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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까지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분들께 드리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마지막 편지.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분들께 드리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마지막 편지.

 아흐레 전, 단식 농성을 시작하면서 시사저널 기자들이 릴레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사저널 기자들의 릴레이 편지’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말이 씨가 되었을까요? 결국 오늘, 우리 파업 기자들이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분들께  마지막 편지를 보냅니다. 

단식 투쟁을 결의하면서, 시사저널 기자들은 단식 농성이 마지막 싸움이 되리라고 예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회사로 복귀할 단 1%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미련하게 믿어보자고 단식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1년을 싸우는 동안, 자본 권력의 로비 앞에, 언론사 경영진의 폭거 앞에서 한 독립 언론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지켜보면서도 ‘우리가 돌아가서 다시 시사저널의 정신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련한 사랑은 무위로 돌아갔음을 이제 고백합니다. 파업 기자 22명은 시사저널과 결별을 선언합니다.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창간 때부터 일했던 시사저널 최고참 기자는 이 회사에서 18년 동안 일했습니다. 혈기왕성한 30대 중반에 들어왔던 그는 시사저널과 함께 늙어 이제는 50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시사저널 막내 기자는 이 회사에서 7년 동안 일했습니다. 한창 뛰어다니며 취재현장을 누벼야 하는 그 역시 시사저널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짧게는 7년, 길게는 18년 동안 우리 이름 뒤에 붙어 있던 ‘시사저널 기자’라는 이름을 떼어내려니 회한이 절절합니다.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나서 1년8개월 동안 월급을 못 받았을 때도 지켰던 이름인데, 삼성 관련 기사를 경영진이 무단으로 삭제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전원 사표를 제출한다니, 억울하기도 합니다.

어제 시사저널 노조 총회가 끝날 즈음에 정희상 위원장이 울었습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싸움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끝낼 수밖에 없어 한스럽다고 했습니다. 우리 파업 기자들은 그의 눈물을 보면서 눈 돌릴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1년 동안의 모질었던 싸움을 정리하려니 마음이 아픕니다. 삼성 관련 기사 삭제 사건 이후 6개월 동안은 징계를 받고 출근하지 못하는 동료 기자들을 지켜봐야 했고, 파업 이후 6개월 동안은 월급 한 푼 집에 갖다 주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동료들과 가족들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한 기자가 생활비 때문에 집에 있는 에어컨을 떼다 팔았다고 했을 때, 또 백발이 성성한 50대 선배가 누이들에게 생활비를 보조받는 날이면 아내의 신경이 예민해진다는 말을 농담처럼 내뱉을 때, 우리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하늘만 쳐다봤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밥벌이 앞에서 신념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싸움에 지쳤을 때, 1년 전 그날을 다시 떠올리곤 했습니다. 오늘이 만약 금창태 사장이 인쇄소에서 삼성 관련 기사를 삭제한 다음 날이었다면, 우리 파업 기자들은 어떻게 했을까? 백번을 생각해봐도 대답은 같았습니다. 부당한 것은 부당한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사장이 삼성 고위층과의 친분을 들어 기사를 무단으로 삭제하는 언론사, 그 곳은 지난 18년 동안 시사저널이 걸어온 길이 아닙니다. 우리 파업 기자들이 자부심처럼 여겨온 독립 언론 시사저널의 정신과는 더더욱 거리가 먼 일입니다.

마지막 말을 하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파업 기자들은 시사저널과의 인연을 끊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시사저널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동안 우리 파업 기자들을 성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께 한없이 미안하고, 한없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리 파업 기자의 청춘과 꿈과 자부심이었던 시사저널, 너 또한 안녕.

굿바이, 시사저널.

2007년 6월 26일 시사저널 기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