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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편집국

[7월5일 현장 22신] 졸지에 대통령 암살 배후자 누명 쓸 뻔 했던 주부 최씨


졸지에 대통령 암살 배후자 누명 쓸 뻔 했던 주부 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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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사는 주부 최아무개씨(37)는 얼마전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경찰이 그녀에게 출두를 요구한 것이다. 최씨는 구두요구를 할 게 아니라 출석요구서를 보내라고 대응했지만 경찰은 그녀의 남편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자진출두를 종용했다.

사연은 이렇다. 인테리어커뮤니티 레몬테라스에서 활동하는 최씨는 6월25일 "야쿠자살까요--;; 프랑스용병을 살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돈 낼 의향있습니다.
한미정상회담....일본서 한다고 했죠....
일본야쿠자를 사던지 (쥐새끼 척결을 야쿠자손 빌리기 싫지만 --;;)
프랑스용병을 사던지 해서 쥐새끼 쏴죽이고 싶습니다.
돈내실분....


온라인 상에 흔한 과장된 수사로 이루어진 농담 이외에는 다른 해석을 하기 힘든 글이다. 아래에 달린 댓글 역시 "필리핀 킬러들이 싸다던데", "이태리 저격수들이 명중률이 높대요. 생긴 것도 착하고" 등 농담 일색이다. 최씨 역시 "대체 누가 그 글을 대통령 암살 음모로 보나요?"라며 황당하다는 목소리다.

하지만 이 글은 졸지에 '수사 대상'이 됐다. 누군가 정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민원 사이트인 '국민신문고'에 이 글을 신고한 것.

사건을 담당한 형사의 목소리에서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우리는 사건이 내려오니 수사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냥 출두하셔서 장난이 심했다 한마디만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라고 거듭된 출두 요구의 이유를 설명했다. 국민신문고에 신고된 모든 사건이 수사 대상이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수사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그때 일선으로 내려오는 걸로 안다"라고 답했다. 국민신문고의 관리자가 최씨의 저 글을 '수사할 가치가 있다'라고 판단한 셈이다.

조선일보의 '오버' 또한 이 못지 않다. 조선일보는 '극단 치닫는 인터넷 폭력선동'이라는 '살벌한' 제목의 6월30일자 기사에서 최씨의 위 글을 인용하며 "대통령 암살 운운하는 글까지 등장했다"라고 잔뜩 인상을 썼다. 더욱이 최씨의 글을 두고 "모금을 하는 내용의 글"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해 진지하게 일이 진행된다는 인상을 줬다. 최씨의 글에는 농담조의 뉘앙스로는 관두고라도 계좌번호조차 없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해당 기자와 직접 통화를 해 보았다는 최씨는 그러나 "그 글이 농담조인지 진담인지는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의 기준을 적용하면, 순전히 대통령 암살미수범을 수감하기 위해서만 현재 형무소의 수십배 공간이 필요할 듯하다.

<시사IN> 천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