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따라 시장가기의 추억은 지금도 내 유년의 흐뭇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곳곳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훈김과, 막 담은 과일의 껍질을 까서 입안에 넣어주던 엄마의 손맛 같은 것들이 함께 피어오른다. 그 때 장보러 가기는 (엄마는 모르지만) 내게는 나들이였다. 엄마가 지갑이라도 들라치면 어느새 잠바까지 꿰차고 입고나와 엄마 나도! 를 외쳤었으니까.
지금은 어떤가.
지금의 나에게 장보기의 기억이 그저 과거완료형의 추억으로 남은 것은 비단 머리가 컸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밥해 먹여야 할 식구가 있는 게 아니어서 인가. 마트는 나에게 되도록 피하면 좋은 공간이 됐다. <끊고살아보기 -#대형마트편> 의 취재지원을 위해 마트에 닿았을때, 길눈이 깜깜한 나는 또 여지없이 길을 잃었다. 뺑뺑돌아 제자리. 회전문을 도는 느낌이랄까. 마트의 공포가 스멀스멀 다가왔다.
첫번째 공포는 공기. 마트에 들어찬 빽빽한 물건들과 빽빽한 사람들의 밀도는 그곳의 공기 중 산소의 농도를 희박하게 만든다.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드라이아이스의 세례, 웬만한 마트는 지하에 운집해 있다는 것도 한 몫 거든다. 거기다 동선은 어찌나 비효율적인지. 두부에서 우유, 밀가루에서 식용유, 고추장에서 티슈까지 필요한 물건만 사려고 해도 마트 내에서 움직여야 하는 스텝은 꼬이기 일쑤다.(마트에도 약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어찌어찌 물건들을 담아 카트에 끌고 기진맥진 입구를 향하면 이번에는 길게 늘어선 줄이 카트와 함께 이어진다. 대부분이 대량구매를 한 탓에 계산대의 줄은 쉬 줄지 않는다.
지하철 출구와 바로 연결된 것은 기본, 마트 안에서 옷이며 악세사리, 화장품에 책까지 논스톱으로 살 수도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고려한 마트의 과도한 친절함은 때로, 편치않다. 그 친절함이 ‘내’가 아니라 ‘내 지갑’을 향해 있어서 인 것을 그들도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격조사를 나가 여기저기에서 강권하는 시식에 넙죽넙죽 참여했다가 뱃속이 기름져 사이다 한 캔을 그 자리에서 사 벌컥벌컥 마신 적이 있다. 나의 뱃속은 그들의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씁슬한 깨달음과 함께. (코너를 돌면, 또 권한다. 방금 먹고갔는데;)
그때 아이는 왜 그렇게도 장보기를 좋아했을까.
지금 여기 이 마트에 따라나온 숱한 아이들에게도 이곳은 그런 기억으로 남을까.
마이크 소리가 왕왕대고 고객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음악사운드가 쾅쾅대는 이곳에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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