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의 ‘잃어버린 10년’ 문정우 (전 시사저널 편집장, 대기자) 처음에는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몰랐습니다. 정말. 금창태 사장이 인쇄소에서 멋대로 기사를 들어냈을 때만 해도 기자들의 생각은 단순 무식했지요. 지금 가만 있으면 금 사장이 앞으로도 이런 일을 예사로 저지를 텐데 그렇게 되면 기사를 쓸 수 없는 것 아니냐, 뭐 이런 거였습니다. 잠시 시끄럽다가 금 사장이 사과하는 척하고 이윤삼 국장 사표를 반려한 뒤 필요하다면 기사를 조금 더 보강해 싣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되겠지, 조금은 가볍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끝맺는 게 순리라고 여겼죠. 하지만 금사장은 기자들에게 사과는커녕 징계폭탄만 퍼부어댔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자들이 거리로 나앉게 된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지경이 된 게 오히려 순리이자 운명 같습니다. 언론계 속사정을 좀 애기해보지요. 1987년 유월항쟁 이후 언론계에도 봄이 왔습니다. 1975년 펜을 꺾인 동아투위와 조선투위, 그리고 1980년 해직 기자들이 새로운 매체를 창간하거나 소속사로 복귀하면서 언론계에는 자정 기운이 넘쳐났죠. 각 언론사에는 속속 노조가 생겨났고, 당연히 언론노조연맹도 세웠죠. 노사가, 신문에서는 공정보도위를, 방송에서는 공정방송위를 만들기로 합의했어요. 기자 윤리강령도 앞 다퉈 만들었고, 촌지 관행도 사라지기 시작했죠. 그대로 갔으면 언론계가 정말 맑아졌고, 대한민국도 지금과는 달랐을 겁니다. 유월항쟁 10년 만인 1997년 환란이 터졌어요. 흔히 IMF 사태라고 하지요. 자세한 숫자는 모르겠는데 군사독재 시절보다도 몇 배나 많은 기자들이 펜을 놓아야 했습니다. 회사가 망하거나 구조조정을 당한 거지요. 구조조정이라. 희한한 조어에요. 사실 해고죠. 무슨 무슨 회사 구조조정본부는 해고본부라고 해야 맞지요. 어쨌건 환란 이후 언론계에서는 ‘생존’이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됐어요. 생존 앞에선 언론자유다, 언론윤리다 하는 게 모두 무색해졌죠. 저는 환란 이후 오늘 날까지를 언론계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김대중 정부 들어와 환란 극복한다고 벤처 바람을 조장했잖습니까. 광풍이었죠. 그 때 언론들이 어땠나요. 물론 다 그랬다는 건 아니지만 사주는 사주대로, 간부는 간부대로, 기자는 기자대로 특정 기업에 투자한 다음 마구 마구 띄워주며 뒷구멍으로 돈을 벌었지요. 악덕 벤처 사업가들이 투자자들 돈을 떼어 먹고 도망가면서도 나중을 생각해 언론사주나 간부, 기자들이 투자했던 돈은 고스란히 돌려줬다고 하대요. 고스란히 돌려준 정도가 아니라 몇 배나 더 붙여준 경우도 허다하다더군요. 이건 윤리 의식, 직업 의식의 실종 정도가 아니라 범죄였어요. 저는 언젠가는 이 시절 언론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반드시 들춰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때 도둑질에 맛을 들인 언론과 기자들은 지금 완전히 맛이 갔습니다. 요즘 많은 언론사에서 기자와 광고국 직원의 경계가 무너졌거든요. 삼성은 고사하고 웬만한 큰 기업의 비판기사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죠. 1960년대나 1970년대 기자협회보를 보면 면세점 이하 월급을 받는 기자들이 너무 많다고, 그래서 공갈치고 다니는 기자가 득시글댄다고 개탄하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저는 그 때와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김훈 선배 말을 빌리자면 인간의 진화와 발전을 부정하는 사태가 벌어진 거지요. 언론사주나 간부, 경제부 기자들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증권 담당 기자들만큼은 주식투자를 하지 말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논의들이 언론계 공론의 장에서 사라져버린 건 비극입니다. 한국 언론은 세계화의 덫에 제대로 치이고 말았습니다. 시사저널도 이런 미친 바람 앞에서 초연하지 못했다는 걸 고백해야겠습니다. 부도란 호된 맛을 한 번 본 시사저널 기자들은 그동안 많이 ‘유연’해지고 말았습니다. 후배들이야 훨씬 낫지만 저처럼 편집장까지 지낸 자는 온 몸에서 악취를 풍깁니다. 이런 지경이었기에 기성 언론에서 잔뼈가 굵은 금창태 사장이 기자들의 항의를 비웃으면서 용감하게 징계의 칼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금사장에게 한번 된 통 얻어 맞고 나서야 우리는 새삼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심하게 휘었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언론노조연맹이나 한국기자협회가 초미니 조합이자 회원사인 시사저널의 투쟁을 전폭 지원하게 된 것은 이제 언론계가 스스로를 깨끗이 할 때가 됐다고 자각했기 때문일 거라고 봅니다. 여론 조사에서 절대 다수의 현직 기자들이 시사저널 노조의 투쟁에 지지를 보낸 것도 같은 뜻일 겁니다. 한 일간지 후배 기자들을 만났더니 그러더군요. “선배 우리도 폭발 직전입니다.” 시사저널 사태를 계기로 언론계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여름 경포대 해수욕장 현장 취재를 하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짝짓기를 하는 10대 청소년과 20대 젊은이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상대가 돈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부터 묻더군요. 차림새만 보면 강북 사는지, 강남 사는지 한 눈에 척 알 수 있다고도 하더이다. 생김새나 품성은 마음에 들어도 경제 수준이 안 맞으면 미련 없이 빠이 빠이. 아무 거리낌도 없더라고요. 폭죽을 왜 그렇게 쏘아 대는가 봤더니 그것도 일종의 재력 과시더군요. 그런데 이들을 어떻게 탓하겠어요. 집 안팎에서 보고 배운 게 다 그런 건데. 언론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어느 분야에서건 돈이 곧 미덕이 돼가고 있지 않습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삼성이란 기업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 많은 이건희씨 일가와 그 마름들이 절대 권력이 돼가고 있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죠. 특종 기사를 쓸 때 기자들은 종종 이건 내가 쓰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역사가 시킨다는 거죠. 시사저널 사태가 처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져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송구하게도 너무나 많은 분들이 자기 일처럼 눈물 흘리고 분개하며 도와주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저는 보이지 않는 힘이 시사저널을 통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돈으로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걸 당신들이 너무나 오래 잊고 살았다고. 한참 정신없이 쓰다 보니 우리의 보잘 것 없는 투쟁에 너무 금칠을 한 게 아닌가 민망합니다. 얼마 전 조용환 변호사를 만났더니 그러시더라고요. “흔히 노조가 회사측과 격렬하게 싸우다 보면 자기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고요. 하지만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 미화해야 싸울 힘도 얻지 않겠습니까. 너무나 긴 글에 ‘자뻑’, 거슬리셨다면 그렇게 이해하시고 용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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