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준 무시하고 국내 기준에 꿰맞추기
한국항공운항학회가 제출한 제2 롯데월드 관련 ‘비행안전성 검증 최종 보고서’는
기본적인 국제 기준조차 지키지 않았다.
이 보고서가 얼마나 부실한지 항공·군사 전문가가 정밀하게 분석했다.
김성전 (예비역 공군 중령)
국무총리실에서는 2009년 3월25일 한국항공운항학회가 제출한 제2 롯데월드 관련 서울공항 비행안전성 검증 최종 보고서를 기준으로 제2 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해준다고 한다. 한국항공운항학회는 검증 결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항공 분야에서는 통상 국제 기준과 국내 기준이 상충할 때 국제 기준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특히 항공 후진국의 경우 항공 선진국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불문율이다. 항공 분야에서의 국제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미국연방항공청(FAA)의 기준이다. ICAO 기준이 우선할 것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항공업계는 FAA의 기준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세계 항공산업의 태생지이며 항공운송 업계의 최대 시장인 미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FAA가 반드시 장착해야 하는 장비를 규정하면 전세계 모든 항공사는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 내 취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FAA 규정상의 제7구역(외부수평표면)과 ICAO 규정상의 제6구역(원추표면)을 적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다(오른쪽 그림 참조). 그 이유는 국내 항공법과 군사기지시설보호법은 FAA 규정을 따르면서도 FAA 규정상의 제7구역은 적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과거 공군이 제2 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하는 과정에서 고도를 제한한 이유를 국제 기준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용역의 핵심 사항은 국내 기준과 국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국내 기준을 적용할 경우 안전성에 문제가 없겠는지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초고층 건물 없을 때 만든 국내 기준 적용
여기서 국내 항공법과 군사기지시설보호법의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항공법은 민간항공보다는 공군에서 먼저 만들어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공군이 1970년대에 군사기지시설보호법을 만들면서 왜 FAA 규정상의 제7구역을 뺐는지는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문의를 해보아도 시원한 답변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는 산악지대가 많고 좁은 국토 면적을 고려해 비행안전구역을 설정할 때 국토의 효율적 사용과 재산권 보호를 위해 7구역을 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안전성 검토를 거친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평가는 국제 기준과 다른 국내 항공법상의 기준이 과연 안전한 것인지 따져보는 기회로 삼았어야 한다. 앞으로 초고층 빌딩과 관련된 민원이 다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무총리실이 제2 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해주기 위한 방편으로 함량 미달의 용역을 주어서도 안 되고 받아서도 안 되었다.
필자가 수집한 자료를 종합해보면 국내 항공법상의 기준이라는 것은 추론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처음 규정을 만들 당시 한국에서는 초고층 건물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공군 실무자도 이 대목에 동의한다.
또한 ICAO 규정과 FAA 규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부족한 상황에서 연구를 하면 자칫 숫자가 주는 인식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분명히 ICAO 규정에 따르면 7구역은 각 국가에 재량권을 준 구역이다. 그러나 ICAO 규정상의 6구역은 반드시 지켜야 할 구역이다. 그런데 문제는 ICAO 6구역과 FAA 7구역의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내항공법을 만들 당시의 담당자가 ICAO 6구역과 FAA 7구역의 개념을 상호 교차방식으로 평가했다면 공항의 고도 제한과 관련된 규정과 법규를 만들 때 FAA 7구역이 빠지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항공운항학회의 최종 보고서도 바로 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 발견된다. 보고서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기준은 국제적으로 민간 공항에 적용되는 것으로 군공항의 비행안전구역(장애물 제한표면 관련)을 검토 및 평가하기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서울공항의 비행안정성을 판단하기 위한 적합한 국제 기준은 군용 비행장의 특성을 고려한 FAA 기준(14 CFR Part 77.28 Military Imaginary Surfaces)이라고 판단된다.”
그래서 항공운항학회도 해당 규정을 첨부해 ‘모든 미군 비행장에서는 7구역까지 적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종 보고서의 결론에 가서는 “미국의 경우 민간 공항 주변에는 ‘7구역’을 설정하지 않으며(하지만 필자가 확인한 결과 대부분의 민간 공항도 이 구역을 적용한다), 군용 비행장에서도 대형 군용 비행장 주변에만 ‘7구역’을 설정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라고 기록했다(항공기 등급은 a·b·c·d·e로 분류하는데, e급으로 갈수록 대형임. 공군의 대다수 비행기는 c급 이상임).
항공운항학회의 보고서 내용대로 보더라도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된다. 첫째, 민간 공항과 군용 공항의 기준을 다르게 적용해야 하며, 군용 공항의 기준이 민간 공항보다는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FAA의 규정상 7구역은 반드시 모든 군용 공항에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 기준을 적용할 때 서울공항은 군용 공항이므로 FAA의 규정을 따라야 하고 제7 구역을 적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항공운항학회는 비행안전구역과 관련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첫째는 결론을 도출하면서 “우리나라는 비교적 산악지대가 많고 좁은 국토 면적을 고려해 비행안전구역을 설정할 때 국토의 효율적 사용과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7구역을 뺐다”라고 하는 군사기지시설보호법의 내용을 기준으로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바로 결론을 내렸다. 항공운항학회가 이번 평가를 통해 반드시 설명했어야 하는 부분이 바로 국내법상으로 적용하지 않는 FAA 기준상의 7구역 내에 위치한 고도 555m의 제2 롯데월드 건물이 과연 서울공항에 뜨고 내리는 군용기의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고서 어느 부분에서도 이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논리학적으로, 자신이 입증해야 할 전제 사항을 아무런 검증 과정 없이 그대로 인정한 채 결론을 유도하는 기준으로 사용하는 순환 논리에 빠진 것이다.
건설 허가할 경우 고도 제한해야
ICAO 규정상의 7구역 개념을 가지고 FAA 규정상의 7구역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ICAO 기준으로 FAA 7구역을 제외하려면 FAA규정상의 7구역 중 ICAO 6구역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한 부분만 적용하면 된다. 따라서 제2 롯데월드 건설 현장은 ICAO 제6구역에 해당하므로 제2 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하더라도 ICAO 규정에 의거해 고도 제한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항공운항학회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항공운항학회는 FAA의 7구역을 적용하지 않는 국내 기준에 대해 안전성 검토를 일절 하지 않았다. 따라서 항공운항학회의 보고서는 제2 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해주는 기준으로 사용할 만한 수준에 도달한 보고서가 못 된다. 국무총리실은 이러한 보고서에 대해 기본적 검토 작업도 없이 이를 기준으로 제2 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해주겠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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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시사IN> 제81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원본 기사 보기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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