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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까지

세 엄마 기자의 날아라, 펜!


세 엄마 기자의 날아라, 펜!
2007년 8월 22일, 23일, 24일 EBS방송



▣ 방송 일시

2007년 8월 22일(수) 21:20~21:50 (1부)
2007년 8월 23일(목) 21:20~21:50 (2부)
2007년 8월 24일(금) 21:20~21:50 (3부)

내용 - 출연자 : 장영희, 김은남, 안은주 기자

우리는 ‘시사저널 기자’라는 이름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전 시사저널 여기자 장영희, 김은남, 안은주.
우리에게 ‘시사저널 기자’라는 꼬리표는 일종의 훈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우리가, 청춘이었고 오랜 꿈이자 자부심이었던 <시사저널>에 사표를 던졌다.
월급을 받지 못해도, 기사를 더 이상 쓰지 못한다 해도 아닌 것은 아니기에.

여기자로 일하면서 엄마노릇, 아내노릇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파업과 함께 집안일에 조금이나마 더 신경을 쓰게 됐지만
가족들에게는 더 미안한 마음이다.

우리는 <시사저널>을 잃었지만 그보다 소중한 것을 얻었고
기자로서 더 없이 값진 경험을 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다시 펜대를 잡기 위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오늘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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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펜은 칼보다 강하다.


2006년 6월, 인쇄 직전에 삭제된 3쪽 짜리 기사 하나.
우리의 싸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이어진 파업과 직장 폐쇄로 싸움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부당한 것은 부당한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기에
우리는 끝까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넉넉하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그나마도 끊긴 상황에서
생활고와 싸우고 또 회사와 싸우려니 결코 평탄치 만은 않은 1년 이었다.

타협의 문이 이미 닫혀 버린 것을 확인 했을 때
이미 과반은 <시사저널>에게서 마음을 돌렸다.
미련 또는 책임감의 이름으로 정희상 위원장과 김은남 사무국장은
목숨을 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회사와 자본과 그리고 나 자신과 싸우는 동안
그 악 조건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어지는 사랑과 격려의 힘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우리 기자들에게 풍족한 마음을 또는 물질을 베풀어 주는 사람들.
더더욱 신념을 다잡을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22명의 기자들 뒤에
든든한 응원군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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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굿바이 시사저널.



시사저널 기자이기 전에 엄마이고 아내이고 딸이며 며느리다.
기자라는 내 꿈을 택함과 동시에 가족에게는 항상 미안하고 고맙기만 하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어쩌면 나보다 그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묵묵히, 때로는 힘을 실어주는 가족이 있어 이 자리에 내가 있다.
어느 날 남편이 내게 가정보다 일이 더 소중해 보인다고 말 했을 때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시사저널>은 그만큼 각별한 존재였다.

기자들에게는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더 없이 소중했던 <시사저널>
단식농성장에 기자들 가족들이 응원을 왔다.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가족들. 백승기 기자의 아내는 그만 눈시울을 적시고 만다.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던 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시사저널>을 떠나기로 한다.
꾹꾹 눌러 참아 봐도 이별의 눈물은 이미 볼을 타고 흐른다.
끝이라고는 말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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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새로운 희망을 향해서, 날아라~ 펜!




시사저널 편집국에 마지막으로 들렀다.
직장폐쇄로 미처 가지고 나오지 못한 짐을 가지러 간 것이다.
길게는 18년 짧게도 8년 묵힌 짐들이 구석구석에서
아련한 추억과 함께 드러난다.

묵혀두었던 추억을 정리하며 우리는
새로운 매체에서 펼쳐 나갈 기자로서 꿈과 열정을 다잡는다.

새로운 출발.
‘기자’라는 꼬리표는 잠시 떼어 두기로 했다.
투자자와 정기구독자를 모으려면 우리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상도 못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만원, 이 만 원씩 푼돈으로 사흘 만에 모아진 2억. 그리고 전시회까지.
과분한 사랑 앞에 우리는 숙연해 졌다.

기자답게 일할 수 있는 언론다운 언론.
매체다운 매체로 그 큰 사랑에 보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