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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인턴수기

기자를 해보니, 글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글'이 문제다. 취재는 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기자'는 쓰는 사람이다.
우리는 인턴기자고 기자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게 써야 마땅한 사람이다.

그런데...

인턴들 거의 전부 첫 기사를 적었다. 5매 내외의 박스기사나 부지런한 사람은 '사람IN'도 적었다.
 
곁에서 그들을 지켜봤다. 다들 컴퓨터 하나씩을 끼고 죽을 상이었다. '웃음기 적은 '농담을 건네도

예전같은 반응이 오지 않았다. 글 쓰는 데 집중을 방해 한 것 같아 1절만 하고 말았다.

'오, 심각한데...'하는 생각을 머금고.

"무릇, 기자는 마감만 없으면 세상 편한 직업이다. 움직이고 싶은 데로 움직이면 되고, 놀고 싶으면 놀고. 근데 기사가 나와야 한다."

라는 분이 있었다. 그 분은 여기에 더해 '정기간행물' 기자의 처참한 실상을 말해주셨다. 들을 땐 몰랐다. 마감이 닥치고 나서야

저 말이 실감났다.

인턴이 되기 전. 글을 쉽게 썼다. 글 쓰는 게 좋았다. 그것이 '사실'이 되었든 '의견'이 되었든, 꽂히면 썼다. 이러저러 잡문으로

블로그 포스트가 약 400개 된다.

나는 글쓰기가 쉬운 줄 알았다.

인턴이 됐다. 글 쓰기가 어렵다는 말이 몸과 머리로 왔다. '사실'에 입각한 정제된 기사문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선배는,
 
"취재보다 기사 쓰는 데 더 오래 걸린다" 고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오래 걸려야'된다.

산울림의 김창완은 모 잡지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중들이 원하는 건 뮤지션의 음악이 아니다. 뮤지션의 목숨을 대중들은 원한다. 우리는 목숨걸고 음악해야 한다." 라고.

좋은 기자와의 인터뷰였다면 이런 답이 오지 않았을까.

"대중들이 원하는 건 사안을 건 기자의 기사가 아니다. 대중들은 기사에 건 기자의 목숨을 원한다. 우리는 목숨걸고 기사써야 한다." 라고..

그러므로...

"취재가 미비해서, 머리가 안 돌아가서, 시간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기사가 안 나오고 마감이 박살나는 건




                                                                               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