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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은 짧고 인권은 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백척간두에 섰다. 정부가 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인력을 21% 줄이는 안을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3월26일 차관회의를 통과한 이 안은 3월31일 국무회의 통과만 남겨두고 있다.

<시사IN> 이숙이 기자

국가인권위원회는 3월27일 오전 전원위원회를 연 후 결의안을 발표했다. 정부의 인권위 축소 방침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 담겨 있었다.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3월21일 출국하려던 안경환 위원장은 정부의 갑작스러운 통보로 출국도 포기한 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안 위원장을 결의안 발표 직후 만났다.

안경환 1948년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산타클라라 대학 법학박사, 미국 변호사, 서울 법대 교수,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한국헌법학회장,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인권기구 포럼(APF) 의장,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부의장. 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인권위 축소안을 이처럼 심각하게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독립성에 대한 침해로 보기 때문이다. 국가 인권기구란 기본적으로 정부에 잔소리를 하라는 것이 전세계의 보편적인 룰이다.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기구를 추구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인권위 축소 방침은 목적이나 과정이 (인권위의) 독립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조직을 축소하는 근거도 내놓지 못하고, 인권위와의 협의 절차도 없었고, 이런 식으로 조직이 축소되면 정책 감시, 인권 교육 등 인권위의 핵심 기능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해서 다른 부처도 다 줄이고 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 ‘작은 정부’로 간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래서 인권위도 자체 조직 진단을 통해 1국 3과를 감축하는 직제개편안을 만들어 보고했다. 인력도 지난 정부 때 늘리기로 했던 인력(20명)에다 업무량만으로 보면 20여 명이 더 필요하다는 조직 진단 결과 등에도 불구하고 동결하기로 해, 실제로는 수십명을 감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정부는 처음엔 무조건 50%를 줄이라고 했다가 그 다음엔 30%, 지금은 21%를 줄이라고 한다. 아무 근거도 없다. 다른 정부 부처는 기능상 변동이 없을 경우 최소 0.02%에서 최대 2% 줄였을 뿐이다. 마치 인권위원회만 콕 찍어서 ‘표적 감축’하는 것 같다(웃음).

인권위가 왜 ‘표적’이 되었다고 보는가?
= 지난 정부 편을 드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인권위가 김대중 정부 때(2001년) 출범했는데, 당시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아마 인권위는 만들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엔 권고로 각국에서 인권위가 만들어지기 시작해 당시 10여 개이던 국가인권위가 지금은 120여 개로 급속도로 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시대의 흐름이었다. 게다가 인권위의 임무 자체가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라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도 정부와 위원회 간에 마찰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촛불 집회 때 평가’ 등 이 정부에 대해 ‘까칠’했던 대목을 정치적 호불호로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핵심에 그런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나?
= 만나줘야지~(씁쓸한 웃음). 정식 보고를 하는 규정이 있는데도, 지난 1년 사이 한 번도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보고하겠다고 하면 서면으로 간접 보고하라더라. 국가 기념식 때 먼발치에서 몇 번 봤고, 신년하례식 때 지나가며 악수한 것이 가장 근접한 경우다.텔레비전에서는 자주 뵙는다(웃음).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다.
= 대한민국은 후진국들에게는 희망이다.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과 인권 신장을 동시에 이룬 나라라는 평을 얻고 있고, 이런 평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재선(2008년 5월)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중국 등 많은 나라가 인권위 활동을 배우러 왔고, 올 6월에는 이라크 등에서도 방한할 예정이다. 그런 한국에서 인권위의 독립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사건이 인수위 시절부터 계속 발생하니 국제사회에서 주목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논란이 내년으로 예정된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의장국이 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리라 보는가?
= 물론이다. 그동안 한국은 단독 부의장국을 맡아 내년에 의장국이 될 준비를 착실히 해왔다. 그런데 ICC 의장(캐나다)은 최근 한국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조직 축소를 강행할 경우 한국 인권위에 대한 등급 재심사 및 등급 강등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고, 유엔인권최고대표(과거 유엔인권고등판무관)도 두 번이나 우려를 표명하는 서한을 보내왔다. 의장국이 되는 데 중대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국제 기구를 끌어들이는 건 또 다른 ‘사대주의’라고 비판한다.
= 아무리 ‘정치적 수사’라지만 말한 사람의 품격이 드러나는 발언이다. 국제사회가 우리를 주목하는 건 그만큼 한국이라는 나라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걸 의미한다. 인권 선진국이 된다는 건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그동안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다른 나라에 도움을 청한 것도 보이지 않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죽이면 한국의 브랜드 가치도 추락한다. 농담을 전제로 얘기하면, 미국 부시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인권 분야 공동의 적이 없어졌다는 평이 나오는데, 우리 대통령이 그 후임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 후퇴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 장애인 차별이나 연령 차별 금지 등에서는 진일보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정책이나 대체복무제, 집회·시위 진압 등 여러 분야에서 후퇴의 조짐이 있다. 인권은 기본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배려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인기를 얻는다거나 정권을 연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경제성을 강조하는 이 정부 흐름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권은 좌도 우도 아니고,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정부가 약자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지나치게 효율성만 강조하는 것 같다.

인권위 축소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어떤 대책이 있나?
= 국무회의 주재자가 대통령이니까 일단 대통령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려고 한다. 대통령이 누구보다 국가 브랜드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인권위 축소가 국가 브랜드 가치 하락과 직결된다는 걸 알게 되면 후속 조치를 취하리라 믿는다. 오늘 대통령 면담 요청서를 보냈다. 그와 별도로 행정안전부가 인권위와 상의 없이 조직 축소를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적법한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가처분 신청도 함께 내기로 했다.

이번에 조직 축소를 막는다 해도 오는 10월 안 위원장 임기가 만료되면 친정부 인사가 임명되리라는 게 인권단체의 걱정이다.
= 인권 문제는 (시대에 따라)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인권위의 필요성이 더 부각될 수도 있다. 어떤 분이 그러더라. “정권은 짧고 인권은 길다”라고.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문구이기도 하다.

본 기사는 <시사IN> 제81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원본 기사 보기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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