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것보다 싫은 게 더 많은 사람이다. 학보사할 때 얘기만 해볼까. 멘트 따와라, 말하기 싫다는 사람한테 말 시키기 싫은데 구시렁구시렁. 사진 찍어와라, 그 사람들의 사진찍히지 않을 권리는 어떡할 건가요 구시렁구시렁. 단체사진 찍자,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자꾸 뭔놈의 단체사진을 찍자는 거야 구시렁구시렁. 전화통화야 원래부터 싫어했다.
난 항상 불평불만에 가득차 있었다. 덕분에 학보사 친구도 한두명밖에 안남았다. 그런데 사람 하나 진심으로 대하기가 얼마나 어렵던가. 주위에 친구 많다는 사람 잘 믿지 않는다. 허지웅 말마따나 인맥을 펀드마냥 자랑하는 사람들 혐오한다. 아, 오늘 하려던 얘기는 이쪽이 아닌데 또 얘기가 샜네.
나는 또 내가 싫어하는 일 천지인 기자를 하겠다고 나섰다. 재열선배따라 언론노조 총파업 현장 취재 갔을 때다. MBC 노조원과 블로거 기자단이 인터뷰 하는 자리였다. 아 누가 자꾸 기자단 쪽으로 셔터를 눌러대. 왜 우리를 찍는 건데. 찍지마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 찍는 거 아닌데 왜 오바세요 소리 들을까봐 꾹 참았다. 나는 DSLR도 싫다. 필카처럼 필름이 들지도 않으니 아무데나 아무한테나 마구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그리고 사진이 너무 적나라하게 나와. 폭력적이다.
행정인턴 면접자를 인터뷰 하러 정부종합청사에 갔더니 가방검사를 한다. 아니 이 아저씨가 내 목캔디보고 총알같다네. 여보세요 아저씨 내가 총알을 갖고 들어올 배짱이 있어 보입니까. 그리고 총알만 갖고 누굴 죽이나요. 나는 공포분위기 조성하는 사람도 싫다.
근데 어떡해. 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걸. 여태까지 내 마음을 움직였던 기사, 소설, 영화, 드라마 모두 글쓴이 개인의 절절한 경험이 녹아있거나 엄청난 취재력을 바탕으로 했다. 경험을 넓히고 취재력을 늘리기에 기자만큼 좋은 직업이 또 있을까. 난 살아온 세상이 좁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 깨야할 벽이 많다.
어제 기자하는 오빠랑 같이 술을 마셨는데 나보고 사람을 분류하지 말라고 했다. 너무 앞서나가지 말라고도 했다. 요는 내가 사람을 볼 때 선입견을 만들어놓고 그 틀에 사람을 짜맞춘다는 소리였다. 맞는 말이다. 철부지같던 그 오빠가 어른처럼 보였다.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를 묻고듣고 싶다. 그것도 머리에 쥐날 정도로 꼼꼼하게. 힘없고 약한 사람의 이야기는 잘 들어주고 힘있는 사람에게는 잘 물어야지.
그래서 나는 예스걸로 다시 태어나기로 했다. 취재할래, 네. 이것 좀 더 알아봐라, 네. 멘트 따와라, 네. 술 마실래, 네. 아 이건 원래부터 예스였나...... 어쨌든 그러다보면 내 벽을 부수진 못하더라도 눈 녹듯 천천히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그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테고 운이 좋으면 대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은둔자 생활은 대가가 되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젊어서는 싸돌아다녀야지. 이십대 중반의 처자가 벌써부터 무릎이 아픈데 빨빨거리고 다니려면 우유를 많이 먹어야겠다.
나는 이 정신으로 취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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