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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편집국

<봉하 9신> 넥타이 부대의 봉하마을 무박2일 조문기

봉하마을 조문행렬에 서울의 넥타이 부대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서울 곳곳에 마련된 분향소 대신 버스로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직접 찾았다. <시사IN> 인턴 기자로 일했던 강은나래씨(26)가 직장인들의 무박 2일 조문 행렬에 참여하고 그 동행기를 보내왔다.  



5월27일 새벽 12시 50분께 봉하마을 입구. 전세버스 3대에서 구깃구깃해진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다들 눈이 빨갰다. “새벽 2시까지는 오셔야 해요. 아침 출근시간을 맞추려면 7시 30분까지는 서울에 다시 도착해야하니까 서둘러 조문하시고….” 이들은 서울 시청역에서 전날 저녁 8시에 출발한 직장인들이다. 다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좁은 차안에서 5시간을 꾸벅꾸벅 졸면서 왔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daum) 카페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에서는 지난 5월25일 오후부터 총 4차례에 걸쳐 ‘봉하 조문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하루에 두 번 서울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오간다. 오전 8시와 저녁 7시 반에 출발하는 차 가운데 두 번째 버스는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을 위한 것이다. 둘 다 출발 후 12시간 이내에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빡센’ 코스다.

인터넷을 통해 승차 신청을 하고 왕복 요금 2만원을 내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5월26일 저녁에는 130여명이 신청해 버스 3대를 대절했다. 제대로 된 주최 측도 인솔자도 없었다. 30대로 보이는  직장인 한분이 제일 앞에 있다가 엉겁결에 인솔자가 돼 즉석에서 비상 연락망을 만들었다. 교복 입은 자녀의 손을 잡은 아버지,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두 분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퇴근길 복장 그대로의 직장인들이었다. 상당수는 저녁도 못 챙겨먹고 버스를 탔다고 했다. 생면부지의 45명이 한 버스를 타고 무작정 봉하 마을로 향하는 길. 버스 안은 피곤 탓인지 슬픔 탓인지 고속도로를 타는 내내 조용했다.

5월27일 새벽 1시, 버스에서 내린 서울 조문객들은 봉하마을 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려 끝없이 이어진 조문 행렬 안에 섞였다. “서울에서 왔어요? 아. 멀리서도 오셨네. 저는 부산에서 우리 애들이랑….” 조문객들은 마냥 침울해하지 않았다. 산바람은 서늘하게 불어오고, 다리 아래서는 개구리들이 울어댔다. 50대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는 “고향에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뿐만 아니라 자기 고향 얘기, 사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한 발짝 두 발짝씩 봉하마을로 다가갔다.

조문 행렬이 하도 길어 많은 서울 직장인 조문객이 분향소에 국화를 올리지 못했다. 버스 출발시간은 2시였지만, 2시 반, 기어이 3시로 점점 늦춰졌다. 해외에서 왔다는 한 부부는 “시간이 촉박해 많은 사람들이 마을 회관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고 왔다”라고 아쉬워했다. 조문을 못하고 멀리서 영정사진에 인사만 하고 왔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 조문객들은 아예 마을에 남아 자원봉사를 하거나, 12시간 후에 오는 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에 타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여기저기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7시 28분 시청역, 또다시 우르르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출근 걱정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다들 머리를 매만지며 지하철역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바삐 향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와중에도 서로 한마디씩 격려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