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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인턴수기

'시사저널 편집국' 명패가 시사IN에 있는 사연


#. 독립언론의 인턴기자 되기

이른 아침부터 핸드폰이 울렸다. 처음보는 숫자조합이 핸드폰 액정에서 어서 통화버튼을 누르라는 듯 요동쳤다. 뜻밖에도 <시사IN>인턴 합격을 알리는 전화였다. 잠결에 일어나 기뻐할 겨를도 없이 출근시간을 공지받고 통화를 끝냈다. 휴우~ 신기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는 사실보다, 웃음이 아닌 한숨이 먼저 나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오후에 <시사IN>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합격자 발표가 나자 지인들의 문자가 하나씩 들어왔다. 다른 곳도 아닌 <시사IN>에서 일하게 되어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가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시사IN>의 수식어라 할 수 있는 '독립언론'이라는 말에 두려움이 생긴 까닭이었다. 때마침 친구 녀석이 전화해서 <시사IN> 사무실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나는 웃으며 소리쳤다. "독립언론답게 독립문에 있다!"   


#. <시사IN>과의 인연

시사저널 사태는 내 기억 속에 없다. 파업 당시 군생활 중이었다. 내무실에 TV는 있었지만 당시 그 일은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았다. 제대하고 나서야 그 '외로운 싸움'을 알 수 있었고, 새로운 시사 주간지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창간호가 나온 저녁,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파란색 주간지를 집었다. 서점 아저씨는 잔돈을 거슬러 주며 물었다. "이게 무슨 잡지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사가는 거예요?" 말문이 막혔다. 어이없는 질문이라서가 아니었다. 그 동안 이들의 고독한 싸움과 창간 과정을 어떻게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야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음... 착한 사람들이 만든 거예요..."라고 말하고 서점을 나섰다.


그 인연은 2008년 봄에 다시 이어졌다. <시사IN>의 문정우 국장이 언론재단에서 운영하는 예비언론인과정에서 '기자론' 강의를 맡았다. 당시 나는 교육생으로서 문정우 선배와 함께 했다. 그리고 나서 지금은 운 좋게 인턴기자로 새로운 인연을 맺었고, 문선배의 강의도 인턴교육에서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문 선배는 좋은 글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글이라는 촌철살인을 우리에게 남겼다.  


#. <시사IN> 편집국에서 만난 '시사저널 편집국'




두 번째 출근날. 편집국 한 구석에 커다란 금속물질을 발견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시사저널 편집국'이라 써있는 명패였다. 지금 기자협회에 등록되지 못한 그 언론사의 명패가 아니라, 과거 한국에서 주간지를 개척하며 명성을 떨치던 그 언론사의 명패였다. 방치되어 있다기보다 선반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일종의 전리품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리품이 아니다. 이 명패가 여기에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과거의 그 일을 떠올리 터이다. 언론독립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다시 떠올릴 터이다. 그 금속물질은 일종의 기념비였다. <시사IN>의 역사를 알려주는 기념비였다. 


#. 너희를 파워블로거로 만들어주겠다!


독설닷컴 운영자 고재열 선배가 우리에게 단언했다. 두 달 안에 인턴 2기들을 파워블로거로 만들어주겠다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한 지 1년 정도 넘었다. 운좋게도 내가 쓴 게시물이 포털 검색창 위쪽에 나오는 일이 종종 있어 하루에 60~70명 정도 방문객을 근근이 유지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파워블로거는 아니다. 당연히 지인들의 댓글과 트랙백 사이에 간혹 악플이 달리는 수준이다.


간혹 있었던 그 악플 탓일까. 파워블로거라는 말을 들으니 두려움부터 앞섰다. 인턴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두려움은 파워블로거라는 단어 앞에서 부활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싸운다는 것(爭)은 참으로 고약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논쟁(爭)이든 투쟁(爭)이든 험난한 과정이다. 파워블로거, 그것은 전사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되돌아보니 난 참 겁이 많은 사람인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누구나 싸우는 것은 꺼린다. 두렵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고약한 일임에도 그것을 하는 이유다. 앞으로 두 달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한 시간이겠지만, 두 달만에 그 답을 쉽게 구할 리는 없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기자의 삶일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