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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기의 설레임' 앗아간 마트의 악몽 엄마 따라 시장가기의 추억은 지금도 내 유년의 흐뭇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곳곳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훈김과, 막 담은 과일의 껍질을 까서 입안에 넣어주던 엄마의 손맛 같은 것들이 함께 피어오른다. 그 때 장보러 가기는 (엄마는 모르지만) 내게는 나들이였다. 엄마가 지갑이라도 들라치면 어느새 잠바까지 꿰차고 입고나와 엄마 나도! 를 외쳤었으니까. 지금은 어떤가. 지금의 나에게 장보기의 기억이 그저 과거완료형의 추억으로 남은 것은 비단 머리가 컸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밥해 먹여야 할 식구가 있는 게 아니어서 인가. 마트는 나에게 되도록 피하면 좋은 공간이 됐다. 의 취재지원을 위해 마트에 닿았을때, 길눈이 깜깜한 나는 또 여지없이 길을 잃었다. 뺑뺑돌아 제자리. 회전문을 도는 느낌이랄까. 마트의 공포가.. 더보기
함세웅 신부, 예수를 닮은 사람 제자들이 예수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가 답했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예수와 제자 사이의 대화다. 예수는 어떤 죄가 눈을 멀게 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문화와 제도다.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 성경에서 사랑이라 표현되는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예수의 말처럼 '놀라운 일'이다. 이기적이었던 인간이 이타적으로 돌아서는 순간인 까닭이다. 기실 예수는 이 놀라운 일을 강조했으며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사회로 바꾸려고 애를 썼다. 이러한 예수를.. 더보기
용산 참사 사망 경찰의 부친과 술잔을 마주쳤다 용산에서 사단이 벌어진 날, 나는 개인사정으로 출근하지 못했다. 그 날 아는 형으로부터 그 일의 대강을 전화로 들었는데 전화통을 붙잡으며 연신 욕을 해댔다. 시절은 무참하고 나는 '인턴기자'란 처지로 무참한 시절을 견디고 있다. 김종철 선생님은 저서 에서 "문득 모든 수사는 무효라고 느껴집니다."라는 말을 적었다. 비틀대다 하루를 맺을 무렵 그 문장이 왔다. 이 시절 수사와 어휘의 작동이 무슨 소용이 있나하는 허망함을 느낀다. 느끼면서도 적어야만 하는 나는 '인턴기자'다. 어제, 가락동 경찰병원에 다녀왔다. 용산에서 벌어진 일에서 숨진 젊은 사내 경찰의 빈소가 그곳에 마련돼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사람의 죽음 앞에 경위와 심정을 물어야 하는 기자의 슬픈 천형을 느꼈다. 고인의 어머니가 혼절해 쓰러지고, .. 더보기