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백승기 박종환, 1954년 출생. 충북 음성 경찰서장, 경기 용인경찰서장, 서울 용산경찰서장, 서울청 감사관, 제주경찰청장, 충북경찰청장, 경찰종합학교 교장. |
퇴임식 뒤풀이가 성황이었다고 들었다. 무슨 얘기들을 했나?
전국에서 나를 따르던 중·하위 계급 경찰관과 퇴직 경찰관 30여 명이 찾아와줘 늦게까지 술 좀 했다.(웃음) 경찰이 경찰권을 행사하더라도 헌법 명령에 따라야 하지 않느냐, 법 질서를 잡자고 하더라도 균형 잡힌 사고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들을 심각하게 나눴다. 굳이 KDI의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법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면 국가 손실이 크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헌법과 천부 인권도 중요하다. 경찰권 행사가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소수자의 절박한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경찰 편의, 경찰 중심으로 대처해선 안 된다. 국민이 어느 한 군데가 응어리져 있다고 느낀다면 법 질서 유지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장 요원들에게는 너무 원론적이어서 공허하게 들릴 수 있지 않겠나?
원론은 중요하다. 지휘관이 강경대응만 강조하면 에스컬레이트된다. 나는 이렇게 표현한다. 강하게 대처하되,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가자.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과정이 적정해야 한다. 과잉은 금물이다. 비례도 고려해야 한다. 참새를 보고 대포를 쏠 수야 있나. 그런 원칙만 지킨다면 현장에서 요원이 당황할 일이 없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얘기처럼 들린다.
퇴임사에서 인권을 강조한 것은 요즘 경찰이 균형 있는 사고를 못한다고 걱정하기 때문인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현장 경찰은 지휘관의 메시지를 따라가게 돼 있다. 경찰권 발동의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방법이 적정한지, 성급하지 않은지, 균형 있는 판단과 사고가 부족하지 않은지 우려된다.
요즘처럼 경찰이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경찰의 역할이 커졌다기보다는, 행동대장처럼 몸으로 때우는 쪽으로 간다. 타 기관들(검찰이나 국정원을 지칭하는 듯)은 지나치다 싶게 직무 범위가 확대되고, 권한이 강화되는데 법이나 제도상 경찰의 힘은 예전 그대로다. 이를테면 집회와 시위에 관한 관계 기관 대책회의를 한다면 당연히 주무 부처는 경찰청이 돼야 한다. 모든 자료와 정보가 집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찰청장이 경찰청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것이 옳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한 다양하고 쓰라린 실패 경험을 쌓은 경찰에게 판단을 맡기면 잘할 텐데 회의는 경찰청 밖 타 기관에서 열리고, 판단도 타 기관 몫이다. 촛불 집회 때 보지 않았는가. 현장 경찰은 강경에서 온건으로, 좌에서 우로 회의가 춤춘다고 느낀다. 청와대 가는 시위대 막는 사람이 국정원 직원인가, 검찰 직원인가. 경찰 아닌가. 그런데 왜 엉뚱한 사람들이 판단하는가.
어청수 청장이나 김석기 내정자는 이명박 정부에 충성을 다했는데, 끝내 옷을 벗었다. 경찰 내부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공무원은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따라야 한다. 코드가 맞는 사람이 중요 보직을 맞는 게 맞다. 정부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나가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 청장은 열심히 하지 않았나. 정의의 관점에서나 혹은 헌법의 명령을 잘 따랐는가 하는 기준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정부 방침에는 정말 충실했다. 그런데도 나가라니, 납득할 이유가 없는 거다. 김석기씨를 시키기 위해서였는지, 그건 확인을 못했으니 나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같은 임기제에 똑같이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검찰총장은 멀쩡하니까, 이거 경찰을 너무 가볍게 보는 거 아니냐, 막 대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경찰 내부에 있다. 김석기씨도 살려보려고 내부에서 노력들을 많이 했다. 인터넷 여론조사에도 참가하고 글도 남기고. 김석기씨가 예뻐서가 아니라 조직의 수장이 두 번이나 하차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경찰로서는 뼈아픈 일이다.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용산 참사 사건을 보면서도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당연히 법 질서는 확립해야 한다. 화염병이 등장하고 폭력적인 방법이 모두 동원되는 현장인데. 그런데 성급했다. 농성하러 들어가는 걸 포착했다면 바로 뒤따라 들어가 잡아내도 괜찮다. 하지만 이미 농성자가 화염병과 시너를 쌓아놓고 자위력을 갖췄다면 그건 바로 진압할 수 없는 거다. 위험 물질을 거의 소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분들도 밥을 먹어야 하고, 배설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나 좀 데려갔으면 하고 바라는 때가 온다. 시너가 폭발했을 경우에 대비해 다른 소화 장치도 마련했어야 했다. 사건이 처음 났을 때 나는 참모들한테 그랬다. 열흘 정도는 갈 것 같다고. 그런데 아침에 출근하면서 보니 득달같이 진압했더라. 아마도 경험이 많은 경비 계통이나 정보 라인에서는 좀더 기다릴 것을 건의하지 않았을까 싶다. 불법 무질서를 제압한다고 그 사람이 죽어도 좋을 정도로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 때 경찰청장직을 외부에 개방해야 한다고 건의해 화제가 됐다.
순혈주의 폐해가 심하다. 경찰은 뭐랄까, 나는 난장이라고 표현하는데, 알아서 기는 게 체질화됐다. 이런 데서 청장이 나와선 안 된다. 흔들림 없이 국민만 쳐다보면서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문민이 맡았으면 한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하는 분도 있지만 리더는 철학만 뚜렷하면 된다. 실무는 차장이 다 할 수 있다.
ⓒ뉴시스 2월19일 용산 참사를 덮으려고 연쇄살인을 부각한 경찰의 행태를 비판하는 야당 의원들. |
어찌 보면 경찰은 청장 자리 하나 보면서 수십 년 동안 고생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내부에서 욕을 많이 먹었겠다.
싫어했다. 조직을 팔아먹는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나 중·하위 계급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고 좋아한다. 중·하위 계급은 경찰권 행사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상급자 앞에서는 쪼그라들고 마는 이런 순혈주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중·하위직은 내 의견에 대부분 동조하는 걸로 안다. 정치인이든 법률가든 외풍을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이를테면 이재오 전 의원이나 한완상 전 총리, 강금실 전 장관 같은 분들.
충북지방경찰청장 때는 지역 기관장 모임에 좀처럼 참석하지 않아 말이 많았던 걸로 아는데….
술 마시고, 골프 치고, 여흥하고, 대개는 친목 모임이더라. 토호들까지 낀 그런 모임이 한 두 군데가 아닌데 어떤 때는 40~50명이 모일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없어서 한두 번 가다 말았다. 그래도 필요하면 당사자와 직접 만나 술도 먹고 골프도 치고 다 했다. 그런데도 지역 질서와 화합을 해친다는 말이 들렸다. 모임에 잘 나가 어울리고 타 기관 민원에 신경 썼으면 적이 많지 않았을 텐데, 결국 내 손해다.
2006년 제주경찰청장 때 한·미 FTA 제주도 회담을 둘러싸고도 타 기관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안다.
처음에 회의가 제주도에서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이의를 제기했다. 서울에서 5000명, 제주에서 1만명, 합쳐서 1만5000명 정도가 시위에 참석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면 경찰 병력도 백개 중대는 서울서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병력을 수송할 수단도, 숙박 대비도 안 돼 있었다. 내가 또다시 경찰관을 체육관에서 재울 수는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발표가 늦어졌다. 타 기관에서 내가 한·미 FTA를 반대한다, 시위 인원을 부풀려 보고했다는 식으로 비난했다. 청와대에서도 관계 기관 대책회의를 열라고 권했으나 듣지 않았다. 집회 시위는 경찰청 소관이니 타 기관은 정보만 제공하면 그만이라며 버텼다. 제주도 58개 시민단체 대표를 매일 돌아가며 만나 시위가 과격해지지 않도록 설득했다. 하루에 저녁을 세 번이나 먹었다. 그렇게 해서 제주경찰청 주관으로 큰 사고 없이 행사를 치러냈다.
최근 청와대 비서관이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활용해 용산 참사를 덮으라는 식의 메일을 보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경찰에 대한 외압이 심한 것 같다.
일선에서 느끼는 압박감은 말도 못한다. 뼈 아픈 것은 홍보를 강조하다 보니 수사 기법이 범죄꾼들에게 모두 알려졌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범행 수법이 발전하고 요행 범죄가 늘어나 해결이 어려운데 걱정스러운 일이다.
정작 중요한 수사 기법은 공개하지 않았다고 경찰은 해명했는데?
내가 보기엔 선을 넘었다.
내근 요원을 현장으로 돌리거나, 3교대 근무를 4교대로 바꾸는 등 현장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의 일선 경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 2~3일에 한 번씩은 밤을 꼬박 새운다. 그냥 대기하는 게 아니라 온갖 잡무를 처리하면서. 사흘에 한 번씩 시차 적응을 하는 꼴이다. 고위직으로서 누릴 걸 다 누렸으면서도 현장을 개선하지 못해 미안하다.
인원이 부족하기보다는 경찰 간부가 눈에 보이는 행정에 집착해 일선이 골탕을 먹는다는 불만이 많던데.
높은 사람들이 면피하려는 게 문제다. 일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시켜야 한다.
앞으로 뭘 할 건가?
전국을 다니며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일선 경찰들과 소주 한잔씩 나누려 한다. 한 6개월 걸리겠지.
박종환 경찰종합학교 교장 퇴임사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경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소신을 피력할 때마다 항상 퇴임을 각오했으며 계급이 올라갈수록 그 각오는 현실적으로 저에게 다가오는 직접적인 화두였습니다. 주어진 시대의『흐름과 논리』가 그러하고 當 시대의『흐름과 논리』의 중심에 선 조직의 입장이 그러할 진데, 조직을 위해 아무런 역할과 기여도 할 수 없으면서 조직인으로서 수명만을 유지한 채, 한구석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남아있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래서 결과적으로 조직에 부담이 된다면, 조직에 부담을 주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아야겠다는 저의 평소 지론에 따라 조직을 흔쾌히 떠나야 할 때가 됐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경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30여년 공직생활을 후회없이 해온 마당에, 이제 동료들의 지지를 받는, 조직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생각이 젊고 역량있는 후배들의 등장을 기대하며 경찰을 떠나는 길을 택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희생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제대로 희생하지도 못하고 신세만 참 많이 지고 떠나는 것 같아 너무 죄송할 따름입니다. 사람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말하곤 하는데 지휘관이 되면서부터 저는 이 말을 ‘은혜를 베푼 조직과 직원들에게 제가 갚아야 할 부채’라고 가슴 속에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취약한 경찰의 제도적․법령적․관행적 현실 환경 속에서 “경찰의 권위와 위상 확보”라는 희망을 갖고, 경찰의 척박한 관행 속에 ‘언제든 어디서든, 지휘관으로서 당당하고 의연하게 행동하겠다’는 마음으로 직원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기 위해, 때로는 무모할 정도의 용기를 보이기도 했고 두려움에 가슴을 조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통신대란이라 불렸던 한국전기통신공사의 파업 당시 수십명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피의자 개개인별로 변호인의 접견을 제 독단으로 보장해주었던 기억도 현재의 사법환경을 보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용산서장 시절에는, “효순․미선양 사건” 관련 미8군 주변에서 벌어진 엄청난 집회시위의 물결을 “분명하고 단호한 원칙” 하에 “천천히”, “뚜벅뚜벅” 대처하여 한 건의 변수도 없이 성공적으로 관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타기관 소속공무원 수십명이 용산역 일대 집창촌 업주로부터 터놓고 향응과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의혹과 관련 집중적인 수사를 통해 “우리사회의 성역을 깨보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참여정부 정권인수위에 당시 황운하 형사과장과 함께 공무원 범죄에 관한 영장청구를 전담하는 특별검사 도입을 통해 검사의 영장청구권까지 제한한 내용을 담을 “사법환경변화에 따른 경찰의 수사권독립” 이라는 페이퍼를 만들어 당시 ‘여러분들’을 설득하려 동분서주했던 참 무모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감사관 시절에는, 타 기관과의 수사권 논의에 있어 경찰업무의 투명성․도덕성․인권의식을 제고하기 위해, 법무부․대검찰청의 감찰위원회에 맞대응하여, 시대의 양심이신 함세웅 신부님을 제가 오고초려하여 위원장으로 모시고, 경찰청소속 각종단체(위원회)중 가장 훌륭한 분들로 이루어진『시민감사위원회』를, 만든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이후, 함신부님께서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통한 형사사법체계의 개혁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주창하시며 엄청난 파장을 만드시기도 하셨습니다. 아마도, 2005년도 수사권 논의 중 타기관이 가장 부담스러워했던 것 중 하나가 경찰청 시민감사위원회 아니었겠나 생각해 봅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우리 사회의 춥고 어두운 곳을 어루만지는 분들이 경찰을 지나치게 몰아붙인다고 생각하지 말고, 혹시, 경찰에 등을 돌린 분들이 있다면 삼고초려까지도 해야 하는 것이 앞으로 경찰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입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라는 오욕의 역사현장인 이른바 남영동 대공분실을 경찰청 인권기념관으로 바꿀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제주청장 시절에는, 한미 FTA 반대 시위에 대처하는데 있어 경찰의 고유 업무영역을 침범하려던 타 기관의 의도에 단호하게 대응하며 조직의 권위와 위상,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경찰력은 경찰의 임무와 권한과 책임을 규정한 법률에 근거하여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만 행사되어야 할 뿐, 다른 어떤 실체에도 근거 없이 종속되거나 영향을 받아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저의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충북청장 재임 시에는, 2-3일마다 밤을 꼬박 새는 현장근무자의 처절한 현실근무여건과 근로기준법의 정신 등에 비추어 볼 때, “과연 이대로 두어야 하는가” 하는 깊은 고민 끝에, 현장의 동지들이 최소한의 배려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진정한 의미의 4조 2교대의 전면 시행을 강력하게 설득해 나갔던 것입니다. 타기관의 아니면 말고식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의 희생양이었던 신某 경사에 대해 무죄를 확신하면서 타기관과 일전을 각오하고 공판정에 참석하여 격려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한화사건』을 계기로 경찰 출신에 의한 경찰혁신은 한계가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경찰청장 직위 개방과 장관급 격상』을 공개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학교장으로 재직한 지난 1년간은, 현장을 누비며 켜켜이 제 몸 속에 쌓여왔던 경찰로서의 삶의 철학을 나름대로 보다 정치하게 다듬을 수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경찰의 권위와 위상의 확보, 현장 경찰관의 애환 등 각종 경찰 현안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나아가 경찰의 숙원인 수사권 독립의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보기 위해 “대토론회”라는 색다른 시도를 해보기도 하였고, 현장의 동료들에게 제가 가진 경찰 철학을 “특강”하면서 그들과 진지하게 고민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전자정부 구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 온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 구축’, 이른바 형통망 사업은 행정의 투명성 확보와 형사절차의 신속화라는 미명 하에 졸속으로 추진되어 국민의 자기정보 결정권 침해, 정부의 과도한 국민통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타기관의 독점적 권력 강화, 경찰 업무부담의 과중 등,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지적하고 사업추진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여 『통합형』에서 『연계형』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차일혁 총경의 경우는 “살아있는 한국경찰의 혼”이라는 일대기를 집필함으로써 앞으로 경찰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제시해보았습니다. 참으로 30여 년 동안 너무나 많은 치열했던 순간들이 진한 감동으로 떠오릅니다. 경찰 생활 중에도 내내 그러했지만, 앞으로 저의 남은 삶도 제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것은 또 하나의 과정일 뿐 『제 삶의 목표는 언제나 경찰』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여러분, 경찰이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장 간단하고 명료한 명제인 것 같지만 이 기본명제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어 있지 않으면,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중요한 가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인명존중』이라는 절대가치인 전자를 우선시하여야 할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의 가치에만 치우쳐서는 안 되고 양자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경찰이 앞으로 5년 아니면 10년만 하다가 문 닫을 조직입니까? 먼 미래를 보지 않고 당장 눈 앞에 닥친 문제만을 그때그때의 상황변화에 따라 일관성없이 처리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50년, 100년 아니 그보다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오늘을 살면서 ‘무엇이 실질적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항상 고민하여, 법치주의를 확립하면서도 온갖 갈등이 혼재하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통합을 이루는 선봉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 역할과 기능이 국정전반에 있어서, 국민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전방위적으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우리 경찰』이, 국민과 정부와 정치권, 언론, 타 기관, 시민단체 등 경찰을 둘러싼 모든 환경과의 관계 재설정을 위하여 스스로 담대하게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만, “법령적․제도적․관행적”으로,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일하고 있는 만큼, 또 일한 만큼 『우리 경찰』이 대접받을 수 있는 그 날을 고대해 봅니다. 이제, 새로운 My Way를 가려 하는 지금 여러분들과 함께 했던 행복했던 추억의 My Way가 제 18번인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에 실려 제 가슴 속에 차 오릅니다. 2009. 2. 18 |
이기사는 <시사IN> 제7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원본 기사 보기 :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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