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제58호 특집 2 / 아프리카판 라이따이한 - 검은 대륙에 버려진 한국의 핏줄
쌀쌀해진 날씨에 그녀는 긴소매 옷을 입고도 바들바들 떨었다.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온 크리스티나 씨(26)는 생애 첫 가을을 혹독히 경험하는 중이다. 그녀는 지난 9월7일 한국에 왔다. 딸 숙윤(2)이를 위해서다.
승 무원 교육을 받던 크리스티나가 한국인 사업가 허 아무개씨(57)를 만난 것은 2004년, 세네갈에서 라이베리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허씨는 “한국인 아내와는 이혼소송 중이다”라고 말하며 끈질기게 구애했고, 곧 둘은 결혼을 전제로 한 연인 사이가 되었다.
당시 허씨는 라이베리아 인근 국가인 기니 등지에서 고철사업을 했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한 크리스티나는 자연스레 허씨의 비서 구실을 도맡아 했고, 허씨는 으레 그녀를 자신의 ‘아내’라고 소개함으로써 피부색이 다른 현지인 사업가의 환심을 샀다. 허씨가 사업에 실패해 1800여 만원의 빚을 지고 감옥에 갈 처지가 되었을 때 아내 신분으로 보증을 서준 사람도 크리스티나였다. 이쯤 되니, 주변 한국인 사이에서는 허씨가 그녀를 사업상 이용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허씨가 갑자기 한국으로 떠난 때는 2005년 8월. 그는 “한국인 아내와 이혼 문제를 마무리짓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 오겠다”라고 했다. 그때 크리스티나는 임신 3개월이었다.
아 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세 번에 걸쳐 돈을 300만 원가량 부쳐주었지만, 이는 허씨가 벌여놓은 사업을 뒷정리해달라는 명목이었다.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미안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던 그의 전화도 아예 끊어졌다. 그의 전화번호는 바뀌었고, 이메일은 되돌아왔다.
사 연을 이야기하던 크리스티나는 회한을 억누르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란한 가정을 꿈꾸던 내 삶은 다 파괴됐지만, 아이에게는 여전히 아버지가 필요하다. 그에게 ‘아버지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알려주기 위해 나는 한국에 왔다.”
1984 년 대우건설이 수주한 고속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총길이 79km. 4년여 공사 기간을 거쳐 1988년 4월 완공된 이 고속도로는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와 접경국인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을 연결한다. 14년간 내전을 겪으면서도 끄떡없었던 튼튼한 길은 지역주민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세계 173위에 실업률이 87%에 이르는 세계 빈국 중 하나인 라이베리아에서 이 도로는 박제된 근대화의 상징으로 남았다. 도로는 1990년대 시에라리온 내전 당시 다이아몬드 밀거래 수송로로 유용하게 쓰였고, 1997년까지 이어진 라이베리아 내전 당시에는 무기 조달 통로로 사용됐다. 지금은 한 시간에 택시 한두 대 지나갈까 말까 한 길. 그 위로 한국계 사생아가 버려졌다.
도로를 따라 북서쪽에 있는 마노 강을 향해 가다보면 중간쯤에서 ‘마디나’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도로 건설 당시 대우건설의 현지 본부가 있던 곳이다. 마을 주민은 한국 남자들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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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기사] "검은 대륙에 버려진 한국의 핏줄" [링크]
[관련기사#1] "나는 한국인의 성노예였다" [링크]
[관련기사#2] "라이따이한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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