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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까지

장관급 회담에 앞선 몇 가지 걱정

장관급 회담에 앞선 몇 가지 걱정

남문희 (시사저널 한반도 전문기자)


6자회담에 이어 남북 장관급 회담도 전격적으로 타결되었다. 2월27일부터 3월2일까지 평양에서 열린다고 한다. 2월13일 6자회담 합의 때도 그랬지만, 15일의 장관급 회담 합의를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솔직히 염려스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만큼 2007년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한반도의 외교전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복선화’ ‘복잡화’ 하고 있다. 단순구도로 생각하거나 아마추어리즘으로 밀어붙였다가는 뒤통수 맞기 십상이다.

정부는 앞으로 열릴 장관급회담이 ‘6자회담 합의 과정을 촉진하고,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가교 내지는 발판’ 구실을 해줄 것을 은연중 기대할 것이다. 정부의 기대대로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6자회담의 극적 타결-장관급 회담-정상회담으로 선순환하면 대선 국면에서 정파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리란 문제는 남겠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사태 전개인 것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장관급 회담 결과가 ‘북한의 핵 폐기 및 불능화를 촉구한 6자회담 합의와 충돌하고, 정상회담으로도 이어지지 않는’, 말 그대로 ‘악순환’ 이 일어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열어놓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핵 6자회담이 13일 6개국의 합의로 타결된 가운데,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폐막식 후에 열린 탕자쉬엔 중국 국무위원 접견에서 천영우 우리 측 수석대표와 김계관 북한 측 수석대표가 활짝 웃으며 악수를 하자 김하중 주중대사가 좀더 가까이 서라며 북측 김 대표를 살짝 밀고 있다.

우선 6자회담 합의부터 살펴보자. 2.13 합의문의 골자는 북한이 60일 이내에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의 폐쇄와 봉인 조처를 취하고 IAEA 사찰관을 복귀시키면, 우리 정부가 5만 톤의 중유를 제공한다. 그 다음 2단계로 북한이 핵 시설의 불능화 조처에 착수하면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95만 톤 한도 내에서 그에 상응하는 중유를 추가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또 초기  60일 안에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및 적성국 교역법의 해제를 위한 논의도 시작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합의문 발표 당일인 지난 13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회담에서 각 측은 조선(북한)의 핵 시설 가동 임시 중지와 관련해 중유 100만 t에 해당하는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보도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앞으로의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합의문 내용이 복잡한 것 같지만, 핵심은 두 단계로 나눈다는 것이다. 우선 제네바 합의로의 복원 단계. 개리 세이모어 미국 외교협회(CFR) 부회장의 지적에 따르면 합의문에 명기된 핵 시설의 '폐쇄(shutdown)'는 `동결(freeze)'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핵시설의 폐쇄와 봉인 그리고 IAEA 사찰관의 복귀는 바로 제네바 합의가 준수되던 2003년 12월 이전 상황으로 북한이 일단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이렇게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는 노잣돈으로 우리 정부가 5만 톤의 중유를 제공하는 셈이다.

정권 출범 직후부터 제네바 합의를 그토록 싫어했던 부시 행정부가 오매불망 갈망하던 제네바 합의를 넘어선 단계가 바로 2단계인 핵 시설의 불능화 조처와 그에 상응하는 95만톤의 추가 지원 및 테러지원국, 적성국 관련법의 해제 단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2.13 합의의 성패는 바로 이 ‘제네바 합의를 넘어서는 2단계’ 진입이 과연 수월하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6자회담 참여국 입장에서 보면, 최근 일련의 상황 전개로 인해 이 2단계 진입을 가로 막는 장벽이 하나 생겨버렸다. 바로 그 장벽을, 이번 6자회담을 현장에서 주도했다고 자부하는 한국 정부가 또다시 쌓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하나씩 따져보자.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북한은 제네바 합의 수준으로 복귀하는 대가로  한국 정부로부터 5만 톤의 중유를 60일 안에 받는다. 그런데,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 5만톤의 중유만 있어도 북한은 당장 급한 에너지난을 해결할 수 있다. 겨울도 이미 다 지나갔고, 북한의 산업 볼륨이 많이 축소돼 한꺼번에 많은 양의 중유가 필요하지는 않다.

따라서 5만톤을 제외한 나머지 95만 톤의 중유는 당장 아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이 준다고 해도 수송하거나 저장하기 힘들어 부담스럽다. 이 얘기는 에너지 문제만으로는 2단계, 즉 불능화 단계로 북한이 나아갈만한 동기 부여가 일정한 시점까지는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번 합의대로 95만톤의 추가 중유 지원분을 식량 및 기타 인도적 지원으로 바꾸는 게 오히려 동기 부여에 이로울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난데없이 한국 정부가 치고 들어온 셈이다. 바로 2월27일부터 3월2일까지 평양에서 남북 장관급 회담을 열기로 했고, 이 회담이 성사되면 대규모의 식량과 비료 지원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식량과 비료가 때마침 지원되면 북한은 한마디로 느긋해지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핵 폐기, 불능화 유도를 위해 식량이나 비료를 지원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논리적인 측면을 놓고 봤을 때, 그 이틀 간격의 두 개의 합의가 충돌하는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참으로 공교롭기 이를 데가 없다.

 청와대 설명에 따르면 이번 6자회담은 한국 정부가 주도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몰랐을 리는 없다. 뭔가 심오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다. 외교부가 하는 일(6자회담)과 통일부, 국정원이 하는 일(장관급 회담)이 서로 달라서 그렇게 된 것일까.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봤다. 어차피 북한이 핵 시설의 불능화를 결심하도록 만들려면 ‘단순히 95만톤의 중유 추가지원’만 가지고는 안 되는 일이다.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및 적성국 교역법’의 해제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조처에 대한 협의가 시작되려면 그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미국 연락사무소의 평양 진출 문제다. 연락사무소는 최근 들어 몇몇 언론이 지나가는 말처럼 툭툭 건드리고 넘어가고 있는데 그 정도로 그칠 사안이 아니다. 북한 핵폐기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2.13 합의문의 현실화 문제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클린턴 정부 때, 연락사무소 설치는 핵 폐기 보다는 국교 정상화의 전 단계 조처라는 점에서 강조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부시 2기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이런 전통적인 기능 외에도 북한의 핵 폐기 과정을 감시 감독하는 현장 사무소 역할이 추가되었다. 따라서 미국의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의 핵 폐기과정은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연락사무소의 평양 진출은 곧 국교정상화의 전 단계 조처를 뜻하므로 북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및 적성국 교역법의 해체와 직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즉 순서대로 살펴보면 연락 사무소의 평양 진출과 북한 핵 폐기 과정의 시작, 그 이후 테러지원국 및 적성국 교역법의 해제 등이 한 몸으로 연동돼 있다. 95만톤의 추가 중유공급은 사실 핵 폐기를 위한 동기 부여라기보다는 보너스의 의미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렇게 놓고 보면 북한의 핵시설 폐기나 불능화를 규정한 제 2단계 논의는 북한 측 사정보다는 미국 측 사정 때문에 당장 시작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아직 연락사무소의 ‘연’자도 시작되지 않았으니, 이 문제가 본격 불거질 올해 중반 이후에나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 입장에서는 초기 조처의 대가로 받은 5만톤의 중유 지원 외에는 상당 기간을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한국 정부가 장관급 회담을 빌미로 북한에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고, 이를 미국이 눈감아 주었다?

다소 긴 설명이지만, 우리가 정부 내의 전문가들을 신뢰한다면 충분히 해봄직한 상상이다. 분명 상황은 이렇게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이런 심모원려가 있었는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사실 그보다는 훨씬 단순한 구도로 설명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즉, 6자회담 타결의 여세를 몰아 남북 정상회담으로 직진하기 위한 발판 구축.

꼭 대선을 겨냥하지는 않더라도, 이제 잔여임기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현 정부가 얼마든지 그런 욕심은 부릴 수 있다. 하지만 예감이 좋지는 않다.

우선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장관급 회담의 뚜껑이 열렸을 때 북이 우리에게 요구할 물목의 규모가 과연 어느 정도일지 추산하기가 쉽지 않다. 대충 어림잡아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 유보했던 식량 50만톤과 비료 10만톤, 그리고 올해 통일부가 대북 지원용으로 잡아 놓았다는 식량 50만톤과 비료 35만톤, 또 지난해 열차 방북과 연동했던 약 8천억 상당의 경공업 제품 등등.

‘북한이 달라는 대로 다 주어도 남는 장사’라고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말한 적이 있다(로마 발언). 그 말이 옳더라도 반대급부로 무엇을 챙길 것인가가 분명해야 할 터인데, 그 부분이 사실 좀 불투명하다. 워낙 그쪽 파트너들이 ‘뻥’이 좀 센 편이라 다 된다고 해놓고, 나중에 때가 됐을 때 북미 관계 일정 등을 핑계로 슬그머니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점, 바로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 정부는 마치 마감 시간에 쫓긴 사람들 같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는 의식이 머리 속에 꽉 차있게 되면, 북한같이 협상에 도가 튼 사람들에게 진짜 크게 당할 수도 있다. ‘나의 초조함을 노출하지 마라.’ 이게 바로 협상의 기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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