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부터 물대포와 소화기가 등장한 서울에서 400km 떨어진 곳, 제주에서도 촛불 집회가 열렸습니다. 장마 전선을 먼저 맞는 곳이라 공기가 엄청나게 습합니다.
제주시청 앞 어울림 마당에 촛불이 모였습니다. 연신 부채질을 하며 400여 명의 제주도민이 한 목소리를 냅니다. 5월 2일, 서울과 동시에 켜진 촛불은 일주일에 두세번씩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6월10일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서울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밤 10시면 거리가 컴컴해지는 제주에선 보통 일이 아닙니다.
바다 건너 먼 곳이라고 '다른 구호'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관보게재 철회하라" "폭력연행 중단하라"부터 “조중동은 물러가라” "한나라당 해체하라"까지,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민주시민 함께해요”란 구호가 “제주도민 함께해요”로 살짝 바뀐 것뿐입니다. 어울림마당 한 쪽 벽에 걸린 큰 스크린에는 서울 집회 생중계 영상을 띄웁니다. 서울의 상황을 제주도민들도 실시간으로 공유합니다.
서울만큼, 모인 사람도 다양합니다. 아이 엄마와 초중고딩, 하이힐을 신은 아가씨가 함께 촛불을 들었습니다. 아기를 품에 안은 남선영씨(26)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우리나라는 북한보다 인권 탄압이 심한 나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남씨는 살수차 앞에 유모차를 끌고나온 어머니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보고 두 번, 세 번 울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2학년인 이용석 군과 친구들은 기말 시험이 바로 코앞인데도 촛불 집회에 나왔습니다. 매번 인터넷으로만 지켜보다가, 폭력 경찰에 너무 화가 나서 오늘 처음 제주 집회에 나왔습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손님들도 목소리를 모았습니다. 6월 26일부터 열린 '제주인권회의' 참석자 23명이 급히 버스를 빌려 시내로 나왔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인권 관련 법률가ㆍ활동가ㆍ학자들입니다. ‘비상 시국’에 테이블에 앉아 회의만 하기에 답답했나 봅니다. 이들은 몇 시간 전 ‘촛불에 대한 모든 폭력적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라는 긴급 성명서도 만들었습니다.
자유 발언과 몇가지 공연을 마친 뒤 제주도민들은 제주동부경찰서 방향으로 행진했습니다. 1시간 코스인데, 서울보다 발걸음이 조금 느립니다. 지나가던 자동차 운전자가 손을 흔들고, 식당에서 밥을 먹던 손님이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작고 아담하지만, 갖출 건 다 갖춘 제주의 촛불집회입니다.
제주/<시사IN> 변진경
성 명 서
‘촛불’에 대한 모든 폭력적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2008년 6월 25일 정부의 수입위생조건 고시 강행 이후, 촛불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경찰은 12살짜리 초등학생을 체포한 것을 비롯하여 거리시위를 하던 시민들에게 방패를 휘두르고, 폭력을 행사해 시민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등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것도 모자라 6월 27일 경찰은 시민 체포를 위해 시위현장에 운동화를 착용한 기동타격대를 배치하고, 형광액을 섞은 물대포를 발포하여 형광액이 묻은 참가자는 집까지 추적하여 체포할 것이며 최루액 사용도 검토 중이라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일련의 조치는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선언과는 거리가 먼 폭력행위이다.
정부는 시민을 상대로 도대체 무슨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촛불은 끝까지 추적하여 체포하여야 할 적이 아니라, 귀를 기울여야 할 민의이다. 국민은 과오를 범한 정부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과오를 범하는 정부는 있을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것은 민의에 귀를 기울여 과오를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여 달라는 것 뿐이다.
2008년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기념하여 ‘시장과 인권-생존과 존엄’이라는 주제로 한국 사회의 인권상황을 조망하는 제주인권회의에 참가한 아래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생존과 국민으로서의 주권을 인정받기를 열망하는 촛불의 총의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이에 동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