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밀리면 대운하, 민영화도 밀린다"
"다들 좀 지치긴 했나 보다." "슬슬 마무리를 고민할 때지." 오후8시 서울광장 무대 뒤,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저런 대화를 나눕니다. 과연 잔디밭에는 빈자리가 드문드문 보입니다. 대략 1만명쯤 되어 보입니다. 여전히 대단한 숫자기는 한데, 10일의 '대폭발'을 보고 난 뒤라 감흥이 그냥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가두시위를 나설 때가 되니 인파가 엄청나게 불어납니다. 대책회의가 3만명을 이야기합니다.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2만은 넘어 보입니다. 이제 시민은 거리를 즐기는 단계입니다. 가두시위 시간에 맞춰 합류하는 시민이 무척 많습니다.
과연 시민은 지쳤을까요 여전히 생생할까요? 거리에 나선 시민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아니 목숨이 걸렸는데 기자양반 같으면 지치겠어요?" 김아무개씨는 한심하다는 듯 기자를 쳐다봅니다. "시민은 열받아서 모이는 거다. 10일 이후 반응이 없는 게 시민들 속을 다 뒤집어놨다." 직장인 최아무개씨는 단호합니다.
권태훈씨는 한술 더 뜹니다. "위기감이 있다. 이번에 밀리면 수돗물민영화, 의료민영화, 대운하까지 쭈욱 밀린다. 시민이 그걸 아니 지치려야 지칠 수가 없다." 이미 시민에게 이번 시위는 '질 수 없는 싸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88만원세대'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김수원씨는 거리에 서는 게 즐겁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거리에 서 볼까. 시민이 거리를 자기 공간으로 가져왔다. 이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거다." 거리가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 된 지금, 시민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꽤 '민주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다들 몇 번째 참여인지 물어봤습니다. 평균 다섯번쯤 됩니다. 세 번도 있고 다섯번도 있고 한 명은 열번째랍니다. 스무날을 넘긴 가두시위 기간을 생각하면 그리 많은 편들이 아닙니다. 패턴을 보면, 72시간 연속집회와 10일의 대집회 때는 다들 모이고 그 외의 날에는 '자동 로테이션'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난 10일에 거리에 섰던 수십만 시위대가 돌아가며 거리에 나오는 것이라면, 확실히 기자와 전경과 정부보다는 시민이 훨씬 질길 것 같습니다.
<시사IN> 천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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