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낮 11시. 노래 ‘광야에서’가 울려 퍼지는 서울역광장 분향소에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나타났습니다. ‘반쪽’을 잃어버린 상실감 탓인지 휠체어에 앉은 그의 볼은 불그스레했습니다. 휠체어에서 내려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는 그의 동작이 무척 힘겨워 보였습니다. 그래도 ‘노장’은 달랐습니다. 분향소 앞에 서자 지팡이에 의지한 채 자세를 꼿꼿이 세웠습니다. 망연한 눈빛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을 응시하던 그가 영정 아래 국화를 내려놓고 분향을 했습니다. 그 순간 묵묵히 서 있던 이희호 여사의 뺨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부축을 받으며 다시 휠체어에 앉은 DJ는 상주 자격으로 도열해 있던 민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 20여 명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의원들이 고개를 숙이자 DJ는 눈과 입 주변을 살짝살짝 움직이며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몇몇 의원에게는 두어 마디 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와 강금실 전 장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전 총리는 이희호 여사를 와락 부둥켜안고 눈물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DJ의 건강 상태로 보아 이제 ‘공식 의례’는 끝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돌아서기는커녕, DJ는 휠체어에 앉은 채 문상 온 국민과 기자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조리 있고 강단 있는 목소리로 “용감하고 낙천적인 노 전 대통령이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라며 “국민들이 왜 이렇게 슬퍼하며 모여들까요? …국민 각자의 가슴에 있는 슬픔이 서러워 오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작심한 듯 정부가 자신의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추도사를 거부한 것과 악화된 남북 관계를 지적했습니다.
DJ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모든 행사를 마친 뒤 정세균 민주당 대표, 임채정 전 국회의장 등 민주당 대표부와 마주한 간담회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겪은 치욕과 좌절, 슬픔을 생각하면 나도 그러한 결단을 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며 국민들 마음속에 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의 작심한 듯한 발언과 결연한 표정을 보니, 지난 10년 동안 자신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쌓아온 ‘업적’이 1년반도 안 되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그가 얼마나 절망하고 상심했을지 짐작이 갔습니다.
DJ의 뒷모습을 보며, 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시민들에게 정부가 DJ 추도사를 “전례가 없다, 다른 대통령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거부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대답은 하나같이 성토 일색이었습니다. 다음은 이들의 답변 내용입니다.
“정부가 아직 국민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다.” - 박영선 의원
“국가 원로가 마음먹고 하겠다는 일에 대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은 무시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 20대 남성
“국민장이니까, 국민에게 물어보고 결정해야 한다.” - 20대 여성
“장로 출신 대통령이 너무한다. 남의 마음 아프게 하면 나중에 자기는 10배 더 아프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걱정스럽다.” - 40대 여성 기독교인
“DJ가 추도사를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나? 뭐가 무서워 억지를 부리는지 모르겠다.” - 50대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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