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좌충우돌 인턴수기

미네르바 구속이 각본에 따른 것이라고?

 

편집자 주>

지난주 시사IN 이해나 인턴기자가 검찰이 구속한 미네르바 박씨의 부친을 인터뷰하고 왔습니다.

그러나 이 인터뷰 기사는 실리지 못했습니다.
박씨의 부친은 극도로 심약해져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한 말을 옮기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박씨 부친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댄 것도 아니었고...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박씨의 부친이 주문처럼 되뇌인 말은 
"정부에서 각본대로 하는 거니까..."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소시민으로서 자식을 잡아간 검찰에 대한 반감에서 의미 없이 한 말일 수도 있고,
뭔가 집히는 것이 있어 의미를 담고 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의미가 궁금합니다.
신동아가 진짜 미네르바는 따로 있다며 인터뷰를 공개했습니다.
누가 진짜인지 밝혀진다면 각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밝혀질 것입니다.
이해나 인턴기자의 취재 후기 감상하시죠.





# 참고 -  글에서 '제우스'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부친을 지칭한다.


 무릎팍도사 김은혜편을 보면서 '거참 짜릿했겠군' 싶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브라운관에서 만나기 어렵기로 유명한 장동건에게 협박(?)전화를 수십 통 걸어 결국 프로그램에 출연시킨 이야기가 그 중 하나였다. 


  한국일보 이준희 편집국장(당시 논설위원)이 학보사 강연에서 들려준 이야기도 짜릿했다. 갓 입사한 기자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한 정치인의 말을 듣고 오라고 했다, 그 정치인은 만나주지 않았고 하늘같은 선배에게 못하겠다고 말할 배짱도 없었다, 밤새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5분 간격으로 초인종을 눌러댔다, 결국 만나고야 말았다.



  이 '짜릿한 순간'은 내겐 기자의 로망같은 거였다. 어쩌면 그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가 찾아왔다. 재열선배가 제우스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일단 전화를 해본 뒤 만나보고 오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하나, 걱정되는 한편 가슴은 쿵쾅거렸다.



  제우스 인터뷰 기사를 쓴 건 중앙일보가 유일했다. 자매지로 정보가 퍼지면서 "취직도 못하면서..." 따위의 제목이 붙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재열선배에게 인터뷰 잘하는 비법을 물었더니 인터뷰이는 인터뷰어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면 거절할 수 없다고 했다. 나 따위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고민하다 수화기를 들었다.



  코닥녀 - "따르릉.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시사인 인턴기자 아무개라고 합니다."

  제우스 - "기자한테는 할 말 없어요, 속상해서......"

  코닥녀 - "전 그 속상한 얘기 들어드리려고 하는 건데요."

  제우스 - "난 빽도 없고 돈도 없고, 석방되는 것 밖에 길이 있겠어요, 할 말 없어요. "

  코닥녀 -  "아버님 억울하신 게 있으실 텐데 말씀하시다보면 제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제우스 - "아 글쎄 정부에서 각본대로 하는 거니까 우리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니까!"

  코닥녀 -  "내일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안 될까요?"

  제우스 -  "속상해서 술만 먹고 밖으로 돌아다녀요, 더 이상 할 말 없으니 끊습니다. 뚝."

 

  할 말 없다던 제우스는 나와 5분가량을 통화했다. 어눌하고 웅얼대는 발음에 똑같은 말만 여러 번 되풀이했다. 정말 중앙일보의 인터뷰 기사 내용처럼 문답을 주고받은 건지 궁금해졌다. 다음날 제우스의 거처로 향했다.



  그의 거처는 남루했다. 기사엔 65세라 되어있었지만 그보다 더 들어보였다. 어제 전화드렸던 기자입니다, 하고 말문을 열었더니 주인 없어요, 하며 광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기다렸더니 나왔다. 날 보더니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한다. 얇은 담배 한 개비도 꺼내 물었다. 움푹 패인 볼과 가느다란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중앙일보 기사 읽어보셨나요?, 아드님이 어떤 글을 올린건지 알고 계신가요?" 하고 물었으나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답만 돌아왔다. '인터넷'이라는 단어만 여러 번 들렸는데 아들을 탓하는 건지, 기사를 못 믿겠다는 의도인지 알 수 없었다.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하면 좋겠다 싶어 저랑 식사 한 끼 안 하실래요, 하고 재롱을 부렸지만 혼자 많이 드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따라오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기에 더 이상 쫓지 못했다.



  이상이 제우스 인터뷰 실패의 전말이다.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기자를 하겠다고 덤벼든 건데, 난 아직 멀었구나 싶어 하루 종일 우울했다. 그러다 미네르바의 글이 과연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을 위반한건지, 구속은 합당한지가 이 사건의 핵심이라는 걸 알았다.



인터넷논객 미네르바가 아니라 자연인 박모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대며 주변에 연좌제를 적용할 필요는 없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