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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인턴수기

뉴스 보고 아버지 사망 소식 들었던 철거민 아들의 절규



 

“ 나랑 졸업식 가기로 했잖아.. 나 졸업식은 누구랑 가..”
 
(2009.01.21 순천향 병원. 유족(20살, 남))

 

올해 스무 살이 된 아들이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한 말이다. 소란하던 병원로비가 일순 조용해졌다가 순식간에 청년을 둘러싼 카메라에 플래시가 터진다. 고인의 장남은 뉴스로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그는 경찰보다, 취재진보다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당장 아빠를 보게 해 달라”는 당연한 요구도 이미 어려운 일이 돼버린 후다. 아버지가 용산의 어느 건물 옥상에서 생을 마감하리라곤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임시로 마련된 지하빈소에 들어서는 유족들마다 침통한 얼굴이다. 대부분이 ‘뉴스보고 달려왔다’고 했다. 지인의 죽음을 뉴스로 알게 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는 일은 그보다 더 흔치 않은 일이다.

 



“나는 내 죄가 뭔지도 몰라, 근데 재판정에 서면 검사가 그래, 나보고 죄질이 나쁘대..”
 (2009.01.20 용산. 전철연 회원(30대 여))



이번 철거민 참사의 원인과 대책을 말할 때, 논란의 중심에 전국철거민연합(이하 전철연)이 있다. 1987년 7월17일 결성된 서울시철거민협의회가 모태인 전철연은 1993년 조직됐다. 점조직으로 연명해온 빈민운동을 체계화 시켜 ‘약자의 생존권을 대변한다’는 평가와 극단적 투쟁방식으로 ‘사회에 혼란을 준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일부언론은 전철연이 6000만원의 자금을 (용산)세입자들에게 거둬 시위를 치밀하게 준비해왔으며 이들이 시위의 ‘배후’라고 보도했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전철연은 반(反) 대한민국 단체"라며 "이번 농성은 생존권 투쟁이 아니라 전철연이라는 반대한민국 단체가 벌인 도심테러"라고 규정했다. 이에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은 "극한 상황에 내몰린 철거민들의 최소한의 자위행위“라고 응했다.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준비한 것은 경찰보다는 용역깡패들과의 싸움에 대비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전철연 남경남 의장은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철연은 강력 투쟁을 하는 게 아니다. (강경 진압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골리앗이라 불리는 ‘망루’도 ”애초에는 용역들을 피해 올라가거나, 용역들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쌓은 (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제3자 개입금지 법안'을 검토중이다. 세입자과 조합원외에는 (재개발의) 제3자라는 전제다. 그러나 현실에서 유가족과 전철연,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나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고인 중 3명은 전철연 소속, 2명은 세입자라고 보도했으나, 고 이상림씨는 세입자 이자 전철연회원 이었다.  청계광장에서 열린 2.1 국민대회에서는 유가족이자 전철연 회원인 유영숙(고 윤용현씨 부인)씨가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단상에서 ”우리 가족도 전국철거민연합이다. 힘없고 돈없어 모인 것이 죄라면.. 차라리 잡아가라"고 말했다.


 

자본주의라는 사유재산제 체제와 ‘city’가 함축하는 공유공간으로서의 도시의 모순이 절정에 이르렀다. 용산철거민참사는 일그러진 도시의 자화상이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시사인 신년강좌에서 '적어도 교육과 부동산 투기에 있어서 우리는 모두 공범자' 라고 말했다. 사익기능이 공익기능을 압도한 도시, 뉴타운의 신화가 서로를 볼모잡은 도시, 여기에
제 3자는 없다.


사진 : 임병식 인턴기자
글    : 유슬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