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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편집국

[7월5일 현장 21신] 강남 학부모가 촛불을 든 까닭


강남 학부모가 촛불을 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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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강남에서 나오셨어요? 전 도곡동에서 나왔는데, 너무 반가워요!"
"아. 그러세요? 이리 오셔서 전화번호를 좀 주세요. 같이 연락해서 앞으로 볼 수 있게요."

5일 저녁 촛불집회에서는 새로운 깃발 하나가 눈에 띄었다. 크지 않은 깃발에 검은 글씨로 '서울 강남 학부모 모임'이라고 단정하게 적었다. 깃발을 본 한 주부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활짝 웃는다.

압구정, 청담동, 역삼동 등에서 50여명 가량 참여하고 있는 '서울 강남 학부모 모임'은 촛불집회에서 시작됐다. 강남에서 개별적으로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하고, 모인 사람들의 80%정도가 학부모인 점을 감안해 송모씨(48. 교직)가 '서울 강남 학부모 모임'이라고 적은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제는 멀리서도 깃발을 보고 직접 찾아와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송씨가 처음 촛불집회에 오기 시작했을 때 주변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강남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왜 이렇게 나서냐"며 비아냥거리거나 깃발을 실은 차를 보고 "차 빼라"라고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있었다.

"시위를 하는 것 자체를 혐오스럽게 생각하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강남은 이런 사회 활동에 소외돼왔어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고정으로 60%정도인데. 나머지 30% 정도의 사람들은 지역 분위기 때문에 정치적 의견을 드러내고 이런 곳에 나오기 힘든겁니다. 사실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서 강남에서도 80%정도는 반대하지만 드러내지 않는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딱 잘라 반대했다. 송씨는 "자립형 사립고를 확대한다고 하는데 사실 우리처럼 어느 정도 여유있는 사람들이야 어떻게든 아이들 가르쳐 좋은 학교로 보내겠지만,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은 가르치고 싶어도 못 가르치게 되는 것 아니냐.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하는 정책이다"라고 비난했다.

단대부고를 다니는 큰 아들과 언주초등학교에 다니는 작은 아들을 둔 주부 조모씨(37)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서 아이들 급식 문제를 상의하는 연락이 학부모들 사이에 잦지만, 일단 '강남은 노는 물이 다르다'라고 생각하니까 여기서 함께 섞이기를 불편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남 사람들도 걱정 많이 하죠. 그렇지만 한나라당에 종부세 관련해서 희망을 걸고 있으니까. 사실 우리집도 그렇긴 한데…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양심 때문에 나오는 거죠."

조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뒤에서 나가온 한 여성이 "오는 8일에 강남에서 집회하기로 했어요"라고 귀띔해주고 갔다. 촛불 집회를 통해서 '모두가 같은 물에서 노는' 대한민국을 그릴 수 있을까.

<시사IN>인턴기자 강은나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