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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인턴수기

상도동 철거민인 나, 이런 일을 겪고 있다

필자 주) 본 포스트는 상도동 철거민 서 아무개씨가 실제 겪은 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기사입니다. 지금도 서울 곳곳에서, 경기도 인근의 지역 곳곳에서 제2, 제3의 용산 참사가 배태되고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다. 내겐 중학1학년생 딸이 있고 초등5학년생 아들이 있다. 나는 지주가 아닌 세입자인 아버지다. 지주는 기존의 우리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세워야 한다며 나와 우리 가족들에게 떠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갈 수가 없다. 갈 곳이 없다.

                                  상도5동 철거민 서 아무개씨(49)가 폐허가 돼버린 집터를 둘러보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지금 폐허가 됐다. 땅주인은 새로 집을 올린다고 내가 사는 상도5동 주거지역을 용역을 시켜 깨부쉈다. 작년 10월 10일이었다. 전날 법원에서 날아온 최고장에 나와 이웃들은 어리둥절했다. 이웃 한 사람의 집을 철거한다는 내용이었다. 버젓이 사람이 사는 집을 철거한다니 영문도 없고 대책도 없고 경위도 모를 말이었다. 나는 이웃들과 함께 철거한다는 집을 밤새 지켰다. 다음날, 건장한 용역 500여명이 우리 동네에 몰려왔다. 경찰관들․소방관들과 함께였다. 대책 없이 나가라는 땅주인의 말은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용역들은 욕을 퍼부으며 갈 데가 없는 나와 이웃들을 팼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하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나는 맞았다. 얼마나 맞았는지 기억도 의식도 잃었다. 안경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는 나는 용역에게 안경마저 빼앗겼다. 맞고 누워서 하늘을 보는데 화분 여럿이 날아다녔다. 용역은 세간을 뒤엎고 살림을 뒤스르고 터전을 뒤틀었다. 경찰들은 그 곁에서 미동도 안 했고 소방관들은 뒷짐만 지었다. 철거가 진행 중인 상도동에서 법은 폭력이었고 법 집행관은 용역이었다.


                                     
내가 용역에게 맞아 눈 위를 찢기고 팔에 깁스를 한 날 딸은 내게 “왜 그래?”라고 물었다. 나는 답을 둘러대다 ‘용역과 싸웠다’는 사실이 굽어진 답을 했다. ‘용역과 맞서다 기억과 의식을 잃게 맞았다’는 온전한 사실을 온갖 표현을 섞어 딸에게 전했다면 딸은 울며 슬퍼했을 테고 나는 우는 딸 앞에 놓인 눈 위가 찢어지고 팔에 깁스를 한 비참한 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다. 나는 아버지라 딸에게 전부를 말할 수 없었다.

사단이 벌어진 다음날, 집을 나서는 데 용역 몇이 집 앞에 둘러앉아 내게 말을 했다.

“아저씨, 진단 많이 안 나왔죠? 우리들 전문가예요.”

용역은 말하면서 저들끼리 웃었다. 내 손에 칼이 쥐어있었다면 다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내 가족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라 살인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수치심과 살의를 함께 말아 삼켰다.




용역들은 종종 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욕지거리를 했다. 나는 그들의 ‘X새끼’라는 욕을 내 아이들 앞에서 들었다. 자식들 앞에서 'X새끼‘란 조롱에 나는 참혹을 경험했다.

‘저것들이 사람인가? 사람이 맞나? 혹 어쩌면 내가 사람이 아니라서, 사람인 저것들이 사람 아닌 나를 자식들 앞에서 짐승 취급하는가.’


10월 10일 그 일은 한 일간 신문 대문에 기사로 실렸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지금도 용역은 순번을 정해 주민들 누구도 맡기지 않은 동네 경비를 거름 없이 돌고 우리는 구석으로, 한데로, 공가로 내몰린다. 쓰레기는 쌓여만 가고 봄이면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에서 파리가 들끓을 것이다.


아내는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다. 용역들의 시달림을, 폐허로 변한 우리 마을을, 아내는 돈 없고 집 없는 이들에게 비정하기만 한 세상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용역들은 새벽이면 쇠파이프로 창문을 치며 우리를 괴롭혔다. 길을 가는 우리에게 서슴없이 욕을 했다. 아내는 결국…그렇게 됐다.


딸애는 집에 들어오기 싫다고 오늘도 친구 집에서 자고 들어온단다. 그 애는 내가 원망스러울까. 아니면 용역이? 그도 아니면 세상이…?




나는 아버지다. 나는 지주가 아니라 세입자인 아버지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살고, 이제 살던 데서 내몰려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싸워야만 한다. 나는 집에 들어오기 싫어하는 딸과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내와 이웃에 맡긴 아들을 둔 아버지다.

내게 국가가 있을까. 내가 대한민국에 사는 것일까. 용역의 탈을 쓴 국가는 내게


“너는 돈 없고 집 없어 이 나라 국민이 아니다.”라고 한다. 국가의 말이 맞다 치더라도 나는 이 나라 수도 서울의 상도동 우리 집을 떠날 수 없다. 이 곳 말고는 갈 데가 없다.


내겐 가족이 있다. 나는 내 집과 가족을 지키고 싶다. 아니, 지켜야 한다. 나는 아버지다. 


                                                                                                                         <시사IN>인턴기자 이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