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밀항 해경은 진짜 몰랐나
지난해 12월5일 <시사IN>(제65호)은 ‘제이유 주수도 뺨치는 조희팔의 금융 다단계’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통해 단군 이래 최대 다단계 사기로 불릴 만한 조희팔(52) 일당의 금융 피라미드 사기 사건을 보도했다. 서울·경기·충청·대전·대구·부산 등 전국에 걸쳐 총 피해액 4조원대, 피해자 4만여 명을 양산한 주범 조희팔의 범죄 행각과 함께, 전국의 경찰이 공개 지명 수배한 뒤 잠적한 조희팔 일당 9명의 수배전단을 지면에 실었다. 뒤이어 MBC <PD 수첩>도 이 사건을 심층 보도하고 특급 수배자 조희팔을 포함한 일당의 얼굴을 공중파를 통해 ‘영상 수배’했다. 그러나 이 사건 주범 조희팔은 <PD 수첩> 방영으로 자기 얼굴이 공중파를 통해 전국에 알려지던 12월9일 밤 11시께 서해 공해상을 통해 유유히 중국으로 밀항했다. 이후 <시사IN>이 조희팔 밀항의 미스터리를 추적한 결과 이 사건은 야음을 틈타 몰래 해경의 단속망을 뚫은 단순한 밀항사건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경찰이 지명 수배한 사상 최대 다단계 사기 주범 조희팔은 당시 태안 해양경찰서의 ‘작전’ 아래 해경 함정과 해군 함정이 지켜보는 가운데 격렬비열도 서쪽 공해상을 통해 중국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조희팔 밀항’의 전모는 당시 해경의 작전을 도와 그를 소형 보트로 실어 중국 배에 넘긴 민간인 양식업자 박창희씨(43)가 최근 <시사IN>에 5시간여에 걸쳐 사건 전모를 털어놓으면서 드러났다(18~21쪽 ‘구술 수기’ 참조).
해경, ‘밀항 작전’ 세 번 실시 12월9일 밀항에 성공한 조희팔은 단 한 번의 밀항 시도로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11월10일부터 한 달에 걸쳐 해경의 작전 아래 세 차례나 안면도 마금포항을 출항했다가 두 번의 실패 끝에 마지막 세 번째 시도에서 탈출에 성공했다. 밀항 출발지 항구로 인적이 드문 안면도 마금포 항구를 선택해준 것도 해경이었으며, 조희팔을 태워갈 중국 쪽 밀항선과 접선할 공해상 좌표도 해경이 정해주었다.
12월9일 세 번째 밀항은 대담하게도 대낮인 오후 1시 출항이었다. 역시 태안 해경이 공해상에서 밀항선이 접선할 좌표를 찍어주고, 해군 측에 공조 요청 공문까지 보낸 뒤 해경 CCTV의 감시망과 낚시꾼으로 위장한 잠복 형사 수십 명의 감시 속에 이뤄졌다. 이날 출항한 조희팔은 이튿날 아침 7시30분께 해경이 찍어준 서해 공해상 접선 장소에서 밀항에 성공했다. 조희팔을 넘겨받은 중국 쪽 밀항선은 조희팔의 조카 유○씨가 중국에 미리 들어가 직접 구입해 몰고나온 어선이었다. 그러나 해경은 공조 과정을 거쳐 이들을 태워나간 박창희씨와 치밀한 기획 작전을 펼치면서도 조희팔의 밀항이 마무리되기까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조희팔을 밀항시킨 뒤 되돌아오는 밀항 보트 주위에는 태안 해경에서 경비정을 붙여 순회하기까지 했다. 태안 해경과 대전지검 서산지청은 조희팔이 밀항에 성공하고 나서 보트가 마금포 항구에 도착하자 비로소 조희팔의 보디가드 4명을 체포해 구속했다. 한 달여 동안 해경과 치밀한 공조를 벌인 양식업자 박창희씨는 당초 약속과 달리 이때 함께 구속됐다가 지난 1월6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민간인과 함께 공조하며 결과적으로 조희팔을 ‘도운’ 해경은 사지에 나가 해경의 지시를 따른 민간인 박씨를 보호하기는커녕 이 사건과 관련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경찰이 지명 수배한 희대의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이 태안 해경의 치밀한 장기적 기획 작전 속에 중국으로 밀항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꼬리를 무는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시 태안 해경 서장으로 조희팔 밀항 작전을 진두지휘했던 순길태 총경은 이 사건 후 인천 해경 본청 공보과장으로 전근했다. 3월5일 순 총경은 <시사IN> 편집국에 찾아와 3시간여에 걸쳐 자기 입장을 털어놓았다. 그는 양식업자 박창희씨가 지난해 11월4일 최초로 태안 해경에 밀항을 제보해와 한 달여 그와 공조해 작전을 펴다가 실패해 결국 조희팔이 밀항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태안 해경에서는 끝까지 밀항 시도자가 조희팔인지도 몰랐고, 공해상에서 마약을 거래하려는 마약사범인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순 총경의 주장은 당시 시점으로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난해 10월부터 조희팔 사기 사건 관련 언론보도가 잇따랐고, 11월에는 태안 인근의 서산경찰서와 서산지청을 필두로 인천·대전·부산 등 각지에서 조희팔 사건에 대한 수사가 벌어져 세상이 떠들썩하던 시기이다. 더구나 11월10일께 태안 해경 인근의 서산경찰서는 최초로 조희팔 일당의 공개 수배 전단을 만들어 배포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순 총경은 “전국의 수배자가 수만 명이 넘는데 해경에서 일일이 확인할 길이 없다. 서산경찰서에서 수배 전단을 냈다지만 태안 해경에는 조희팔 사건 명단과 사진을 넘긴 일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희팔이 거물급 수배자라는 점을 태안 해경에서 처음 알게 된 때는 밀항에 성공한 날인 12월10일이라고 주장했다. 순 총경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조희팔 일당은 한 달여 동안 태안 해경의 주된 수사 대상이었고, 그 기간에 조희팔이 세 차례나 해경의 엄호 아래 밀항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해경은 조희팔이 밀항을 시도한 마금포항에 CCTV를 설치했으며 두 번째 밀항 시도 때부터 조희팔은 변장도 하지 않고 이곳을 드나들었다. 조희팔 일당의 정체를 모르고 ‘왕회장’이라는 이름으로 밀항을 부탁받은 해경 공조자 박창희씨는 이들의 고급 외제차 차적과 인상착의, 일부 파악한 주소지, 들르는 식당 등을 수시로 태안 해경에 넘기며 신원확인을 해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했다. 또 이들이 태안 현지에 올 때마다 묵은 펜션과 모텔의 호실까지 매번 해경에 보고했다. 그런데도 이들의 신원을 끝까지 몰랐다고 주장하는 해경의 주장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지적에 대해 순 총경은 “제보자 박 사장이 밀항자들 신원 파악을 독촉한다는 보고가 올라와서 내가 경찰청 감식과에 ‘얼굴 사진만 가지고 신원을 알아낼 방법이 있느냐’고 문의했더니 ‘현실적으로 그런 시스템은 없다’고 답변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에는 박 사장으로부터 왕회장 일당이 밀항자라는 제보를 받았지만 마약사범으로도 의심된다는 제보도 같이 해줬기 때문에 해경이 그들에게 가까이 접근하면 눈치를 채 작전에 실패할까 봐 신원 파악에 적극 나설 수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조희팔이 시도한 마지막 밀항 성공 과정은 의혹투성이다. 12월9일은 조희팔이 박씨에게 직접 잡아준 마지막 밀항 날짜. 그는 이날 밤 11시 MBC <PD 수첩>에서 자신의 사기 사건을 방영한다는 사실을 알고 얼굴이 널리 공개되는 바로 그 시간대로 밀항 디데이를 맞췄던 것이다. 이 때문에 조희팔 일당은 12월9일 백주에 마금포항에 나타나 마음껏 활보하며 출항했다. 같은 시간대에 해경 형사대는 항구에서 조희팔 일당을 관찰하고 있었다. 조희팔은 한국 영해 최서단 무인도인 격렬비열도의 3개 섬을 지나다가 가장 큰 섬에 배를 대게 한 뒤 오후 5시께부터 7시간 동안 이곳에서 낚시를 즐기는 여유를 보였다. 이때 약 1km 떨어진 작은 섬에는 해경 경비함 두 척이 7시간여 정박해 이들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조희팔은 아랑곳하지 않고 해경함정에 손까지 흔들며 여유만만했다. 이에 대해 해경과 공조해 밀항선에 탄 박창희씨는 해경 경비정이 밀항선을 호위하는 것으로 알고 안심했다고 말한다.
순 총경은 출항 후 접선 장소로 가는 밀항 보트를 해경 경비정이 호위했다는 박씨의 목격담을 처음에는 적극 부인했다. 그러다가 거듭 확인을 요구하자 “태안 해경 경비정 두 척이 격렬비열도에 있었다면 통상적인 다른 임무를 수행하던 배였을 것이다”라고 한발 물러섰다. 문제는 해경 경비정의 통상 업무라는 것이 수상한 선박의 검문과 조난 구조 등이라는 점이다. 당시 조희팔 일당과 해경 공조자 박창희씨, 선장 등 6명이 빽빽이 탄 2.5t짜리 소형 밀항 보트는 그 먼 공해상에서 누가 봐도 수상한 선박이었다. 밀항 보트가 조희팔을 넘기고 돌아올 때 영해에 들어서자마자 태안 해경 경비정이 보트를 한 바퀴 빙 돌고 돌아갔다. 이에 대해 순 총경은 귀환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근처를 지나는 해경 경비정에게 연락해 안전 상태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고 시인하면서 “우리가 검문하면 혹시 마약을 받아오다 바다에 던져버릴까 봐 그냥 둘러보라고만 했다”라고 주장했다. 박창희씨, 경찰·검찰 말 믿었다가 구속돼 결국 조희팔 밀항 과정의 ‘해상 작전’에 치밀하게 개입하고도 특수 수배자 조희팔 일당을 끝까지 마약사범으로만 알았기에 본의 아니게 밀항을 돕게 된 것일 뿐 미리 알고서 보내지는 않았다는 것이 해경의 해명이다. 하지만 해경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태안 해경은 이 작전을 수행하면서 처음부터 밀항과 마약이 동시에 낀 것으로 파악하고 움직였다. 문제는 중국에서 (마약을 싣고) 건너온다는 밀항선이 사실상 한국인 밀항 기도자 왕회장(조희팔)의 조카(유○)라는 사실을 해경이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해경은 중국 어선으로 위장한 ‘한국인 거물 마약 판매 선박’을 잡지 않았다. 해경이 조희팔 일당을 마약사범으로 알았더라도 제대로 된 마약 수사만 폈다면 조희팔의 밀항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마약반의 한 수사관은 “중국에서 한국인이 마약 배를 몰고 공해에서 접선한다는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도 그 배를 검거하지 않고 중국으로 되돌려 보냈다는 점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마약 수사에서는 사거나 투약하는 사범보다 공급선을 체포하는 게 훨씬 공적이 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조희팔 밀항 사건은 해경이 밀항을 도왔다는 점 외에도 수사기관이 민간인 제보자 인권 보호를 외면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해경 측은 조희팔 일당 밀항 제보자 박창희씨와 공조해 밀항 및 마약 단속 작전을 편 뒤 결과가 엉뚱하게 나타나자 모든 책임을 박씨에게 물어 그를 구속했다. 박씨에게 적용된 죄목은 밀항단속법 위반과 범인 은닉죄. 하지만 박씨는 맨 처음 해경에 조희팔 일당의 밀항 협조 요청 제보를 한 이후 한 달 동안 공조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고 해경의 작전을 도왔다. 하지만 공해상에서 조희팔의 밀항이 성공한 뒤 마금포항으로 되돌아온 12월10일 형사들이 조희팔의 보디가드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조희팔이 두고간 여권이 발견됐다. 조용히 넘어갈 것 같았던 조희팔 밀항 사건은 때마침 한창 조희팔 다단계 사기 피해를 수사하던 서산경찰서와 대전지검 서산지청으로 넘어갔다. 당황한 해경 측은 초기에 박씨에게 “당신은 제보자이므로 보호해줄 테니 밀항만은 몰랐다고 말하라”고 종용했다. 해경은 조희팔씨와 가족에게 ‘2~3일 뒤면 풀려날 것이니 변호사도 선임하지 말라’며 안심시켰다. 이에 대해 태안 해경의 한 관계자는 “조희팔 일당에게 밀고자로 보복당할 수가 있어서 제보자 박씨를 보호하기 위해 유치장에 수감한 것이므로 비싼 돈 들여 변호사를 사지 말라고 한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사건이 서산지청으로 송치되자 당초 담당 검사도 해경의 요청을 받아들여 ‘제보자는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박씨는 12월 중순 구속됐다. 박씨는 이 일로 국가 공권력이 민간인을 공조 수사 작전에 이용하고 범죄자로 몰아갔다고 억울해하며 해경에 거세게 항의했다. 그동안 공조해온 해경 간부와 검찰 관계자와의 대화를 여러 경로로 녹음하는 한편, 약속한 대로 무혐의 석방을 요구했다. 서산지청은 결국 총 3회에 걸쳐 1200만원의 추징금을 받고 지난 1월6일 박씨를 형집행정지로 풀어줬다. 박씨는 지난 2월 말 이 모든 사연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시사IN>에 제보한 후 자료를 넘겨줬다. 그는 이어 그동안 해경과 서산지청에서 자신이 겪은 사연을 정리해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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