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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편집국

<서울 8신> 정동, 다시 '역사의 현장'이 되다



27일 저녁, 서울 정동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왼쪽 뒷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정동교회이다.

100여 년 전, 서울 정동은 역사·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아관파천으로 정치 1번지가 되었는가 하면, 국내에 거주하는 거의 모든 외국 공관원이 이곳에 모여 살았죠. 또 ‘(우리나라) 최초·처음’이란 수식어가 붙은 문화나 문물도 많았습니다. 근대 교육을 처음 시작한 곳도, 신식 결혼을 최초로 연 곳도, 서양 악기를 가장 먼저 연주한 곳도, 한글 신문을 맨 처음 발행한 곳도, 방송국이 가장 먼저 들어선 곳도 이곳이었죠.

5월27일 밤, 정동이 다시 역사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민추모제를 서울광장에서 열게 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자, 추모위원회가 정동교회(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 앞 공터에서 시민추모제 ‘기억하겠습니다’를 개최한 것입니다. 수천 명의 시민이 오밀조밀 붙어 앉은 공간은 비좁았습니다. 서울광장에 비하면 손수건만하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수천 명의 추모 시민들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동서남북으로 뻗어 있는 길에 앉아서 경건하게 촛불을 흔들거나, 나지막이 ‘아침이슬’ 등을 따라 불렀습니다. 사이사이에 가수 안치환과 노찾사가 노래를 부르자 눈물을 훔치는 시민이 보였고, 몇몇 시민은 주최 측이 나누어준 '기억합니다' 백지 위에 노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천천히 써내려 갔습니다(나중에 책으로 펴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근처 건물 5층에 올라가 추모제를 내려다보니, 슬프도록 아름다웠습니다. 언뜻 보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흑진주 브로치 같았고, 얼핏 보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주변으로는 덕수궁, 미국대사관, 정동교회, 시립미술관(구 대법원)이 서 있었습니다. 모두 이런저런 그늘과 사연을 가진 건축물들인데, 그들의 역사성 덕일까요. 추모 시민들의 모습이 한결 경건하고 의연해 보였습니다.

오윤현 기자(noma@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