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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인턴수기

죽음 혹은 귀향, 용산 철거민 두 노인의 선택


관련기사 시사IN 73호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35



 심시티(SIMCITY)는 20년전 미국의 맥시스(Maxis)에서 개발한 게임이다. 시뮬레이션 시티(SIMulation CITY)라는 이름 그대로 게이머는 가상도시의 시장이 되어 도시를 설계하고 운영한다. 이 운영은 만만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거주해야 세금이 걷히고, 그에 따라 더 많은 예산으로 도시를 번영시킬 수 있다. 주민을 유치하기 위해 상수도를 깔아 시민들이 사용할 물을 공급하며, 주택을 지어 살 곳을 마련한다. 학교와 공원은 물론이며 경찰서와 소방서, 감옥까지도 만들어야 한다. 




 이 게임은 꽤나 리얼리티에 충실했다. 미확인비행물체를 탄 외계인이 등장해 번영한 도시를 파괴하는 외람된 설정이 있긴 했지만, 시민들의 구직문제와 교육문제, 도시 시설의 노후 등 실제 도시에서 있을 법한 일들을 그대로 다뤘다. 게이머는 시장으로서 이러한 일들을 슬기롭게 처리해야 했다.



 이러한 심시티에서 현실과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철거 문제다.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초기에 지었던 건물은 슬럼화되며 해당 지역에서 재개발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게이머는 시장으로서 '결단'을 내린다. 불도저 아이콘을 누르면 마우스 커서거 불도저 모양으로 바뀐다. 낙후된 건물 위에 불도저 모양 커서를 가져가 클릭하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지역은 폐허로 변한다. 가상도시에선 현실과 달리 이주정책과 보상금 정책은 없다. 철거민 역시 없으며, 철거지역에 항상 나타난다는 용역깡패들도 없다. 그저 클릭 한 방이면 끝이다. '결단'이라고 표현하기에 너무 단순한 결단일까? 그래도 괜찮다. 어디까지나 가상도시일 뿐이다.


 한데 가상 게임 속 단순한 결단이 용산에서 벌어졌다. 비현실적인 보상금으로 상가세입자들에게 이주를 강요했다. 게임에서처럼 거주자들이 어디로, 어떻게 이주하든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경찰들은 심시티 경찰서에 근무하는 사람들일까. 용역깡패들과의 합동작전은 없었고 단지 자신의 대원들을 용역으로 착각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졸지에 사건 당일 용산 현장에 있던 용역깡패들은 유령같은 존재가 되었다. 


 과연 보상금은 얼마나 비현실적이었기에 그들은 망루를 쌓고 화염병을 들었을까? 사건 현장인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한 블록 떨어진 하나네 식당. 부부인 김부조 할아버지(67)와 한현례 할머니(64)가 운영하는 이 식당은 지난 23일 점심 영업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노부부가 보상금으로 받은 돈은 2600만원. 그나마 조합에 항의해 300만원을 더 받은 보상금이었다. 상가세입자가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은 3개월 영업 손실액뿐이었던 탓이다. 서울에서 2600만원으로 식당을 차리긴커녕 전세를 구하기도 쉽지않다. 억울한 이들에게 손길을 내민 것은 망루에서 숨진 이상림 할아버지(71)였다. 김부조 할아버지의 고향 선배이기도 한 그는 노부부에게 함께 망루에 오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미 건강이 좋지 않아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은 터라 몸이 불편했다. 이들은 전국철거민연합(전철련)과 함께 망루에 오르는 제안을 사절했다. 대신 식당 집기를 정리하고 시골로 떠나는 길을 택했다. 할머니는 이사하자마자 영세민 신청부터 하기로 했다.


하나네 식당 집기는 고물상에 팔려갔다. 이제 이 자리에도 맞은편처럼 고층건물이 올라갈 것이다.



 23일 오후 황학동 고물상에서 나온 사람들이 하나네 식당의 집기를 가져갔다. 밥그릇에서부터 냉장고까지 모두 처분하고 받은 가격은 80만원. 그렇게 하나네 식당은 문을 닫았다. 이제 누군가 와서 붉은 색 스프레이로 '철거'라는 사형선고를 내릴 터이다.


 우린 심시티와 같은 가상도시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보상정책과 이주정책이 없다. 용역깡패들도 없이 철거는 대화와 타협으로 평화롭게 진행된단다. 게임에서처럼 클릭 한 번으로 건물을 철거할 수 있는 불도저 아이콘만 남은 듯하다. 이상림 할아버지는 3억여원을 들여 호프집을 운영했다. 같은 날 망루에서 숨진 양회성 아저씨(55)도 2억여원을 들여 100평 규모의 식당을 운영하던 분이다. 아저씨의 두 아들들은 일식 요리사를 준비하며 삼부자 일식 요리집을 낼 계획이었다. 이들은 하나네 식당 노부부와 같은 영세 상인도 아니었다. 무섭지 않은가? 철거민 문제는 더 이상 달동네에 사는 빈민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재개발의 광풍은 이러한 큰 업소의 '사장님'들도 철거민으로 만들었다. 애초에 철거민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재개발의 덫에 걸리는 순간, 우리 모두는 철거민이 되어 길거리로 내몰릴 수 있다. 도대체 마우스를 쥐고 이 무시무시한 불도저 커서를 움직이는 자는 누구인가?


임병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