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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회사와 강도, 그리고 경제정의

시사저널 편집국 문정우 대기자


엊그제 일간지와 방송에는 (제가 생각하기에) 아주 중요한 기사가 떴더군요. 공정거래위원회발 기사던데 대부분의 언론이 보도자료만 그냥 베끼고 말았지만 말이죠.

쉽게 말하자면 (주) SK, GS 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굴지의 4대 정유회사가 가격을 담합해 소비자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을 공정위가 적발해  5백26억원의 과징금을 물리고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는 내용입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정유회사들은 2004년 4월1일부터 6월10일 사이에 가격을 합의하고 서로 잘 지키는지 감시하는 바람에 소비자가 2천4백억원이나 손해를 보게 됐다고 합니다. 불과 70일 사이에 소비자의 주머니를 턴 돈이 이 정도라니 놀랍지 않습니까. 공정위가 소매유류 담합에 대해 조사해 적발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니 그동안 소비자는 이 회사들에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뜯긴 걸까요.

그런데 정작 제가 얘기하려는 것은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기사를 잘 읽어 보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유회사의 담합으로 소비자는 2천4백억원이나 손해를 봤고, 결국 이들 회사와 거기 딸린 주유소들이 그만큼 이익을 봤다는 얘기인데 과징금 액수는 5백26억원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벌금이 벌금으로서 효과가 있겠습니까. 저부텀도 공정거래 안 하고 말지요. 지하철이나 기차를 슬쩍 공짜로 탔다가 걸리면 30배를 물리던가요? 예전에 고속도로 통행권을 잃어버렸다가 톨게이트에서 눈 튀어 나오게 많은 벌금을 내라고 어찌나 으름장을 놓던지 엄청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서민에게는 그렇게 추상같은 정부(지하철공사, 철도공사, 도로공사)가 일을 이렇게 물렁하게 처리한다는 게 믿겨지십니까.

미국의 석학 하워드 진이 쓴 <오만한 제국> 을 보면 1977년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더군요. 미국의 석유 메이저 걸프사가 해외 제휴사로부터 들여온 원유가를 7천9백만 달러나 과다 계상했다가 에너지 관리국에 걸린 겁니다. 걸프사는 이 사건이 법정으로 넘어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4천2백만 달러를 토해냅니다. 걸프사가 자진해서 떼어 먹은 돈의 절반도 더 내어놓았는데도 하워드 진은 "만약 강도가 강탈한 돈의 절반만 내놓고 풀려났다면 누구라서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인가"라며 경제 정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미국 정부를 맹렬하게 비난합니다.

미국의 걸프사는 법정으로 갈까 두려워 얼른 돈을 내놓고 손을 들었는데 소비자 피해 추정액수의 5분의 1이 좀 넘는 과징금을 부과 받은 우리나라의 정유사들은 공정위에 이의신청을 냈다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법적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공정위가 생사람(아니 기업)을 잡았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법부를 좀 쉽게 본다는 얘기지요. 하기야 기름 파는 회사들이 어딥니까. 결국 우리나라 4대 재벌들 아니던가요. 이들이 꾸리는 법조팀이라면 얼마든지 과징금을 더 깎을 수도 있겠네요. 서민이라면 백년도 더 교도소에서 썩어야 할 죄를 짓고도 멀쩡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이들이 재벌가에는 쌨는데 그 정도야 일도 아니지요. 

마침 우리나라 경제 정의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건이 터졌다 싶었는데 언론들이 하도 잠잠해 몇 자 적어봤습니다.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미국의 양심적인 언론과 학자, 그리고 법조계가 보인 반응과 한국의 반응은 사뭇 다르네요. 그러고 보니 경제정의를 실천한다는 시민단체인 경실련도 조용하군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도 과묵하시더니.  


 

시사저널 거리편집국(http://blog.daum.net/streetsisajournal)은 <시사저널> 파업기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본지에는 못쓰고 있는 기사들을 올리기 위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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