 확실히 인터뷰가 안 된다"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세종로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위치한 보수언론의 본거지입니다. 하지만 지난 한달 이곳은 보수언론의 무덤으로 돌변했습니다. 조중동 거기에 문화일보, 국민일보에 SBS까지 대여섯 개의 언론은 이곳에서 철저히 외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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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언론 현장기자들은 죽을 맛입니다. 취재원은 수만명씩 널렸는데 정작 응해주는 사람 한명을 찾기 힘듭니다. 취재는커녕 봉변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물론 익명입니다.


1.
 자기 회사 수첩을 대놓고 들고 다니는 보수언론 기자는 없다고 보면 얼추 맞습니다. 한 기자는 펜으로 수첩의 회사 이름을 일일이 지웠습니다. 다른 기자는 수첩 때문에 봉변을 당할 뻔 하고는, 다음날부터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팬시수첩을 들고 다닙니다. 또다른 기자는 아예 펜도 안 들고 다닙니다. 들은 이야기를 최대한 외워서 돌아선 후에 메모합니다.

2. 6월6일, SBS 방송차 안테나에는 '고시철회 협상무효'라고 적힌 피켓이 붙었습니다. 시위대의 장난이 아닙니다. SBS 직원들이 "이러면 욕 좀 덜 먹으려나"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직접 붙였습니다. 곧 떼어내긴 했지만, SBS만 나타나면 야유를 보내는 시민에 부담이 컸나봅니다.

3. "인터뷰는 무슨. 한겨레랑 경향만 따라다녀요. 얘기해주는 거 어깨너머로 들어서 몇개 주워가는 거지." 너네는 인터뷰를 해 주더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이 그랬습니다. 다른 기자는 아예 "외롭다"라고 말합니다. 수만명이 북적이는 세종로에서 말을 걸 사람이 도무지 없어서 현장스케치만 한답니다.

촛불집회가 장기화되면서 보수언론 기자들은, 인터뷰를 '해 줄 만한' 사람을 찾는 눈썰미가 늘었습니다. 한 기자는 '혼자 온 40대 남자'를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나마 거부감이 적을 가능성이 높답니다. 위험은 있습니다. 혼자 집회까지 참여할 정도로 열정적인 '골수 386'에 잘못 걸리면 일장훈계를 들을 각오까지 해야 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특히 매체에 민감합니다. 취재차 접근하면 "어디 기자세요?"하고 반드시 먼저 되묻습니다. ‘커트라인’도 꽤 높아서 제도권 매체로는 MBC, 한겨레, 경향, 그리고 시사IN 정도만 안정권입니다.

4. 지난주까지만 해도, 보수언론에서는 데스크가 '야마'(기사의 주제라는 뜻의 은어입니다)까지 잡아서 현장기자에게 ‘쏴 주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물론 ‘배후’를 찾아오란 얘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괴리감은 엄청납니다.

5. 프레스카드도 명함도 꺼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취재를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는 해야 합니다. 이른바 ‘프락치’로 몰리기 딱 좋은 조건입니다. 5월29일에는 한 보수언론 기자가 시위대에게 프락치로 몰려 난감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프레스카드를 꺼낼 수도 안 꺼낼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시민의 분노가 깊어갈수록 보수언론 현장기자들의 고민도 깊어갑니다.

<시사IN>천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